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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 울고 갈 아파트…쉬운 우리 이름 없나요?

  • 2024.10.09(수) 09:39

올해 분양 아파트 이름 98.3%에 외래어·외국어
가장 긴 이름은 25자…외국어 애칭 '덕지덕지'
이름 길어야 집값 올라?…"공공성 없이 상품성만"

'광주전남 공동혁신도시 빛가람 대방엘리움 로얄카운티 1차', '초롱꽃마을 6단지 GTX 운정역 금강펜테리움 센트럴파크'…

아파트 이름이 길고 복잡해지고 있다. 1990년대 평균 4자에 불과했던 아파트 이름은 2010년 이후 10자를 넘기며 계속 길어지는 추세다. 전국에서 가장 긴 이름을 가진 아파트는 무려 25자에 달한다.

아파트 가치와 개성을 강조하는 '애칭 마케팅'이 강화되면서 뜻을 알 수 없는 외래어와 외국어도 덕지덕지 붙는다. 서울시의 시민 인식 조사에 따르면 서울시민 72.3%는 '아파트 이름이 외국어로 돼 있어 인지하기 어려웠던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아파트 이름에 외국어 범벅…"집값 상승 욕망"

9일 비즈워치가 올해 1월부터 이달까지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입주자모집공고를 게시한 236개 단지를 확인한 결과 아파트 이름에 외래어나 외국어를 사용하지 않은 단지는 4곳이었다. 전체의 98.3%다.

제일풍경채 운정, 소촌동 대라수, 원주 세경5차아파트, 정선산수빌 등 지방 소규모 아파트 위주였다. 주택 종류를 지칭하는 '아파트'와 '빌' 등도 외래어로 포함할 경우 단 2곳만 남는다. 서울에서 분양한 단지 중 한글 및 한자어 조합으로만 이뤄진 이름은 없었다.

올해 분양한 아파트 중 가장 긴 이름은 '성남 금토지구 A-3블록 판교테크노밸리 중흥S-클래스'(23자)였다. 이어 '성남 복정1지구 B3블록 엘리프 남위례역 에듀포레'(22자), '평택 브레인시티 5BL 대광로제비앙 그랜드센텀'(21자)이 긴 이름을 자랑했다.

최근 아파트 이름은 지역명과 택지지구명, 건설사 및 브랜드명에 '애칭(펫네임)'까지 조합한다. 2개 이상 건설사가 공동 시공하거나 애칭이 여러 개 붙는 경우 아파트 이름은 더 길어지게 된다. 파크, 센트럴, 포레 등 외국어 애칭은 해당 아파트의 차별화를 보여주고 주변 입지를 강조하기 위해 붙인다.

하지만 이름이 길고 복잡하다 보니 결국 3~4자 정도로 줄여 부르곤 한다. '마래푸(마포 래미안 푸르지오)', '아리팍(아크로 리버 파크)' 식이다. 

새로 쓰는 공동주택 이름 길라잡이 /자료=서울시

서울시는 10자 안팎의 부르기 쉬운 이름으로 지을 것을 권장하고 있다. 아파트 이름은 브랜드 가치 외에도 지명으로 활용돼야 하는 공공성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가 속한 지역의 유래와 옛 지명을 활용하는 방법도 제안했다. 일례로 서울 서초의 옛 이름인 '서리풀', 인천의 옛 이름인 '미추홀'을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아파트 이름이 길면 부르기도 외우기도 어렵다"며 "사용하기 편하게 짓는다면 각종 전산시스템에 주소 입력을 할 때, 우편물이나 택배를 받는 주소로 사용할 때, 택시나 내비게이션을 이용할 때도 편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명사란 2~3음절이 보편적인데 5음절을 넘어가면 길어서 외우기도 힘들고 이름의 기능이 축소된다"며 "특히 애칭 부분에 낯선 외국어를 붙이는 건 외래문화에 대한 동경,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거란 욕망을 투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말 아파트?…"왜 이런 이름" 질문이 첫걸음

서울시는 지난해 말 대형 건설사를 소집해 아파트 명칭 개선을 위한 자정 노력을 촉구한 바 있다. 올해 초엔 '새로 쓰는 공동주택 이름 길라잡이'를 펴냈다. 아파트 이름을 새로 짓거나 바꿀 때 반영할 수 있도록 구청과 조합, 건설사에 배포했다.

하지만 여전히 아파트 이름은 20자에 달할 정도로 길다. 우리말보다는 외래어, 외국어가 주를 이룬다. 이는 소비자가 이런 이름을 원하기 때문이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OO마을 1단지와 같이 우리말로 된 짧은 이름은 집값이 오르지 않는다는 인식이 있다"며 "아파트에 투자할 때는 '무조건 이름이 긴 걸 택하라'는 말이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인식 변화가 필요한 때라는 지적은 많다. 신지영 교수는 "(길고 복잡한 이름은) 집을 '사는 곳'이 아니라 시장에서 비싸게 팔아 부를 가져오려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왜 이런 아파트 이름이 범람할까, 이게 옳은 걸까 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게 생각의 전환을 일으키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글날을 맞아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 국어문화원연합회는 '우리 집, 뭐라고 부를까' 공모전을 개최한다. 우리말로 된 기존 아파트를 찾아 제보하거나, 앞으로 지을 아파트의 우리말 이름을 제안하면 된다. 스타벅스를 별다방이라 부르듯이 아파트에 우리말로 된 별명을 붙여주자는 취지다. 공모는 이달 9일부터 다음 달 13일까지 진행된다.

국어문화원연합회 관계자는 "국민들은 아파트 이름이 집값과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그런 인식을 조금씩 허물고 우리말이 스며들도록 하기 위해 행사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한글날을 맞아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 국어문화원연합회는 '우리 집, 뭐라고 부를까' 공모전을 개최한다. /자료=국어문화원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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