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워치

Chapter 2. 글로벌 자원전쟁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극적으로 타결돼 배터리 원재료 공급망 불안이 해소된다면 모를까요. 

지금 상황에선 광산 개발·배터리 재활용을 준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부 관계자는 올들어 전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광산 개발·재활용 산업이 들썩이고,

최근 우리 정부가 배터리 재활용 산업 규제 개선안을 내놓은 배경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비싸지는 배터리 원재료

전기차 배터리에 필요한 핵심 광물 가격이 치솟고 있다. 광물 가격이 상승하는 요인은 중국과 미국, 유럽 등 친환경 정책을 펼치는 국가 중심으로 전기차 판매량이 증가하는 등 강한 수요 대비 공급망 불안요소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공급망 불안요소는 니켈, 리튬, 코발트 등 배터리 원재료를 일부 국가가 과점한 구조에서 비롯했다.

전기차 배터리용 핵심 광물 가격 추이

(단위 : 톤당 달러)

자료 : 한국자원정보서비스
*2022년은 10월 13일 조회 기준

글로벌 배터리 금속 수요 전망

(단위 : 만톤)

자료 : SNE리서치

세계 최대 코발트 생산국인 콩고의 코발트 광산 약 70%는 중국이 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 장기화는 중국산 원재료 공급에 대한 시장의 불안을 키운다. 리튬 매장량의 80%가량도 칠레, 호주, 아르헨티나, 중국 등 4개국에 집중됐다.

니켈의 경우 비교적 고루 분포됐으나 올해 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공급불안에 대한 우려로 톤당 가격이 사상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가격 변동성이 컸다. 러시아는 세계 최대 정련 니켈 공급국인데, 국제 사회의 무역 제재를 받고 있다. 런던금속거래소(LME)는 지난 8월 러시아산 니켈에 대해 영국 내 지정창고 반입을 금지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한국광해광업공단은 "니켈 시장은 전기차 시장 확대와 타이트한 수급 상황이 지속돼 가격 상승 압력이 발생했다"며 "중국의 8월 신에너지자동차(전기차) 생산량은 71만4000대로 전년동월대비 117% 증가해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고, 필리핀의 올 상반기 니켈 생산량도 호우 여파로 전년대비 20% 급감했다"고 설명했다.

수요 늘어나는데 
주요국 갈등 격화

미국이 지난 8월16일 발효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Inflation Reduction Act)은 공급망에 대한 불안감을 더욱 키우고 있다. IRA는 2023년부터 니켈, 리튬, 코발트 등 전기차 배터리에 쓰이는 핵심 광물의 40% 이상이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를 체결한 국가에서 생산돼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2027년에는 이 비율이 80%까지

문제는 미국은 이같은 주요 광물을 자체 생산하는 규모가 미미하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지난해 니켈 생산량은 전세계 생산량의 0.7%에 불과하고, 매장량도 0.4%에 그친다. 그런데 니켈의 주요 생산국은 러시아, 중국, 인도네시아, 필리핀이다. 러시아는 전쟁을 일으킨 데 따른 국제 사회의 제재를, 중국은 미국과 무역 갈등을 빚고 있다.

SK온은 최근 호주 ‘글로벌 리튬’과 리튬의 안정적 수급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SK온 제공

한국광해광업공단은 "인도네시아는 니켈을 풍부하게 보유한 국가이지만, 미국과 FTA를 체결한 국가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런 까닭에 미국에서 사업을 하려는 국내 배터리 회사들은 원재료 공급망 확보에 재빨리 나서야 하는 형편이다. SK온이 최근 호주 '레이크 리소스'(Lake Resources)에 지분 10%를 투자하고, 친환경 고순도 리튬 총 23만톤을 장기 공급받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힌 사안이 대표적 사례다. 이보다 앞서 호주 ‘글로벌 리튬’(Global Lithium Resources)과 리튬 수급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기도 했다.

SK온 관계자는 "레이크 리소스로부터 공급받은 아르헨티나산 리튬을 미국과 FTA를 체결한 국가에서 정제한 후 북미 사업장에 투입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며 "이렇게 생산된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는 IRA 규정상 전기차 구매 보조금 지급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책 변화는 미국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유럽도 IRA와 비슷한 법안을 구상하고 있다. 내년 1분기 초안이 공개되는 원자재법(Raw Materials Act, RMA)은 핵심 원재료의 역내 밸류체인 강화가 골자다.

배터리 재활용, ‘핵심 대안’

이처럼 전기차 배터리를 재활용해야 하는 이유는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자원 전쟁' 차원에서도 봐야 한다. 니켈·코발트 등 비싸면서 구하기 어려워지는 배터리 원재료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재활용의 중요성이 커지는 것이다. 일부 국가가 과점하고 있는 원재료를 재활용, 자국에서 재생산하면 공급망 불안을 줄이고 경제적으로도 이득이다.

이런 이유로 중국과 EU, 미국도 배터리 원재료 재활용을 사실상 의무화하는 규제를 내놓고 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관계자는 취재팀에 "전세계적으로 배터리 원재료를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심화하면서 재활용을 통한 순환경제 구축이 진짜 중요해진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미 최대 배터리 재활용 기업 라이사이클의 최고경영진들도 '발칸화'란 용어를 기반으로 재활용 시장이 급성장하는 배경을 설명했다. 발칸화는 20세기 발칸반도에서 벌어진 국가간 분열을 다양한 종류의 분열에도 적용해 쓰는 말이다.

라이사이클을 창업한 2016년만 해도 아무도 배터리 재활용에 관심이 없었고, 심지어 전기차도 주류가 아니었다. 그런데 전기차 시대가 열리면서 배터리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량품·폐배터리를 어떻게 처리할지, 특히 ‘발칸화’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원재료를 확보할지에 대해 시장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팀 존스턴 라이사이클 창업자 겸 회장
팀 존스턴 라이사이클 회장이 지난 8월30일(현지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길버트 공장에서 비즈니스워치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곽정혁 PD

우리 정부 관계자 역시 "미·중 갈등이 커지고 중국에서 원재료를 수입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면서 각국·기업이 광산 개발과 재활용 사업을 하게 되는 것"이라며 "기존에는 원재료 채굴 과정이 환경오염 요소가 있는 반면, 채굴되는 규모는 한정적이었기 때문에 많은 나라들이 환경성·사업성·경제성 등을 이유로 원재료 공급을 중국 같은 일부 국가에 의존해왔다"고 설명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7월까지 수입한 리튬 24억7900억원어치 중 중국에서 들여온 물량은 64%(16억1500만 달러) 수준이었다. 지난 2018년 31%에서 2배 이상 치솟은 수치다. 같은 기간 수산화리튬의 경우 중국 의존도가 84%에 달했다. 이에 국내 기업들의 대응도 긴박하게 진행되고 있다.

한국, 대중국 리튬 수입 의존도 및 수입단가 추이

(단위 : 톤당 달러)

자료 : 한국무역협회 무역통계 서비스
*2022년은 7월 기준

우리나라의 수산화리튬 중국 의존도

(단위 : %)

자료 : 한국무역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