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생산적 금융 확대 기조에 은행권의 중소기업대출 규모가 크게 늘었지만 최근 들어 운전자금 대출 증가세가 시설자금 대출 증가세를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성장 쏠림과 고유가·고환율·고금리 등 '3고' 지속에 따른 내수기업 부진으로 K자형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어서다. 더불어 중소기업대출 연체율이 증가하면서 중소기업과 은행 모두 부담이 커지는 상황이다.
생산적 금융 확대 속 생존자금 수요도 늘어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예금은행의 중소기업대출 잔액은 1126조에 달한다. 2021년 1분기와 비교하면 5년 새 271조원 늘어난 규모다. 올해 1분기 대기업 대출은 340조원으로 2021년 1분기와 비교하면 152조원 늘었다.
특히 올해 중소기업대출 가운데 운전자금 대출 증가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운전자금 대출 증가율이 시설자금 대출 증가율을 넘어선 성황이다.
올해 1월 시설자금 대출은 전월 대비 0.3% 증가했다. 2월엔 0.3%, 3월엔 0.2%로 증가세가 다소 둔화됐다.
반면 운전자금 대출은 1월 전월 대비 0.1% 증가한 데 이어, 2월 0.5%, 3월 0.7%로 증가폭이 확대되고 있다. 지난해 12월과 비교하면 올해 3월 기준 시설자금 대출 규모는 0.78% 증가한 반면, 운전자금 대출은 1.34% 증가하며 차이를 벌렸다.
생산적 금융 확대로 신규공장 설립, 생산라인 증설, 설비 고도화 등 시설투자 목적의 대출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올해 들어 중동 전쟁 여파에 따른 고유가, 고환율 지속과 금리 상승으로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올해 1분기 시설자금 대출은 609조원으로 2021년 1분기(432조원) 대비 41% 증가했다. 작년 1분기와 비교하면 3.8%, 증가한 수치다. 같은 기간 운전자금 대출은 2021년 대비 22%, 작년 1분기 대비 3.0% 증가했다. 두 자금의 증가율 격차가 매년 2~7%포인트 이상 벌어졌던 것과 비교해 올해 들어 차이가 크게 줄어든 셈이다.
2분기에도 이 같은 상황은 이어지고 있다. 산업별 경기 동향에 따르면 전년 동월 대비 올해 전산업 생산증가율은 3월 3.7%에서 4월 2.4%로 증가세가 약화했다. 전월 대비 기준으로는 3월 0.4% 증가에서 4월엔 0.6% 감소로 돌아섰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반도체와 같은 일부 산업의 호황이 지속되고 있으나 제조업 전반으로 경기 상승세가 강하지는 않은 것으로 진단했다.
자금 쏠림, 연체율 상승에 은행 위험 전가 우려
IT·반도체 산업으로의 자금 쏠림도 심각하다. IT·반도체 관련 제조업과 서비스업 중소기업 대출 규모는 올해 1분기 각각 324조원, 721조원 수준이다. 5년 전인 2021년 1분기와 비교하면 각각 58조원 196조원 늘었다.
반면 내수 관련 산업인 농업, 건설업 관련 중소기업 대출 규모는 올해 1분기 각각 약 33조원, 29조원으로 5년 전과 비교해 각각 8조원, 5조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여기에 중소기업의 연체율 상승도 우려를 키우고 있다. 생존을 위한 중소기업 자금 수요가 늘어나는 가운데, 연체율까지 높아지면서 생존 부담이 은행에 전가될 수 있어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4월 말 국내은행의 중소기업 원화대출 연체율은 0.9%로 작년 4월 대비 0.07%포인트, 지난달과 비교하면 0.09%포인트 상승했다. 대기업 연체율(0.22%)과 비교해 4배 이상 높은 상황이다.
당국은 연체율 및 신규연체 발생 추이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은행이 선제적인 손실흡수능력을 확충하도록 대손충당금 적립을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3고 영향으로 중소기업 운전자금 수요가 확대되고, 일부 취약업종을 중심으로 연체율 상승이 나타나는 부분을 면밀히 보고 있다"면서 "기업별 현금흐름, 상환능력, 업황 전망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자금을 공급하는 한편, 여신심사, 사후관리 강화로 리스크가 은행에 과도하게 전이되지 않도록 관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수출 호조, 경제 성장률 등 성공적인 총량지표에 가려진 K자형 산업 양극화 심화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원은 2분기 최근 경제동향과 경기 판단 보고서에서 "수출 호조가 전체 경제 활력을 견인하고 있지만, 반도체 가격 상승 등 단가 요인이 최근 수출 호황을 주도하고 있는 모습"이라며 "전체 설비투자 증가율이 낮아지는 가운데 ICT 투자 활력 약화와 제조·건설업 고용 감소분을 흡수해 왔던 서비스업의 고용창출력도 축소됐다"고 진단했다.
그는 "IT산업은 자체 시장경기 호황으로 활력이 크게 강화되고 있으나 비IT 산업의 시장 수요 둔화, 공급과잉 등으로 침체되는 모습"이라며 "K자형 양극화 심화를 막기 위해 저성장 구조가 장기화 중인 섹터에 재정을 우선 지원해 불균형한 성장구조의 균형과 부작용을 완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