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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돈 빨리 준다는데…'정산주기' 단축 딜레마

  • 2026.09.10(목) 07:00

정산 60일→35일…일부 전면 재검토 요구
중소 납품업체 판로 위축 우려 커져
차등 적용 요구…시행령 보완 필요성 대두

그래픽=비즈워치

정산 기한을 대폭 단축하는 '대규모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대규모유통업법)' 개정안을 두고 유통 현장의 반응이 크게 엇갈리고 있습니다. 납품업체와 소상공인 중 일부는 환영의 뜻을 내비친 반면, 다른 일부는 오히려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라며 전면 재검토까지 요구하고 있습니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보호하겠다는 취지의 법안인데, 보호 대상인 이해관계자들 사이에서 정반대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겁니다.

늑장 정산의 종언?

정산 기한 단축 법안 논의를 촉발시킨 것은 2024년에 발생한 티메프(티몬·위메프) 미정산 사태입니다. 당시 티몬과 위메프는 다른 유통업체들과 마찬가지로 소비자가 결제한 돈을 곧바로 납품업체에 주지 않고, 자사 계좌에 묶어뒀다가 뒤늦게 정산해 주는 구조로 운영 중이었는데요. 문제는 이 대금을 다른 곳에 쓰거나 회사 운영 자금으로 돌려막다가 대규모 미정산 사태까지 벌어졌다는 점입니다. 이때 판매대금을 제때 받지 못한 많은 중소 납품업체들은 연쇄 부도 위기에 몰리기까지 했죠.

이 시기 정치권에서는 플랫폼이 납품업자의 돈을 더 빨리 정산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는데요. 정산 기한을 더 줄여서 중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을 위한 안전망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었습니다. 이에 국회 정무위원회는 지난 3일 전체회의에서 대규모유통업법을 개정해 정산 기한을 대폭 단축하기로 했습니다.

이번 개정안에는 직매입 거래, 특약매입 등의 주요 유통 거래의 대금 정산 시한을 크게 줄이는 내용이 포함돼있습니다. 유통업체가 상품을 직접 사들여 재고 부담까지 떠안는 방식의 직매입 거래의 경우, 유통업체가 상품을 사들여 수령한 시점에서부터 35일 이내에 대금을 지급해야 합니다. 기존 60일보다 크게 단축됐죠.

티메프 사태 당시 티몬 본사 앞.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또 백화점 등에서 활용되는 특약매입·위수탁·매장임대 거래의 지급 기한도 줄이기로 했습니다. 특약매입·위수탁·매장임대는 실제로 팔린 만큼 수수료를 뗀 후 대금을 납품업체에 정산해줍니다. 이 때문에 지급기한도 상품 수령일이 아니라 월 판매마감일을 기준으로 계산하는데요. 현재는 월 판매 마감일부터 40일 이내에 대금을 지급해야 하지만 개정안은 20일 이내에 지급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 개정안이 시행되면 실제로 대금 정산이 빨라져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정산이 빨라지면 그만큼 다음 상품을 매입하고 임대료와 인건비를 치를 돈을 더 일찍 확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많은 소상공인과 중소기업들이 이 개정안에 대해 환영의 뜻을 밝히고 있는데요. 대표적으로 소상공인연합회는 "판매대금은 단순한 정산금이 아니라 사실상의 운전자금"이라며 "지급기한 단축은 소상공인의 자금 유동성을 개선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치"라고 환영했습니다.

판로 막힌다?

하지만 모든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이 이 개정안을 반기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한국온라인쇼핑협회,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벤처기업협회, 한국중소상공인협회, 한국플랫폼입점사업자협회 등의 단체는 이 개정안에 대해서 전면 재검토까지 요구하고 나섰는데요. 오히려 이 개정안이 유통 생태계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들이 지적하는 것은 정산 기한 단축으로 유통업체의 현금 부담이 커지면 결국 중소 납품업체가 피해를 본다는 점입니다. 직매입은 유통업체가 상품을 사들이는 순간 그 상품의 소유권과 재고 위험을 넘겨받는 거래입니다. 상품을 사들이는 데 쓴 돈은 그 상품이 실제로 팔려야 회수되죠.

그래픽=비즈워치

현재는 대금 지급 기한인 60일 사이에 상당수 상품이 팔려 회수된 돈으로 다음 매입을 이어갈 여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대금 지급 기한이 짧아지면 상품이 덜 팔린 상태에서도 유통업체가 자기 돈을 먼저 꺼내야 하는 상황이 늘어날 수 있습니다. 유통업체 입장에서는 더 많은 운전자금이 필요해진다는 의미입니다. 

이 경우 유통업체는 차라리 매입을 줄여서 운전자금 부담을 줄이는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매입이 줄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납품업체에게 돌아갑니다. 인지도와 판매 데이터가 부족한 신생 브랜드나 스타트업, 중소기업 제품부터 발주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는 게 일부 단체들의 주장입니다.

이런 자금 압박을 피하기 위해 일부 유통업체가 특약매입으로 거래 방식을 바꿀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특약매입은 팔린 만큼만 정산해주는 방식으로 재고 위험을 납품업체가 지는데요. 직매입에서 특약매입 방식으로 거래가 전환되면 중소업체가 떠안을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실제로 한국개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특약매입은 직매입보다 대금 지연이나 불공정거래 발생 빈도가 2~3.5배가량 높다고 하네요.

보완의 필요성

개정안에 대해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는 단체들은 정산 기한을 일률적으로 적용하지 않고 업태와 매입 유형, 기업 규모에 따라 지급기한을 다르게 적용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한국온라인쇼핑협회는 직매입 35일, 특약매입 20일이라는 일률 기준부터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회생 절차를 밟고 있는 홈플러스처럼 유동성이 취약한 기업에는 시행을 유예하거나 단계적으로 기한을 줄이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주장인데요. 

그래픽=비즈워치

코리아스타트업포럼도 거래 방식과 사업자의 규모, 재무 여건을 고려해 적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개정안 시행까지 충분한 준비 기간을 두고, 시행 이후에는 신생 브랜드와 스타트업의 판로에 실제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지속적으로 점검하는 장치를 마련해 달라는 내용입니다.

이외에도 개정안에 찬성하는 단체들도 입법 보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판매대금을 유통업체의 일반 자금과 분리해 보관하는 결제대금예치 제도까지 함께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결국 법안의 실효성은 앞으로 만들어질 시행령에 달렸습니다. 국회는 자금난을 겪는 유통사에 예외를 둘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예외 기준을 넓게 잡으면 법안의 취지가 흐려지고, 반대로 너무 엄격하게 적용하면 회생을 추진 중인 취약 유통사들이 직격탄을 맞을 수 있습니다. 납품업체 보호와 유통 생태계 위축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시행령이 만들어질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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