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와 고물가 장기화로 외식업계 전반이 부진을 겪고 있다. 하지만 버거 시장만은 예외다. 오히려 '불황일수록 지갑이 열리는' 대표적인 불황 수혜 업종으로 자리 잡으며 홀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국밥이나 냉면 한 그릇 가격이 1만원을 돌파한 런치플레이션 국면에서 버거 매장은 매일 실속 있는 한 끼를 선점하려는 현대인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국밥보다 싸다
업계 등에 따르면 국내 버거 시장 규모는 지난 2014년 약 2조원대 수준에 머물렀으나, 올해 5조 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10년 새 덩치가 2.5배 이상 커진 셈이다. 최근 10년간 국내 외식 카테고리 중 가장 가파른 성장세다.
이런 성장 배경에는 소비자가 피부로 느끼는 '체감 가성비'가 자리한다. 주요 버거 브랜드의 전용 앱 할인이나 타임 프로모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1만원 안팎으로 2인 세트까지 즐길 수 있다. 만원 한 장으로 혼자 밥 한 그릇 사 먹기도 부담스러운 고물가 시대에 버거가 가장 합리적인 외식 대안으로 부각된 이유다.
실제로 주요 버거 브랜드들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역대 최대 실적을 갈아치웠다. 가장 두드러진 성과를 낸 곳은 한국맥도날드다. 한국맥도날드의 2025년 매출은 1조4310억원으로 전년 대비 14.5% 증가했다. 특히 영업이익은 732억원을 기록하며 완연한 흑자 체제로 전환했다.
롯데리아를 운영하는 롯데GRS도 지난해 창사 이래 처음으로 매출 1조원을 돌파하며 상징적인 '1조 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버거킹 운영사 BKR 역시 매출 8922억원, 영업이익 429억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각각 12.6%, 11.7% 성장하며 순항했다.
대형 3사뿐 아니라 중견 브랜드들도 성장세를 보였다. 맘스터치는 지난해 매출 4790억원으로 전년 대비 14.6%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897억원으로 22.2% 늘었다. 매장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는 KFC도 지난해 매출액은 전년 대비 29.3% 증가한 3780억원으로, 주요 브랜드 중 가장 높은 매출 성장률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도 164억원에서 247억원으로 50.6% 뛰었다.
'정크푸드'에서 '완전식품'으로
업계에서는 버거 시장의 성장 배경으로 고물가에 따른 반사이익과 브랜드들의 체질 개선 노력을 꼽고 있다. 과거 '간단히 끼니를 때우는 패스트푸드'로 여겨졌던 버거가 이제는 맛과 영양을 모두 갖춘 '가성비 한 끼'로 자리매김했다는 이야기다.
소비자들이 버거를 찾는 이유도 단순히 가격 때문만은 아니다. 과거 비만과 성인병을 유발하는 '정크푸드(Junk Food)'의 상징이었던 버거는 최근 건강한 식사라는 이미지로 탈바꿈하는 데 성공했다.
업체들이 신선육 패티와 고품질 채소 사용을 전면에 내세우고 위생 관리 수준을 높이기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은 덕분이다. 탄수화물과 단백질, 지방은 물론 신선한 야채까지 한 번에 섭취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균형 잡힌 완전식품'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런 점이 시장 성장에 힘을 보탰다는 분석이다.
최근 버거 시장을 관통하는 또 다른 특징은 '양극화'다. 한쪽에서는 초가성비 전략을 앞세운 브랜드가 성장하고 있는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프리미엄 버거가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노브랜드버거와 프랭크버거는 단품 3000~5000원대, 세트 6000~8000원대의 압도적인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실속파 고객층을 빠르게 흡수하고 있다. 반면 파이브가이즈와 슈퍼두퍼 등 글로벌 프리미엄 버거 브랜드는 세트 가격이 2만~3만원대에 달함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미식 수요를 증명하며 순항 중이다.
다만 시장 규모가 커졌다고 해서 모든 브랜드가 수혜를 누리는 건 아니다. 가성비와 초프리미엄으로 격렬하게 양분된 시장에서 뚜렷한 차별성을 보여주지 못한 브랜드는 경쟁에서 빠르게 밀려나고 있다. 글로벌 치킨·버거 브랜드인 파파이스가 국내 시장 재진출 이후에도 대중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2023년부터 3년 연속 적자의 늪에 빠지며 고전 중인 것이 대표적인 예다.
업계 관계자는 "외식 물가 부담이 극에 달하면서 1만원 이하로 만족스러운 식사를 할 수 있는 버거 카테고리로 소비층이 대거 유입됐다"며 "다만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른 만큼, 앞으로는 단순한 외형 확장보다는 자사 앱 중심의 충성 고객 확보와 디지털 전환(DT)을 통한 매장 효율화 등 수익성 중심의 질적 생존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