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SK 최태원의 ‘은밀한’ 한 수…통했다

  • 2017.06.21(수) 18:40

[日 도시바 반도체 인수전]⑤-2
SK하이닉스, 3000억 대출 형태 한미일 연합 참여
日 여론 자극하지 않으면서 협력 확대 발판 마련

최태원 SK 회장의 ‘은밀한’ 한 수가 통했다. 일본 도시바 메모리 인수전에 지분투자가 아닌 대출 형태로 참여한 전략이 빛을 발한 것. 기술유출을 꺼리는 일본 내 여론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양사의 협력관계를 확대할 발판을 마련했다.

 

 

도시바는 21일 오전 이사회를 열고 반도체 자회사인 도시바메모리를 인수할 우선협상대상자로 일본 산업혁신기구, 베인캐피탈, 일본정책투자은행으로 구성된 컨소시엄을 선정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도시바는 "해당 컨소시엄이 기업가치와 기술유출방지, 고용보장, 거래의 확실성 등에서 가장 우위였다는 평가를 내렸다"고 밝혔다.

이로써 올해 초부터 진행된 도시바 반도체사업 인수전은 SK하이닉스를 포함한 한·미·일 연합의 승리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커졌다. 도시바는 막바지 협상을 거쳐 오는 28일 주주총회 전까지 정식계약을 맺고 내년 3월 말까지 매각을 마무리할 방침이다.

다만 도시바의 이날 발표에서 보듯 컨소시엄 명단에는 SK하이닉스가 빠진 상태다. NHK, 니케이 등 일본 현지 언론들은 SK하이닉스가 자금을 대출하는 방식으로 컨소시엄에 참여했다고 보도했다. SK하이닉스도 보도내용을 부인하지 않았다.

 

한·미·일 연합으로 불리는 이 컨소시엄이 제시한 인수가격은 2조엔(약 20조원) 정도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는 베인캐피탈과 짝을 이뤄 이번 인수전에 참여했으나 막판에 일본 산업혁신기구가 주도하는 컨소시엄에 참여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SK하이닉스가 제공하는 금액은 3000억엔 정도로 전해졌다.

 

SK하이닉스가 이처럼 지분투자가 아닌 대출 형태로 참여한 배경에는 우선 자국기업이 매각되는 것에 대한 일본내 부정적 정서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직접 출자시 각국의 반독점심사를 통과하는데 상당히 시간이 걸릴 소지도 많다.

산업혁신기구는 2009년 일본 정부가 출자해 세운 관민 펀드다. 지금은 마이크론으로 넘어간 반도체기업 엘피다에 자금지원을 했고 중소형 LCD 패널을 주력제품으로 생산하는 재팬디스플레이 설립에도 관여했다. 지난해 샤프가 대만 훙하이그룹에 넘어갈 때 샤프를 지키겠다며 일본 측 대표로 나선 곳이기도 하다.

지난달 실시된 도시바메모리 2차 입찰 때까지 유력 후보군에서 빠져있던 산업혁신기구는 기술유출을 꺼리는 일본 내 여론을 등에 업고 막판 뒤집기에 성공했다.

 

 

SK하이닉스의 기대대로 한·미·일 연합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서 전세계 반도체시장이 요동칠 가능성은 한결 낮아졌다. SK하이닉스는 D램에선 삼성전자에 이어 전세계 2위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지만 낸드플래시는 4~5위에 머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브로드컴과 훙하이그룹 등 새로운 경쟁사를 허용하면 낸드시장 공략을 앞둔 SK하이닉스에 커다란 장애물이 등장하는 것과 같다. SK하이닉스로선 도시바메모리가 경쟁사에 넘어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현상유지가 바람직했다는 얘기다. 막대한 자금을 동원했다가 '승자의 저주'에 빠질 위험도 감안했다.

최 회장이 지난 4월 일본 출장길에 오르기 전 "SK하이닉스에 도움이 되고 반도체 고객에게 해가 되지 않는 방법 안에서 협력 방안을 알아보겠다"고 밝힌 것도 기업을 통째로 사들여 영향력을 키우는 '급격한 변화'보다는 시장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하는 방식이 반도체업계 전체에도 득이 된다는 점을 피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미·일 연합 내 유일한 반도체 기업이라는 위치도 무시할 수 없는 성과로 꼽힌다.
SK하이닉스 입장에선 도시바메모리와 협력관계를 통해 상대적으로 취약한 낸드 경쟁력을 높이고 시황변화에 대한 대응력을 더욱 키울 수 있다.

특히 도시바는 낸드플래시를 처음 개발한 곳으로 다수의 원천기술을 보유 중이다. 당장 급속한 기술이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더라도 재무적인 관계로 엮이면 양사의 협력수준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계기가 마련되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온다. SK하이닉스와 도시바는 이미 2007년 특허를 서로 공유하는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고 2015년에는 차세대 메모리 분야에서 전략적 제휴를 맺는 등 협력관계를 유지해왔다.

앞서 최 회장도 "단순히 기업을 돈주고 산다는 개념을 넘어 조금더 나은 개념에서 주시하겠다"며 이번 인수전의 포인트가 돈보다는 협력강화에 방점이 찍혀있음을 내비친 바 있다.

 

naver daum
SNS 로그인
naver
facebook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