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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광고] "골라먹는 재미"가 있는 그 아이스크림

  • 2026.08.23(일) 13:00

배스킨라빈스, 다양한 맛과 매달 새 맛으로 승부
낯설었던 스쿠핑 방식으로 프리미엄 시장 개척

[그때 그 광고]는 우리나라 식품유통업계의 광고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광고들을 소개하고 그 뒷 이야기들을 펼쳐보는 콘텐츠입니다. 꼴찌 브랜드를 단숨에 1위로 만든 '최고의 광고'부터 잘 나가던 브랜드의 몰락을 불러온 '최악의 광고'까지, '광고의 정석'부터 '광고계의 이단아'까지. 우리의 인상에 남았던 여러 광고 이야기를 나눠 볼 예정입니다. 여러분의 추억의 광고는 뭔가요? 혹시 이 광고 아닌가요.[편집자]

"배스킨라빈스 써리원(31), 골라먹는 재미 아시죠?"  아이스크림 매장 쇼케이스 뒤에서 종업원은 이렇게 물은 뒤 아이스크림 이름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체리쥬빌레, 월넛, 자모카아몬드훠지, 아몬드봉봉, 초콜릿, 쿠키앤크림, 베리베리스트로베리, 초콜릿칩…. 점점 말에 속도가 붙으며 단어를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로 빨라진다. 마지막에 숨이 넘어갈 듯한 소리로 31번째 아이스크림 '피스타치오아몬드!'를 외친 종업원은 그대로 뒤로 쓰러진다. 이윽고 화면 위로 카피 한 줄이 뜬다.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

17초가량에 걸쳐 수십 가지의 아이스크림 이름을 쏟아내는 이 광고는 배스킨라빈스가 1996년 선보인 대표작입니다. 배스킨라빈스의 정체성인 '골라먹는 재미'를 단번에 각인시킨 이 광고는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는데요. '골라먹는 재미'라는 브랜드 정체성을 단번에 각인시킨 광고였습니다. 오직 메뉴 이름을 나열하는 것만으로 브랜드를 각인시킨 이례적인 방식이었습니다.

새 시장 열다

배스킨라빈스는 1986년 서울 명동에 배스킨라빈스 1호점을 열며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당시 아이스크림 시장은 해태, 롯데, 빙그레, 롯데삼강 등 이른바 '빅4'가 주도하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마트에 가서 쉽게 살 수 있는 막대바 타입이 가장 흔했고, 집에서 온 가족이 나눠 먹을 수 있는 통 아이스크림도 인기였죠. 

반면 배스킨라빈스는 프리미엄 아이스크림을 표방하며 스쿠핑(Scooping) 방식을 국내에 처음 선보였습니다. 고객이 직접 취향에 맞는 맛을 고르면, 종업원이 통에서 아이스크림을 한 스쿱씩 퍼서 무게로 값을 매기는 방식인데요. 당시로선 대단히 낯선 개념이었습니다. 가격도 슈퍼에서 사 먹는 아이스크림보다 훨씬 비싸다 보니 진출 초기에는 존재감을 키우지 못했습니다. 

전환점이 찾아온 건 1996년에 선보인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는 카피의 광고들이었습니다. 매장에 방문하면 취향에 따라 수많은 메뉴 중 직접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을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카피인데요. 

배스킨라빈스 청담점. / 사진=비알코리아

첫 광고 이후 방영된 후속 광고 역시 같은 맥락이었습니다. 두 번째 광고의 경우 같은 종업원에게 한 여자아이가 찾아와 속사포처럼 아이스크림 이름을 읊어댑니다. 종업원이 놀라서 이 맛 저 맛 담아내자, 아이는 메뉴 읊기를 끝내고 태연하게 '거기서 23번째 거요!' 하고 주문을 던집니다. 아이스크림을 한아름 안고 있던 직원이 허탈함에 자빠지는 이 유쾌한 광고 역시 브랜드의 콘셉트를 일관되게 보여주는 장면이었죠.

이후 '써리원' 대신 '삼십일'이라 읽는 중년 남성이 등장해 웃음을 주는 광고에도, 자녀에게 전화를 걸어 아이스크림을 골라주는 아빠가 나오는 광고에도 '골라먹는 재미'라는 카피가 계속 등장했습니다. 지금도 배스킨라빈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표 문구가 됐죠.

써리~원

이 당시 광고 말미에 늘 등장하던 브랜드 이름도 많은 분들의 머릿속에 남아 있을 겁니다. "배스킨 롸~빈스 써리원" 하며 영어 원어민처럼 혀를 잔뜩 굴려 발음하는 광고 속 징글도 당시엔 꽤 신선했다고 하네요. IMF 외환위기로 많은 기업들이 '애국' 마케팅을 강조하던 때에도 배스킨라빈스는 이 징글을 유지했습니다. 이국적인 영단어는 브랜드에 자연스럽게 프리미엄한 느낌과 유쾌한 느낌을 더해줬습니다.

재미있는 건 당시 브랜드 이름에 들어 있던 31이 배스킨라빈스의 아이스크림 종류 수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지금도 배스킨라빈스 이름을 들으면 많은 사람이 '31가지의 아이스크림'을 떠올릴 텐데요. 실제로는 한 달 31일 동안 매일 다른 맛의 아이스크림을 즐길 수 있다는 뜻을 담은 숫자라고 하네요. 매장마다 실제로 31가지 맛을 모두 갖추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매달 새로운 맛이 추가되고 빠지는 구조라 상시 판매하는 맛의 가짓수는 매장별로 차이가 있다고 하죠.

그럼에도 숫자 31은 여전히 배스킨라빈스라는 브랜드를 상징하는 코드로 자리 잡았습니다. 대학생들 사이에서 술자리 게임으로 퍼진 '배스킨라빈스31'이 대표적입니다. '배스킨라빈스 써리원' 하는 노래를 부른 후 참가자들이 31까지 숫자를 이어 부르다가 마지막 숫자 31을 부른 사람이 벌칙을 받는 게임입니다. 배스킨라빈스라는 브랜드가 대중적인 놀이 문화에까지 파고들었다는 뜻이겠죠.

사진=비알코리아

31일에 맞춘 프로모션도 브랜드 상징성을 꾸준히 재확인시켜 온 장치입니다. 매년 31일이 있는 달마다 패밀리 사이즈를 하프갤런 사이즈로 무료 업그레이드해 주는 '31데이'인데요. 이 이벤트 역시 숫자 31을 소비자 혜택과 연결하며 브랜드 정체성을 꾸준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배스킨라빈스는 지금도 다양한 맛을 내놓으며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는 약속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매달 1일에는 새로운 맛의 아이스크림을 출시하는 '이달의 맛' 마케팅을 지금도 펼치고 있는데요. 최근에는 8월의 '이달의 맛'인 '산딸기가 끌리는 연유'의 인기가 높습니다. 산딸기 소르베와 연유를 조합한 맛, 인기 배우가 된 박지훈과 재치 있는 네이밍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하네요.

처음에는 낯설기만 했던 스쿠핑 방식과 '골라먹는 재미'는 어느덧 우리의 일상적인 풍경이 되었습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매달 새로운 맛을 고민하고 고르는 즐거움은, 배스킨라빈스가 여전히 우리 곁에서 사랑받는 이유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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