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금융이 그리는 미래 은행 앱은 고객이 메뉴를 찾아다니지 않는다. 메인 화면에서 AI와 대화하듯 "이번 달 카드 사용액 알려줘", "엄마에게 20만원만 보내줘"라고 요청하면 AI가 이용자 의도를 이해해 조회와 송금 등 필요한 금융 업무를 처리하고 고객은 최종 승인만 하면 된다.
지난 20일 서울 서대문 NH농협타워에서 만난 김주식 농협금융 AI·디지털전략부문 부사장 겸 농협은행 AI데이터부문장(부행장)은 "머지않아 은행 앱 메인화면은 대화창 하나로 바뀔 것"이라며 "고객이 질문만 하면 필요한 금융 업무가 처리되고 은행의 운영 방식과 프로세스도 AI 기반으로 재설계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부행장은 말레이시아 디지털은행 '라이트 뱅크(Ryt Bank)'의 대화형 AI를 사례로 들며 "농협은행도 앞으론 이 같은 방향으로 서비스를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며 "결국 AI 경쟁은 고객 니즈를 얼마나 정확히 이해하고 필요한 금융 서비스를 얼마나 자연스럽게 제공하느냐가 승패를 가를 것"이라고 말했다.
농협금융 AX 전략은 핵심 계열사인 농협은행에서 구체화되고 있다. 올해 AX 비전을 '에이전트 AI로 디지털 뱅크 선도'로 정하고 '에이전틱(Agentic) AI 뱅크'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AI를 은행 운영 중심에 두고 2030년까지 비대면 금융거래와 여신심사 지원 등 은행 업무 전반에 AI를 적용하는 'AI 풀뱅킹(Full-Banking)'을 구현한다는 구상이다.
농협은행은 올해 초 AX 컨트롤타워인 'AI데이터부문'을 신설하고 초대 수장으로 김 부행장을 선임했다. 조직 개편과 함께 올해는 구체적인 AI 과제 구현에도 속도를 낸다. 김 부행장은 "올해 말까지 AI 챗봇 등 대고객 서비스 약 15개와 보고서 작성·여신심사 지원 등 내부 업무 과제 20개 안팎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어 "지난해부터 5개 업무 영역을 대상으로 프로세스혁신(PI)을 진행해 올해 개발에 착수했다"고 부연했다.
성과도 나타났다. 농협금융 2025 ESG경영보고서에 따르면 농협은행은 AI가 가입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한 고객을 대상으로 비대면 테스트 마케팅을 진행했고, 개인형 퇴직연금(IRP) 가입 전환율이 25%포인트(p) 향상됐다고 밝혔다. 농협손해보험도 AI로 담보와 가입금액을 추천하는 '헤아림 AI자동설계'를 8개 상품군, 10개 상품으로 늘렸다.
전 직원에 '나이스'…AI 에이전트 직접 만든다
현업 직원도 직접 업무용 AI 에이전트를 만들 수 있다. 이를 지원하는 플랫폼이 '나이스(NHAIS)'다. 개발 지식 없이도 업무 목적과 필요한 데이터, 결과물 형태를 입력해 에이전트를 설계할 수 있다. 농협은행은 12월까지 플랫폼 구축을 마치고 전 직원에게 개방할 계획이다.
AX는 내부 조직과 인수 기업, 외부 스타트업이 역할을 나눠 추진한다. 내부 실행조직 'AX프런티어'가 현장 과제 발굴과 직원 교육·확산을 담당하고 농협은행이 인수한 AI 전문기업 '애자일소다'가 대고객 서비스와 내부 업무용 에이전트를 구현한다. 자체 개발이 어려운 영역은 스타트업 협업 플랫폼 'NH오픈비즈니스허브'를 통해 외부 기술로 보완한다.
김 부행장은 "내부 직원 교육만으로 AI 역량을 갖추려면 3년 넘게 걸리지만 시장은 빠르게 움직인다"고 말했다. 농협은행이 애자일소다를 인수하고 외부 스타트업과 협업하는 것도 기술 확보에 드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다. 김 부행장은 "AI 전환의 진짜 관건은 기술이 아니라 조직과 관리"라며 "AI를 도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일하는 방식과 업무 프로세스까지 함께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AI 활용 범위가 넓어지는 만큼 통제 장치도 고민하고 있다. 중요한 판단은 사람 손을 거쳐야 한다는 원칙이다.
김 부행장은 "고객 안전과 기본권을 침해하거나 불공정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 업무는 사람이 최종 승인하도록 할 것"이라며 "농협은행은 2023년 은행권 최초로 AI 거버넌스를 구축했고 올해 관련 법과 가이드라인을 반영해 체계를 재설계하고 있다"고 했다. 농협금융도 전 계열사에 적용할 공통 기준을 마련 중이다.
작황부터 정책자금까지…농업정보·금융 한 번에
농협금융이 AX를 통해 풀고 싶은 숙제는 단연 '농업인과의 상생'이다. 다른 은행과 출발점부터 달랐던 만큼 농업인 삶과 현장 목소리를 더 세심하게 들여다봐야 한다는 게 김 부행장 생각이다.
구상 중인 건 농업정보와 금융을 결합한 맞춤형 추천 서비스다. 농협중앙회 앱 '오늘농사'의 작황·농산물 가격·귀농 정보에 AI를 접목해 농협은행이 이용자에게 맞는 지원제도와 정책자금, 금융상품을 추천하는 방식이다. 귀농 희망자에게는 지자체별 지원 정보와 일주일·한 달간 농촌에서 살아보는 체류 프로그램까지 연결하는 안도 검토하고 있다.
중앙회와 농협은행에서 기획·디지털 업무를 두루 경험한 데서 나온 아이디어다. 김 부행장은 "금융 계열사가 직접 하기 어려운 영역도 중앙회와 협업할 수 있다는 게 농협의 강점"이라고 말했다.
대상은 농업인에 그치지 않는다. 소상공인에게는 매출 흐름을 분석해 운영자금과 절세 방안을 안내하고 고령 고객에게는 복잡한 금융상품을 쉬운 언어로 설명하는 서비스도 제공할 계획이다. 지자체 금고 업무에서는 공무원 회계·예산 집행을 돕는 'AI 금고 비서'도 운영 중이다. 김 부행장은 "농협은 농업인과 지역사회 삶을 가장 잘 이해하는 '현장형 AI 금융'을 지향한다"고 강조했다.
김주식 농협금융 AI·디지털전략부문 부사장 겸 농협은행 AI데이터부문장(부행장)은 1995년 농협중앙회 경남지역본부에 입사했다. 이후 2018년 농협은행 경기영업본부 마케팅부장과 개인디지털플랫폼부장, 데이터사업부장, 디지털전략사업부장을 거쳤다. 2024년 다시 중앙회로 자리를 옮겨 미래전략처장, 기획실장을 지냈다. 올해 농협은행 AI데이터부문장에 선임됐으며 농협금융 AI·디지털전략부문 부사장을 겸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