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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내 일]지리산 흑돼지, 'K하몽'으로 변신한 비결

  • 2026.10.08(목) 10:00

박자연 농업법인 조아·더찹샵 대표 인터뷰
1차 생산부터 지자체 R&D·미식관광까지
8년차 청년 창업가가 일군 지역 자립기

일자리를 찾고, 집을 구하고, 자산을 불리는 일까지. 청년들의 삶은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습니다. 수도권에 몰린 일자리와 높은 주거비, 치열한 경쟁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 도시를 떠나는 청년들도 있습니다. 이들에게 지역은 단순히 삶의 터전을 옮기는 곳을 넘어, 자신만의 일을 만들고 자립을 시작하는 공간이 되기도 합니다. 비즈워치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통해 지역을 기반으로 사업을 일군 청년 창업가들을 만났습니다. [청년, 내 일]을 통해 지역에서 자신의 일과 미래를 만들어가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편집자]

더찹샵 박자연 대표가 회사에 대해 소개하는 모습/사진=김다이 기자 neverdie@

"지방이나 농촌에서의 창업은 단순히 거주지를 옮기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 지역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고, 지원사업을 적재적소에 활용해 연차별로 스케일업하는 선택과 집중이 중요합니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해발 500m 지리산 자락에 자리 잡은 '더찹샵(The Chop Shop)'. 이곳에서는 가족이 직접 키운 지리산 흑돼지 '버크셔K'가 하몽과 샤퀴테리(유럽식 건조 육가공품)로 다시 태어난다. 지난 2018년 사업을 시작한 박자연 대표는 수입산 위주이던 샤퀴테리(유럽식 건조 육가공품)와 하몽 시장에서 국내 순종 흑돼지 품종인 '버크셔K'를 활용한 'K샤퀴테리'로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했다.

박 대표가 처음부터 지역 창업을 염두에 뒀던 것은 아니다. 가족이 가진 생산 기반에서 출발해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았고 그 과정에서 남원이라는 지역 자체가 사업의 경쟁력이 됐다.

현재 더찹샵은 컬리와 쿠팡 등에 입점했고, 신세계푸드 등과 협업하며 판로를 넓혔다. 연구개발과 생산시설 투자도 이어가고 있다. 8년간 자신의 브랜드를 키워가고 있는 박자연 대표를 만나 청년 창업과 지역 안착 과정에서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가장 잘하는 것에 집중

박 대표가 창업 전선에 뛰어들게 된 건 가족의 영향이 컸다. 육종 전문가인 아버지는 축산업에 종사하며 영국 품종 흑돼지 버크셔를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개량해 '버크셔K'를 탄생시켰다. 어머니는 육가공업에 종사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어머니가 만들던 하몽을 처음 접한 뒤 자연스럽게 육가공에 관심을 갖게 됐다. 

박 대표가 처음부터 육가공을 진로로 정한 건 아니었다. 그는 원래 미술·디자인 분야에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군 복무를 거치며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다. 그가 선택한 분야는 샤퀴테리였다. 익숙하면서도 가족들의 사업과 연계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사업을 펼치게 된 계기는 유럽 여행이었다. 하몽을 비롯해 다양한 육가공품을 접하면서 돼지고기를 생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육가공을 통해 더 높은 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구체화됐다.

박 대표가 샤퀴테리를 슬라이스하고 있다./사진=김다이 기자 neverdie@

박 대표는 "저도 너무 생소하고 주변에서 검색을 해봐도 잘 나오지 않았다"며 "성인이 돼 유럽을 여행하면서 샤퀴테리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육가공 관련 학사과정을 밟고 유럽에서 육가공 단기 과정도 수료하며 전문성을 쌓았다.

가족이 이미 돼지를 생산하고 하몽을 만드는 기반을 갖추고 있었다면 박 대표가 새롭게 맡은 영역은 여기에 브랜드와 유통을 더하는 일이었다. 생산한 원료를 가공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소비자가 직접 찾는 제품과 브랜드로 만드는 과정은 이전과 다른 사업 영역이었다.

이 과정에서 활용한 게 바로 지역자치단체의 '창업 지원사업'이다. 박 대표는 2018년 전북대학교 창업지원단의 지원사업을 시작으로 브랜드 구축에 필요한 디자인과 마케팅, 패키지 등 소프트웨어 분야의 지원을 받았다. 이후 사업이 성장하면서 필요한 장비와 연구개발 분야로 지원사업 활용 범위를 넓혀갔다. 

박 대표는 지자체의 지원을 기반 삼아 2018년 농업법인 '조아'를 설립했다. 이듬해인 2019년에는 '더찹샵'이라는 브랜드 매장을 열며 생산한 육가공품을 소비자에게 직접 선보이기 시작했다.

지원사업도 성장 단계에 맞춰

박 대표가 사업을 키우는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은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사업이었다. 창업 초기에는 브랜드를 만들고 제품을 알리는 데 집중했다. 사업 기반이 갖춰진 뒤에는 판매 환경 개선과 제품 고도화, 연구개발로 지원 분야를 넓혔다. 

첫 단계는 2019년에 받았던 '후계농 영농정착 지원사업'이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미래 농업을 이끌 청년·후계농업경영인의 영농 창업과 기반 마련을 돕는 사업으로, 박 대표는 이를 통해 지역에 정착해 사업을 이어갈 기반을 마련했다.

이후에는 식품 분야 창업 지원으로 눈을 돌렸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식품산업클러스터진흥원이 운영하는 '청년 식품 창업 성장 지원사업' 등을 활용해 식품 시제품 제작과 멘토링, 제품 실증, 투자유치(IR) 등 사업화 과정에 필요한 지원을 받았다. 국가식품클러스터의 시설과 장비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도 제품을 개발하고 사업성을 검증하는 데 도움이 됐다.

/그래픽=비즈워치

사업 기반을 갖춘 뒤에는 판매와 브랜드 구축에 필요한 지원을 받았다. '깨끗하고 소득있는 축산물 판매장 만들기' 사업을 통해 판매장의 위생·영업 환경을 개선했다. '전통식품마케팅활성화지원' 사업으로 브랜드 네이밍과 CI·BI, 패키지 디자인 개발, 홍보와 판로 확대 등에 필요한 지원을 활용했다. 생산한 육가공품을 만드는 데서 그치지 않고 소비자가 찾는 브랜드로 키우는 과정이었다.

부딪히며 깨달은 결과 지원사업을 찾는 방식도 바뀌었다. 무조건 많은 사업에 지원하는 대신 그해 회사에 필요한 것을 먼저 정하고 이에 맞는 사업을 골랐다. 창업 초기 영농 기반을 마련하는 데서 시작해 판매 환경과 브랜드를 구축하고, 연구개발과 제품 고도화로 지원의 목적도 단계적으로 달라졌다. 최근에는 '시군구 연고산업 육성사업'에 참여하며 제품 고도화와 사업화를 이어가고 있다. 

박 대표는 "지금도 창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에게 지원사업을 막연하게 여러 개 받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며 "매년 목적이 있어야 한다. 우리 회사에 뭐가 필요한지 먼저 생각하고 사업계획을 짠 뒤 올해는 이것을 개선해보자는 식으로 접근하면 선택과 집중도 되고 효율도 좋다"고 설명했다.

사업이 어느 정도 성장궤도에 오른 기업이라면 성장 단계에 맞는 지원사업을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박 대표는 복합산업의 성장 단계에 따라 지원하는 '6차산업 돋움·도약·고도화 지원사업'을 사례로 들었다. 초기 투자에 그치지 않고 사업의 성장 단계에 맞춰 후속 지원을 받을 수 있어 이미 기반을 갖춘 기업의 다음 성장을 뒷받침하는 사업이라는 설명이다.

박자연 대표가 샤퀴테리 관련한 연구를 진행 중인 모습/사진=더찹샵

현재 더찹샵이 활용하는 지원사업은 제품의 품질을 높이는 연구개발로 이어졌다. 더찹샵은 축산 관련 연구기관과 수년간 연구를 진행한 데 이어 올해는 '동부권 미생물 실증 사업'을 통해 지역 연구기관과 연계해 발효에 필요한 미생물 소재를 연구하고 제품 적용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박 대표는 "샤퀴테리는 발효와 숙성 과정에서 미생물 환경이 중요하지만, 국내에서 활용할 수 있는 일부 발효용 균주는 종류가 제한적"이라며 "여러 업체가 같은 균주를 사용하면 원료와 레시피 외의 차별화를 만들기 어렵다는 판단에서 자체적인 균주 개발 필요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하고 여름에는 온·습도가 높기 때문에 국내 환경에 맞는 균이 필요하다"며 "전문기관이 갖고 있는 전문성을 활용해 우리 상품의 환경을 개선하는 게 장기적으로 훨씬 좋겠다고 생각해 연구사업에 참여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지리산 환경 자체가 경쟁력

사업을 키울수록 박 대표가 주목한 건 남원이라는 지역 자체였다. 더찹샵이 자리한 운봉은 해발 약 500m의 지리산 자락이다. 발효와 건조 과정에서 온·습도 등 자연환경이 중요한 만큼 고지대의 환경을 생산 과정에 활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가족이 직접 사육하고 개량해 온 버크셔K가 있다. 지역에서 아버지와 동생이 돼지를 키우고 이를 가공해 제품으로 만든 뒤 전국에 판매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지역성은 체험 사업으로도 이어졌다. 사업 초기에는 인근 초·중·고교와 대학생 등을 대상으로 소시지 만들기와 발효 제조 등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이후에는 샤퀴테리 플래터를 맛보고 생산지의 이야기를 듣는 미식관광으로 방향을 넓혔다.

미식 관광 프로그램에서 제공했던 샤퀴테리와 와인/사진=김다이 기자 neverdie@

과거에는 소비자가 직접 하몽을 만들어 숙성한 뒤 수년 후 다시 찾아오는 '내 하몽 만들기' 체험도 운영했다. 제조 과정에 많은 시간이 필요해 현재는 중단했지만, 생산과 체험을 연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경험이었다.

지역에서 사업을 시작하려는 청년들에게 박 대표가 가장 강조하는 것도 지역성이다. 그는 "시골에서 창업하는 분들은 여기 없는 것을 하려고 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며 "그런 접근보다는 지역성과 연결해서 이 지역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걸 통해 시골에 정착하고 소득을 낼 수 있고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는 아이템이어야 지속력이 있다"면서 "그래야 견딜 힘도 생기고 본인만의 브랜드도 탄탄해진다"고 강조했다.

커진 시장, 남은 숙제는 인력

지역에 기반을 둔 기업이 전국 소비자와 만나는 과정에서는 시장 변화도 영향을 미쳤다. 박 대표는 코로나19를 중요한 전환점으로 꼽았다.

박 대표는 "코로나가 엄청 컸다"며 "해외여행을 못 가니까 해외에서 못 먹었던 식문화를 한국에서 어떻게든 소비하고 싶어 했던 소비층도 있었고 와인 등 주류 소비가 다양해지면서 함께 먹는 음식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고 말했다. 샤퀴테리 역시 기존의 술안주로 소비되던 수준에서 샌드위치와 샐러드, 파스타 등으로 소비 영역을 넓혔다.

시장이 커지자 더찹샵을 향한 러브콜이 쏟아졌다. 더찹샵은 컬리와 쿠팡 등에 입점하며 판로를 넓혔고 신세계푸드와 협업해 버크셔K를 접목한 노브랜드버거를 출시하기도 했다. 또 현대백화점에서 명절용으로 샤퀴테리를 선보이면서 소비자 접점도 확대했다.

박자연 더찹샵 대표/사진=김다이 기자 neverdie@

사업 규모가 커졌지만 지역 제조업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박 대표에 따르면 현재 연 매출은 약 12억원이지만 지난해까지 근무하던 직원 2명이 모두 떠나 현재 정규 직원은 없다. 그는 "요즘 인력난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여기는 구하기 힘든 게 아니라 기본 인구 자체가 없다"고 말했다.

외국인 인력 역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는 어렵다고 봤다. 특정 업종에서 일할 수 있는 비자로 입국한 뒤 일정 기간이 지나 비자를 변경하면 선택할 수 있는 업종이 넓어지는 만큼 인력을 장기간 유지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결국 박 대표가 택한 방향은 자동화다. 그는 "사람에게 기대서 할 수 있는 산업이 제조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결론은 자동화라고 생각해 이를 고도화해나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코리아 샤퀴테리

더찹샵은 현재 다음 성장 단계를 준비하고 있다. 박 대표는 "수요 증가에 대응해 올해 생산시설을 대대적으로 확충하고 있다"며 "11월 말까지 자동화 설비를 도입해 생산량을 현재보다 10배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해외 시장 진출도 준비한다. 브랜드명과 로고, 패키지 등 전반적인 리브랜딩에 나서며 '더찹샵'을 '고도'라는 이름의 브랜드로 새롭게 선보일 계획이다. 국내산 돼지고기와 지역의 생산환경을 기반으로 한 '코리아 샤퀴테리'를 앞세워 해외 시장을 두드리겠다는 구상이다.

더찹샵에서 숙성중인 하몽/사진=더찹샵

그는 장기적으로 버크셔K와 샤퀴테리를 중심으로 외식과 간편식, 냉동식품, 밀키트, 체험관광을 연결하고 생산지 자체를 하나의 콘텐츠로 만드는 '외식 테마파크'까지 만들고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박 대표는 “지금 더찹샵을 육가공 브랜드나 정육 브랜드로만 알고 계신 분들이 많은데, 이를 넘어 식문화 전반을 아우를 수 있는 복합 브랜드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라면서 "단순히 제품을 맛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생산지의 환경과 브랜드 스토리까지 함께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차근차근 만들어가겠다"고 밝혔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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