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금융 이사회가 다시 한번 '파격'을 택했다. 역대 최대 실적을 이끈 양종희 KB금융 회장 연임 대세론을 뒤집고 이재근 KB금융 글로벌사업부문장을 차기 회장 후보로 낙점하면서다. 2023년 은행장 경험이 없는 양 회장을 선택하는 '파격'에 이어 이번에도 기존의 회장 승계 공식을 깼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선택을 두고 해석이 엇갈린다. 최대 실적을 낸 현직 회장의 연임보다 변화를 택한 이사회의 독자적 판단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한편, 금융지주 지배구조 개선을 압박해온 금융당국의 기류를 의식한 행보라는 시각도 있다.
회장 승계 공식 또 깬 KB 이사회
14일 금융권에선 "KB금융 이사회가 다시 존재감을 드러냈다"는 말이 나온다. KB금융 이사회의 파격적인 선택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2008년 초대 KB금융 회장 선임 당시에도 현직 강정원 국민은행장이 유력했지만 외부 인사인 황영기 전 우리금융 회장이 최종 후보가 됐다. 당시에도 변화를 택한 인선이란 해석이 나왔다.
경영진과 다른 결정을 내린 전례도 있다. 2012년 어윤대 당시 회장이 추진한 ING생명 한국법인 인수안은 사외이사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2014년 'KB 사태' 당시에는 금융당국의 중징계 이후 사외이사들이 임영록 회장에게 자진사퇴를 요구했고, 이를 거부하자 이사회가 해임안을 의결했다.
회장 선임 과정에서도 사외이사들의 영향력은 컸다. 2014년 윤종규 전 KB금융 부사장과 하영구 전 씨티은행장 간 경쟁에서는 사외이사 '한 표'가 승부를 가른 것으로 알려졌다. 2023년에는 3연임 행장 출신인 허인 부회장 대신 KB손해보험을 이끌던 양종희 부회장을 택했다.
양 회장은 KB금융 내부 출신 가운데 처음으로 은행장을 거치지 않고 회장에 오른 인물이다. 통상 은행장 출신이 지주 회장으로 이어지는 기존 승계 공식을 끊은 선택이었다.
이번에는 현직 회장 프리미엄까지 깨졌다. 차기 회장을 고른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는 전원 사외이사(7명)로 구성됐다. 이 가운데 차은영·이명활·김선엽·서정호 등 4명은 양 회장 취임 이후 이사회에 합류했다. 현직 회장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할 것이란 관측도 나왔지만 결과는 달랐다.
후계 승계 프로그램속 이사회 판단?
KB금융은 윤종규 전 회장 시절부터 차기 후계군 육성에 공을 들였다. 윤 전 회장 재임 당시 차기 회장 후보군으로 양종희(61년생)·허인(61년생)·이동철(61년생)·박정림(63년생) 등이 거론됐고, 이후에는 1966~1968년생을 중심으로 차차기 리더십이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있었다. 당시 이재근 후보(66년생)를 국민은행장으로 발탁한 것도 장기적인 후계구도를 염두에 둔 인사였다는 해석이다.
다만 일각에서처럼 이번 이사회 결정에 윤 전 회장의 영향력이 작용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재근 후보를 비롯해 대부분 후보자들이 후계군 풀에 있었고 다만 세대교체의 속도가 빨랐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KB 내부 한 고위관계자도 "KB는 후계 승계프로그램이 잘 갖춰져 있다"면서 "세대교체가 빨랐다는 점에서 이례적이지만 분명한 건 그 후보군에서 누가 돼도 이상하지 않다"고 말했다.
금융권 한 고위 관계자는 "후계구도를 그려놓는 것은 회장의 의무이기 때문에 당시 윤 회장이 후계구도를 그린 것은 맞지만, 최종 결정은 결국 회추위에서 하는 것"이라며 "KB는 과거부터 회추위가 (파격을 행하는) 그런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윤 전 회장의 선임과 연임 과정에서도 이사회 구성과 사외이사 교체를 둘러싼 변화가 있었다. 윤 전 회장 선임 때에는 이후 사외이사 전원이 사퇴하는 상황이 발생했고, 연임을 결정한 이후에도 사외이사 일부가 교체됐다. 외압보다는 회추위 자체의 독립적인 결정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최고 실적'에도 연임 대신 변화
양종희 회장의 연임이 무산된 배경으로는 '현직 프리미엄'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변화 요구가 있었을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양 회장은 재임 기간 역대 최대 수준의 실적을 이끌었다. KB금융의 지난해 순이익은 5조8434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고 올해 상반기에도 3조8846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주가 역시 양 회장 취임 당시보다 크게 상승했다.
다만 금융권에서는 높은 실적 자체보다 그다음 단계의 성장 전략을 이사회가 중요하게 봤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권 한 고위 관계자는 "최고의 실적은 이어갔지만 결국 본인이 새롭게 그린 그림이나 비전 없이 기존에 잘 가꾼 텃밭에서 수확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다"며 "향후 3년 후 비전을 회추위에서 찾지 못해 리더십에 의문을 가진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재근 후보의 선임 이유를 회추위가 '과감한 변화와 세대교체'라고 밝힌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해석되는 지점이다. 회추위는 이 후보에 대해 금융산업 재편과 머니무브가 본격화하는 상황에서 KB금융의 미래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끌 역량을 갖췄다고 평가했다.
참호구축 지적 의식?…독립성 시험대
이번 인선은 금융당국이 금융지주 지배구조 개선을 강조해온 시점에 이뤄졌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금융지주 최고경영자(CEO)의 장기 연임을 '부패한 이너서클'이라고 비판했고 이찬진 금융감독원장도 이사회와 CEO의 유착 및 참호구축을 지적한 바 있다.
금융당국은 '지배구조 선진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8대 은행지주 특별점검 등을 토대로 CEO 승계 절차의 투명성과 이사회 독립성을 높이는 방안을 논의해왔다. 구체적인 개선안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공교롭게도 이런 논의가 이어지는 동안 KB금융 회장 선임 절차가 진행됐다. 양 회장 연임 여부를 결정할 이사회로서는 이 같은 당국 분위기를 외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다만 이를 직접적인 인선 배경으로 볼 근거도 뚜렷하지 않다. 회추위는 업무 경험과 전문성, 리더십, 도덕성, 그룹의 비전·가치관 공유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했다고 밝혔다. 조화준 회추위원장도 이 후보를 추천하면서 "금융산업 재편과 머니무브가 본격화되는 상황에서 KB금융의 미래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끌 역량을 갖춘 CEO 후보"라고 설명했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결과가 금융당국이 직접 법과 제도를 바꾸지 않더라도 이사회가 독립적으로 회장을 선임하는 구조를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이번 KB 차기 회장 선임 결과는 정부가 별도의 제도 개선을 하지 않더라도 이사회가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법안 통과보다는 이사회의 독립적인 구조를 만드는 쪽으로 논의가 기울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