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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내 일]'막걸리 사랑' 경주 청년, 술독에 푹 빠진 사연

  • 2026.10.10(토) 10:30

경주 농산물로 만드는 전통주
체리·신라봉·멜론·토마토까지
경주 와야만 만날 수 있는 제품
관광객에게 먼저 인정받고 해외로

김민영 경주식회사 대표/사진=김다이 기자 neverdie@

일자리를 찾고, 집을 구하고, 자산을 불리는 일까지. 청년들의 삶은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습니다. 수도권에 몰린 일자리와 높은 주거비, 치열한 경쟁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 도시를 떠나는 청년들도 있습니다. 이들에게 지역은 단순히 삶의 터전을 옮기는 곳을 넘어, 자신만의 일을 만들고 자립을 시작하는 공간이 되기도 합니다. 비즈워치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통해 지역을 기반으로 사업을 일군 청년 창업가들을 만났습니다. [청년, 내 일]을 통해 지역에서 자신의 일과 미래를 만들어가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편집자]

경상북도 경주에는 조금 특별한 술을 만드는 전통주 양조장이 있다. 체리와 신라봉, 멜론, 토마토 등 경주에서 나는 농산물을 담은 전통주를 만드는 '경주식회사'다. 경주식회사를 이끄는 1999년생 김민영 대표는 지역 농가를 직접 찾아가 원물을 구하고 경주를 찾은 관광객이 이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술을 만드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20살 무렵 전통주와 막걸리에 푹 빠져 사업을 시작한 그의 목표는 단순히 술을 많이 파는 것이 아니다. 지역의 자원을 제품에 담고, 지역 안에서 먼저 인정받는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먼저라고 판단했다. 2022년 창업해 4년째 사업을 이어가고 있는 김 대표를 만나 지역에서 창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부터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제품 개발, 청년창업 지원사업에 대한 생각과 앞으로의 목표까지 들어봤다.

전통주에 빠진 20살 청년

김 대표의 창업은 전통주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됐다. 20살 무렵 그는 국내에도 좋은 전통주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막걸리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전통주의 매력에 빠져 직접 술을 빚고 사람들과 나누는 과정에서 창업을 결심했고 자연스럽게 이를 사업으로 이어가겠다고 마음 먹었다.

김 대표는 자신이 어릴 때부터 자란 경주를 사업지로 선택했다. 전통주와 지역색을 연결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경주는 관광도시라는 브랜드 이미지가 강하고, 문화재와 다양한 스토리를 담고 있는 도시"라며 "지역 자체가 브랜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경주에서 사업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다만 창업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가장 큰 어려움은 '자금'과 '인프라'였다. 제조업 특성상 초기부터 설비와 공간이 필요했지만 어린 나이에 이를 모두 마련하기는 쉽지 않았다.

김민영 대표가 자신의 창업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사진=김다이 기자 neverdie@

전환점이 된 건 경주시에서 진행하는 '청년창업지원사업'이었다. 김 대표는 2022년 청년 창업자를 대상으로 한 '경주시 청년 신(新)골든 창업특구 조성사업'을 통해 오래된 창업공간의 리모델링 비용을 지원받았다. 자비 부담금을 포함한 지원금은 3000만원 정도였다. 컨설팅 받으며 제품을 고도화하고 판로를 넓힐 방법도 고민했다.

김 대표는 "오래된 점포에서 시작하다 보니 리모델링과 필요한 자재 등을 지원받았다"면서 "그보다 좋았던 건 시에서 컨설턴트를 붙여주셨는데 창업 관련된 교육과 컨설팅, 네트워크까지 창업에 필요한 많은 것들을 알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창업 초기에는 돈을 마련하는 것보다 사업을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할지 정보를 얻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을 찾는 일이 더 어려웠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 대표는 그런 어려움을 '경주시 청년창업사관학교'에서 진행하는 '창업 성공 패키지'를 통해 채워 나갔다.

'경주'를 빚다

사업을 시작할 당시 김 대표가 가장 먼저 고민한 것은 '무엇을 팔 것인가'였다. 처음에는 전통주를 많이 판매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경주에서 사업을 이어가면서 질문이 하나 생겼다.

"이 제품이 경주에 왜 있어야 할까?" 김 대표가 제품을 만들 때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이다. 그는 답을 찾기 위해 경주 곳곳을 돌아다니며 지역에서 나는 농산물을 살폈다. 체리를 비롯해 신라봉, 멜론, 토마토 등 경주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찾아다니며 술로 만들 방법을 연구했다.

김 대표는 "창업 초기부터 무작정 지역 농가를 직접 찾아다녔다"며 "경주역 옆에 큰 체리 농장이 있는데 이걸 가져가 술을 빚어서 가져다드리겠다고 말하고 체리를 공짜로 따갔다"고 회상했다. 이어 "처음에 젊은 패기를 재밌게 봐주신 것 같다"면서 "이후에는 다양한 농장에서 계약재배를 통해 원물을 공급받는 방식으로 협업을 이어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체리 막걸리 제조를 위해 체리를 수확하는 모습/사진=경주식회사

그렇게 경주식회사의 첫 번째 프로젝트인 '깁 모어 막걸리'가 탄생했다. 깁 모어 막걸리는 인간의 감정인 '희로애락'을 주제로 각 감정에 맞는 4가지의 개성 넘치는 술을 하나하나 선보이고 있다. 특히 '기쁨(喜)'을 담은 체리막걸리는 전국에서 경주식회사가 처음으로 선보인 과일막걸리다.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술은 일반 막걸리보다 만드는 과정도 까다롭다. 원물마다 향과 당도, 산도와 보관 특성이 달라 재료에 맞는 양조법을 별도로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깁 모어 막걸리에서 판매 중인 막걸리 제품들/사진=김다이 기자 neverdie@

그는 "신라봉처럼 향이 강한 과일은 향을 살리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면서 "멜론은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시큼한 맛이 올라온다. 맛이 달라지는 원물은 발효와 보관 과정에서 더욱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실패도 많았다. 여러 차례 제품을 만들고 버리기를 반복하면서 원물별 특성을 파악했다. 제품을 빠르게 늘리기보다는 충분한 연구와 테스트를 거쳐 하나씩 선보였다. 그럼에도 그가 지역 농산물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다. 단순히 막걸리를 만들어 파는 것보다 '경주에서만 만들 수 있는 술'을 만드는 것이 브랜드 경쟁력이 될 수 있다고 봤다.

김 대표는 "지역에서 사업한다고 지역이나 기관에서 알아주는 것은 아니다"라며 "결국 제품을 구매하는 것은 고객이기 때문에 고객이 우리 제품을 찾을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주에서만 살 수 있는 술

지역성을 제품에 담는 것만큼 김 대표가 공을 들인 건 '브랜드'다.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맛만으로는 수많은 전통주 사이에서 소비자의 기억에 남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제한된 자금에도 브랜드와 굿즈, 패키지에 투자했다. 

그렇게 2~3년이 지나면서 조금씩 변화가 나타났다. 제품을 알아보는 사람이 생겼고, 경주를 찾은 관광객이 다시 제품을 찾기도 했다. 김 대표가 생각하는 '지역 정착'도 이와 맞닿아 있다. 단순히 경주에 사업장을 두는 것이 아니라 지역 주민과 농가, 다른 청년 창업자들과 관계를 만들고 지역 안에서 브랜드에 대한 신뢰를 쌓는 과정이다.

체리 막걸리/사진=경주식회사

2024년에는 막걸리 하우스 '깁 모어 막걸리'를 열었다. 깁 모어 막걸리는 전통주의 문턱을 낮추겠다는 의미로 지은 이름이다. 누구든 편하게 들어와 시음하고 막걸리를 즐겨달라는 바람이 담겨있다.

지역 축제에 제품을 공급하고 다른 지역의 청년 양조업자들과 교류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경주에 머물면서도 부산, 대구, 강릉 등 다른 지역 청년 사업자들과 경험을 나누며 사업의 가능성을 넓히고 있다.

김 대표가 생각하는 지역 정착은 단순히 경주에 사업장을 두는 것이 아니다. 지역 주민과 농가, 다른 청년 창업자들과 관계를 만들고 지역 안에서 브랜드의 신뢰를 쌓는 과정에 가깝다.

김민영 경주식회사 대표/사진=김다이 기자 neverdie@

그는 "지역에서 먼저 사랑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쟤네 아직 안 망했네', '열심히 하네'라는 말이 1~3년 쌓이면 믿어주는 것 같다"면서 "경주에 왔을 때 '거기 가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회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지금 김 대표가 원하는 건 '경주에서만 살 수 있는 술'이라는 인식이다. 그래서 지금은 제품을 무작정 전국으로 유통하기보다 경주에서의 접점을 늘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김 대표는 "구하기 힘들어 여기 와야만 살 수 있다는 생각이 소비자에게 생기면, 우리 제품 자체가 경주를 방문해야 할 이유 중 하나가 될 수 있있지 않을까 싶다"라며 웃었다.

그가 궁극적으로 만들고 싶은 것도 양조장과 펍, 체험 공간을 결합한 복합문화공간이다. 단순히 술을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 방문객이 양조장을 둘러보고 직접 술을 빚어보며 경주의 이야기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구상하고 있다.

지원금은 '목적' 아닌 '수단'

김 대표는 지자체의 창업 자금 지원을 받아본 뒤 지원 정책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졌다. 창업 초기에는 사업계획을 세우고 제품을 개발하는 데 필요한 자금과 컨설팅이 절실했다. 그러나 사업을 실제로 운영하기 시작한 뒤에는 제품을 생산하고 판로를 확보하며 고객을 만드는 데 더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는 "특히 제조업은 지원사업 기간 안에 성과를 만들어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면서 "제품을 개발한 뒤 생산하고 시장에 내놓은 다음 소비자의 반응을 확인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원하는 건 단순히 더 많은 지원금이 아니다. 초기 지원이 끝난 뒤 사업이 실제로 지역에 정착했는지 살펴보고, 다음 단계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과 네트워크를 이어주는 지원이다.

김 대표는 "지원금은 그냥 수단일 뿐이지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지원을 통해 제품을 만들고 고객을 확보한 뒤에는 결국 스스로 매출을 만들고 사업을 지속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경주식회사에서 만든 술지게미 비누들/사진=김다이 기자 neverdie@

"지원사업에 한계를 두지 말라"는 당부도 이어갔다. 그는 전통주 제조 과정에서 술을 짜고 남은 부산물인 '술지게미'를 활용해 친환경 비누를 제작해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를 실천하고 있다. 과거 'K뷰티 강화 지원사업'에 도전했을 당시 최종 합격의 문턱을 넘지는 못했지만 지원사업의 명목이나 분야에 스스로 한계를 두지 않고 아이디어를 확장했다. 어디서든 자신의 사업과 연결할 수 있는 길과 아이디어를 찾아내는 유연한 태도는 김 대표가 지닌 또 하나의 경쟁력이다.

지난 4월부터는 경주시 농업기술센터에서 진행하는 '농가형 가공사업장 품질 향상 지원사업'에 선정돼 받은 지원금으로 자동화 설비 1종을 도입했다. 이 지원사업의 장점으로 농업기술센터와의 교류를 꼽았다.

그는 "지원사업을 계기로 농업기술센터와 밀접하게 지내면서 우리 사업을 꾸준히 알릴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며 "농산물과 관련한 좋은 정보를 얻기도 하고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지역에서 살아남는 게 먼저

김 대표가 4년간 사업을 이어오며 얻은 결론은 결국 '사람'과 '신뢰'다. 지역에서 사업한다고 해서 지역이 저절로 내 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지역 주민에게 신뢰를 얻고 농가와 관계를 만들며 고객에게 제품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그렇게 시간이 쌓여야 비로소 지역에서 하나의 브랜드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역에서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에게도 같은 이야기를 전했다. 김 대표는 "지역은 어디든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디에 있든 잘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 조금 헤매더라도 결국 옳은 길로 가게 돼 있다"며 "많이 부딪혀보고 깨져보고 지치지 않고 끝까지 해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지역과의 상생도 강조했다. 그는 "지역에서 뭔가를 하는 청년이라면 지역 주민과 상생하는 것도 고민했으면 좋겠다"면서 "단순히 돈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지역과 상생하고 공존하는 게 가치 있는 일이고, 지역에서 살아남으려면 좋은 이미지를 만드는 게 먼저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김민영 대표가 막걸리를 빚고 있는 모습/사진=경주식회사

지역에서 살아남는 것이 목표의 끝은 아니다. 경주에서 쌓은 브랜드와 경험을 바탕으로 사업의 외연을 넓히는 것이 경주식회사의 다음 목표다.

경주식회사는 현재 임대 공간에서 사업을 운영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자체 양조장을 갖추고 양조장과 펍, 체험 공간을 결합한 복합문화공간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자체 생산 기반을 갖춘 뒤에는 해외 수출까지 사업 영역을 넓힐 계획이다.

그는 경주를 담은 제품을 넘어 한국적인 정체성을 가진 제품으로 외연을 넓힐 계획도 세우고 있다. 막걸리에 이어 약주를 개발해 중국 시장에 선보이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미 업체 선정을 위해 구체적인 이야기도 오가고 있다. 국내 전통주 시장이 포화한 상황에서 해외에서 먼저 가능성을 확인하고 다시 국내로 돌아오는 전략도 구상하고 있다.

김 대표는 "지역에서 시작했다고 해서 지역에만 머물러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면서 "오히려 지역에서만 만들 수 있는 이야기와 자원이 전국과 해외 시장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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