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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업 중대재해법 적용 첫 사례…오너는 책임 피하나

  • 2022.02.10(목) 11:10

시공사 요진건설, 건설업 첫 중대재해법 적용
법 제정 직후 오너체제서 전문경영인 체제 전환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13일 만에 건설현장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경기 성남시 판교의 신축공사 현장에서 승강기를 설치하던 하도급 업체 노동자 2명이 추락해 사망했다. 시공사인 요진건설산업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를 피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정작 책임을 져야할 주체들은 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작년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한 요진건설산업의 오너 일가는 책임을 면할 가능성이 크다. 승강기 작업을 담당한 현대엘리베이터 역시 '공동수급' 덕에 처벌을 피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반복되는 승강기 추락사… 건설업 첫 중대재해법 사례로

지난 8일 오전 10시께 판교 제2테크노벨리의 업무·연구시설 신축 공사 현장에서 승강기를 설치하던 작업자 2명이 지상 12층 높이에서 지하 5층으로 추락해 숨졌다. 

사고가 발생한 곳은 요진건설산업이 시공을 맡아 지난 2020년 5월부터 한 제약회사의 업무시설 및 사옥을 건축하는 현장이다. 공사금액은 490억원으로 건설업의 중대재해법 적용 기준인 공사비 50억원을 초과했다.

이에 따라 고용노동부는 8일 작업중지를 명령하고, 요진건설산업의 중대재해법 및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중대재해법은 인명피해를 발생하게 한 사업주, 경영책임자, 공무원, 법인 등의 처벌을 규정한 법이다. 중대산업재해를 일으킨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는 1년 이상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산업재해 중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한 경우 등이 중대산업재해에 해당한다.

이번 사고는 지난달 27일 중대재해법이 시행되고 난 후 두 번째 적용 사례로, 건설업에서는 처음이다. 앞서 1월29일 경기 양주시 삼표산업의 채석장에서 토사가 붕괴해 매몰된 노동자 3명이 사망했다.

고용노동부는 사고직후 자료를 내고 "시공사의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관리체계를 적법하게 구축하고 이행했는지 여부를 수사할 계획"이라며 "특히 추락사고 위험이 높은 승강기 설치 공사를 도급하면서 추락사고 위험을 확인하고 개선하기 위한 조치를 했는지 철저히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추락사고가 발생한 승강기 설치 작업은 현대엘리베이터와 승강기 설치 전문업체가 컨소시엄 형태로 담당했다. 이들 업체는 중대재해법이 아닌 산업안전보건법 위반과 관련한 수사를 받을 예정이다.

이번 사고와 같이 공사비 50억원 이상 건설현장에서 사망한 노동자는 전체 산재 사고사망자의 14%에 이른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작년 산재 사고사망자 828명 중 50억 이상 건설현장 사고사망자는 116명이다.

승강기 공사 현장에서 매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2017년 5명 △2018년 7명 △2019년 8명 △2020년 6명 △2021년(1~9월 기준) 3명이 추락해 사망했다.

권기섭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본부장은 "작업중지, 안전진단 및 안전보건계획수립 명령 등 쓸 수 있는 행정조치를 모두 동원해 사망사고 예방을 위한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갖추도록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고는 다단계 하도급 구조 탓"… 진짜 책임자는 어디?

사망자가 2명이나 발생한 '중대재해'지만 정작 책임자들은 처벌을 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앞서 요진건설산업은 중대재해법 시행령이 제정된 지 한달 만에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했다. 창업자 최준명 회장의 아들인 최은상 부회장이 2004년부터 맡아온 대표이사직을 내려놓고 전문경영인 송선호 사장을 새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사고가 잦은 건설업 특성상 사업주 처벌을 피하기 위해 오너 대신 전문경영인을 앞세운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잇달았다. 실제로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중대 재해가 발생한 사업장 576곳 중 약 60%(339곳)가 건설업 사업장이다.

한신공영, IS동서, 한림건설 등에서도 오너 경영인이 줄줄이 물러났다. 중대재해법은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의 책임을 묻기 때문에 경영에서 물러난 오너 일가는 적용을 받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관련기사:중대재해법 '1호가 될 순 없어'…건설사들 동분서주(1월4일)

승강기 공급을 담당한 현대엘리베이터도 처벌을 비껴갈 것으로 보인다. 현대엘리베이터가 승강기 제작을 맡고, 다른 전문업체가 설치를 전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숨진 근로자 2명은 승강기 설치 업체 소속이다.

표면적으로는 공동수급이지만 이같은 도급 및 계약관계는 승강기 작업 관련 사망사고의 주원인으로 꼽힌다.

정부는 지난 2020년 '승강기 작업장 안전강화 대책'을 발표하고 "승강기 제조사와 설치 공사업체 간 불공정 계약과 불법 하도급 계약을 근절하겠다"며 "원청 건설사가 승강기 설치공사를 공동수급 형태로 하도급 계약을 체결한 경우 하도급 적정성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현재 승강기 설치공사와 관련해 계약형태와 불법 하도급 여부를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9일 청와대 앞에서 요진건설산업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요구했다 / 사진=건설노조

건설 노동자들은 요진건설산업에 대한 강력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산하 건설노조는 9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판교 사고 현장은) 안전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공사기한에 쫓겨 작업자들이 안전벨트를 체결할 공간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엘리베이터 설치업은 대형 엘리베이터 업체로부터 물량을 받아 설치하는 다단계 하도급 형태이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요구가 수렴되기 어려운 구조"라며 "위험한 현장을 조성한 건설사 사업주에게 그에 응당한 책임을 지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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