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선 확정 소식에 한국 철강·조선업계의 표정이 엇갈리고 있다. 철강업계엔 보호무역주의 강화에 대한 위기감이 감돌고 있는 반면 조선업계는 미국 조선업과의 협력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문제는 탄소중립과 ESG 비관세 장벽"
7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인의 재임 1기(2017년 1월~2021년 1월 ) 때인 2018년 5월부터 무역확장법 제232조를 통해 한국발 철강에 대한 쿼터제를 실시했다. 한국의 대미 1년 치 철강 수출 물량인 380만톤(t)의 68.4%(260만t)에 대해서만 관세를 면제하고 초과 물량은 25% 관세를 적용한다는 것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쿼터제로 인해 대미 시장에서 점유율을 잃고 수익성이 악화됐다"며 "미국 시장 공백을 메우기 위해 유럽과 동남아 등 대체 시장 개척을 모색해야 했으나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해 장기적인 수익 감소로 이어졌다"고 전했다.
트럼프가 재선되면서 기존 관세 외에도 탄소 배출과 관련된 환경 인증 요건·현지 자재 사용 의무화 등 복합적인 비관세 장벽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단순히 수출 물량 감소 문제를 넘어 철강업계 전반에 걸친 기술 투자와 생산 체계의 재편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산업통산자원부 관계자는 "트럼프 1기의 관세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기 때문에 방어 계획이 충분하지만, 문제는 탄소중립과 ESG 관련 비관세 장벽"이라며 "유럽연합(EU)은 환경을 위한 비관세 장벽이지만, 미국은 자국 내 철강 수입을 막기 위한 하나의 조치이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그는 "결국 일본제철이 US스틸을 인수해 미국에서 소비되는 철강을 미국에서 만들려는 계획을 가진 것처럼 우리도 미국 내 설비투자를 해야 할 가능성이 있다"며 "미국의 보호무역 기조와 일본의 미국 내 철강 생산으로 인한 대미 철강 수출 감소가 겹치면 한국 철강 시황은 더 안 좋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조언했다.
트럼프 당선으로 미 상무부에 올라있는 포스코(POSCO홀딩스)와 현대제철의 대미 수출 냉연강판 제품 반덤핑 조사 결과도 귀추가 주목된다. 지난달 11일 미 상무부는 예비 심사 결과 한국 철강사가 자국 내에서 반덤핑 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으나, 최종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조선업, 제2 호황기 기회"
조선업계는 기대감을 내비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의 자국 안보 강화 기조에 따라 특수선을 중심으로 양국 간 협력을 강화해 나갈 것으로 전망되면서다.
트럼프 당선인은 윤석열 대통령과 통화에서 "미국의 조선업이 한국의 도움과 협력을 필요로 하고 있다"며 "한국의 세계적 건조 군함과 선박의 건조 능력을 잘 알고, 선박 수출뿐 아니라 유지·보수·정비(MRO) 분야에서도 긴밀하게 한국과 협력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MRO 사업은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 모두 공을 들이는 사업이다. 미국의 조선 기술이 퇴보하면서 연간 20조원 규모의 MRO 시장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MRO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조선소는 한화오션이다. 한화오션은 지난 7월 미 해군과 함정 MRO 사업 진출을 위한 함정정비협약(MSRA)을 체결하고 8월에 국내 조선소 최초로 미 해군의 4만t 급 군수지원함에 대한 창정비 사업을 수주했다.
HD현대중공업은 미 국방부의 권역별 정비거점 구축정책(RSF)에 발맞춰 필리핀 수빅 조선소, 페루 시마 조선소를 임대해 미 해군 함정 MRO를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당선인이 직접 이야기 한 만큼 특수선 부문의 호재는 확실하다"며 "미 대선 전부터 조선업계가 발 빠르게 MRO 시장에 대해 준비한 만큼, 조선업계 제2의 호황기를 열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무역확장법 제232조는 국가 안보를 이유로 특정 수입품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거나 수입을 제한할 수 있는 조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