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돌담길을 따라 달리는 '고궁 런' 열풍에 북촌과 서촌 일대가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들의 새로운 격전지로 떠올랐다. 뉴발란스와 아디다스가 터를 잡은 일대에 최근 푸마까지 가세하면서다. 단순히 러닝 제품을 파는 곳을 넘어 대여와 코칭, 커뮤니티 공간까지 갖춘 '체험형 러닝 거점'을 갖춘 브랜드들의 경쟁이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고궁으로 모여라
러너들이 퇴근 후 경복궁과 광화문 인근으로 모이고 있다. 출근복을 입고 매장을 찾은 뒤 러닝복으로 갈아입고 북촌 일대를 달리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처럼 서촌과 북촌 일대가 '러너들의 성지'로 떠오르면서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들의 러닝 특화 매장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뉴발란스는 지난해 3월 북촌 직영점을 '런 허브(Run Hub)'로 전환했다. 2021년 클래식 스니커즈 전문 매장으로 문을 열었던 공간을 러닝 상품 체험과 대여 중심으로 바꿨다. 이곳에서는 러닝화를 5000원, 러닝 의류를 3000원에 빌릴 수 있다. 무료 짐 보관과 러닝 코스 안내, 휴게 공간도 운영한다. 러닝을 마친 뒤에는 체험한 제품을 10% 할인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하루 평균 약 70팀이 서비스를 이용할 정도로 러너들의 관심도 높다.
뉴발란스 북촌점에서는 발 아치와 너비, 길이 등을 측정하는 '스트라이드 아이디(STRIDE I.D.)'를 통해 러닝화 선택도 돕는다. 직접 제품을 신고 달려본 뒤 자신의 발과 러닝 스타일에 맞는 제품을 고를 수 있다는 점에서 체험 서비스가 구매로 이어지는 구조다. 지난해 뉴발란스의 러닝화 라인 매출은 전년 대비 109% 성장했다.
뉴발란스 관계자는 "뉴발란스의 러닝 상품을 부담 없이 체험해보고 자신에게 맞는 상품을 찾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기획된 공간"이라며 "러닝 트라이얼을 비롯해 고객의 신중한 구매 결정을 돕는 오프라인 서비스를 확대하고 건강한 러닝 문화 확산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월 문을 연 '아디다스 퍼포먼스 서촌'은 아디다스 매장 중 처음으로 매장 전면을 러닝 관련 제품으로 구성했다. 전체 면적의 70%가 러닝화와 러닝 의류, 용품이 채워졌다. 러닝 제품을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러너들이 휴식하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다.
풋스캐너를 활용한 사이즈 추천과 커스텀 서비스도 제공한다. 아디다스 제품을 착용하고 방문한 멤버십 회원에게는 무료 짐 보관 서비스도 제공한다. 아디다스에 따르면 매장에는 하루 평균 400명이 방문하고 있다. 매장은 내년 3월까지 장기 팝업 형태로 운영될 예정이다.
아디다스 관계자는 "서촌 매장은 단순한 판매 공간을 넘어 브랜드의 러닝 철학과 지역 문화를 연결하는 공간"이라며 "상권 특성에 맞춘 러닝 특화 매장이 거점 역할을 하면서 이곳에 모여 서촌 일대를 달리는 러너들도 많아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여기에 푸마도 가세했다. 푸마는 지난 11일 북촌 화동에 '스니커 박스 북촌점'을 열었다. 푸마 북촌점은 국내 푸마 매장 최초로 전문 러닝 코치가 풋스캐너와 트레드밀을 활용해 러닝 자세를 확인해주는 '러닝랩'을 갖췄다. 야외에는 러너들이 쉬어갈 수 있는 '푸마당'을 조성하고 운동 후 정돈할 수 있는 파우더룸도 마련했다.
이들 매장의 공통점은 제품을 '파는 공간'에서 '경험하는 공간'으로 구성했다는 점이다. 자신에게 맞는 러닝화를 찾아주거나 취향에 맞게 제품을 커스텀할 수 있도록 하고, 러닝화와 의류를 직접 빌려 신어볼 수도 있다. 단순한 제품 판매보다 소비자가 브랜드를 직접 경험하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춘 전략이다.
달아오른 러닝화 경쟁
최근 국내 러닝화 시장은 독주하던 나이키의 기세가 다소 누그러진 사이 아디다스, 아식스, 호카, 온러닝 등 글로벌 브랜드들이 격전을 벌이는 구도로 재편됐다. 러닝 인구가 빠르게 늘면서 러너들의 선택지가 다양해진 영향이다.
여기에 도전장을 내민 푸마는 그동안 최상급 러너를 겨냥한 제품을 중심으로 러닝 시장에서 인지도를 쌓아왔다. 상대적으로 대중적인 러닝 브랜드로서의 존재감은 크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최근 피트니스 레이스 '하이록스(HYROX)'의 공식 파트너사로 참여하는 등 퍼포먼스 영역에서 접점을 넓히며 브랜드 존재감을 다시 알리고 있다.
푸마 본사는 서울과 상하이를 글로벌 패션 및 트렌드를 주도하는 도시로 보고 성수점에 이어 전 세계 세 번째 글로벌 콘셉트 스토어 '스니커 박스'를 북촌에 열었다. 특히 북촌점은 푸마가 러닝 시장에서 브랜드 경험을 확대하는 거점 역할을 한다.
푸마 러닝 전체 라인업을 선보이는 것은 물론 '러닝랩'에서 전문 러닝 코치의 자세 분석을 받고 자신에게 맞는 러닝화를 찾아볼 수 있다. 코칭 전후의 자세를 비교하고 이후 보완하면 좋은 운동까지 안내한 뒤 결과를 리포트로 제공한다. 제품 판매를 넘어 개인 맞춤형 체형·자세 분석 데이터를 통해 러너의 실질적인 성장을 돕고 푸마 러닝화의 기술력과 전문성에 대한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푸마는 북촌점의 러닝랩을 러닝 시장 공략을 위한 거점으로 삼고 브랜드 입지를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올 상반기에는 러닝화 '디비에이트 나이트로' 네 번째 시리즈를 선보였다. 푸마의 독자 기술인 나이트로폼(질소 주입 중창 폼)을 적용한 제품으로 일상 러닝을 시작하는 입문자를 겨냥했다. 러닝 트레이닝 프로그램 '런 푸마 팸'도 6기째 운영하고 있다. 다음 달에는 하프마라톤 대회 '서울레이스' 후원사로도 참여할 예정이다.
김요한 푸마코리아 VMD 팀장은 "북촌점은 푸마 러닝 전체 라인업을 같이 보여주는 매장으로 러닝 코칭 체험을 하고, 짐을 맡기고 북촌, 삼청동이라는 좋은 러닝 코스를 트라이얼할 수 있는 공간"이라며 "모터스포츠, 러닝화, 하이록스 등을 아우르는 퍼포먼스와 스포츠 스타일이라는 세 축을 아우르는 종합 스포츠 브랜드로서의 정체성을 보여주고 앞으로도 지역별 특색을 살린 스토리텔링을 통해 매장마다 다른 경험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러너의 발길로 완성된 상권
그렇다면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들은 왜 북촌과 서촌에 모이고 있을까. 그 배경에는 이 지역만의 지리적·문화적 특성이 존재한다. 경복궁과 고궁 담장을 따라 완만하게 이어지는 코스는 가파른 오르내림이 없어 러너들이 꾸준한 페이스를 유지하며 달리기에 적합하다.
특히 경복궁 담벼락을 끼고 달리는 '고궁 러닝'은 국내 러너뿐만 아니라 한국을 찾은 글로벌 관광객들까지 불러 모으는 독특한 매력 요소다. 고즈넉한 한옥과 돌담길이 주는 고유의 풍경은 상업 시설이 빽빽한 도심 한복판에서는 느낄 수 없는 고유한 경험을 선사한다.
이곳을 찾는 러너들이 늘자 러닝후 즐길 거리도 늘고 있다. 북촌과 서촌은 대형 상업시설이 밀집한 상권과 거리가 있는 대신 골목 곳곳에 카페와 브런치 매장, 러닝 관련 편집숍 등이 자리한다. 운동을 마친 뒤 커피를 마시거나 식사를 하고 쇼핑까지 이어지는 소비가 가능한 셈이다.
이처럼 스포츠 브랜드들이 지역의 결을 살린 체험형 거점을 구축하는 것은 러닝을 생활 밀착형 문화로 소비하는 젊은 러너층의 라이프스타일과 맞닿아 있다. 달리기를 매개로 결성된 크루 문화가 골목 상권의 식음료·쇼핑 소비로 이어지고, 나아가 글로벌 관광객에게 한국적인 도심 러닝의 매력을 알리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면서 북촌과 서촌은 러닝 특화 지역으로 자리 잡는 분위기다.
업계 관계자는 "북촌과 서촌은 단순한 유동인구 확보 차원을 넘어 고궁이라는 대체 불가능한 로컬 컨텐츠와 결합해 브랜드의 진정성을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시험대"라며 "러너들이 모여들고 쉬어가는 특화 매장이 늘어남에 따라 이 지역은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들이 브랜드 유산과 퍼포먼스 기술력을 동시에 각인시키는 핵심 거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