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이 미국에 10조원 규모의 전략 광물 제련소 구축에 나서기로 했다. 전략광물 시장의 핵심 지위를 공고히 하기 위한 과감한 투자 차원이란 게 고려아연 측의 설명이다.
다만 고려아연과 경영권 분쟁 중인 영풍 측이 거세게 반발 중이다. 이번 제련소 구축에 미국 국방부가 참여하는 방식이 거론되고 있고 이것이 현실화 되면 고려아연의 지배구조가 바뀔 수 있어서다. 이 과정에서 미국 정부가 고려아연 지배구조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경우 영풍 측 입장에서는 경영권을 확보하기 더욱 어려울 것이란 판단에 근거한 것으로 분석된다.
고려아연, 미국에 대형 제련소 구축 추진
15일 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이날 오전 이사회를 열고 미국 제련소 투자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이번에 고려아연이 검토하는 미국 제련소 투자는 10조원 규모로 미국 정부와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형태다.
고려아연의 미국 제련소 구축 검토에는 전략광물 시장에서의 위치를 공고히 하기 위한 포석이 깔렸다. 대다수의 전략광물 공급의 중심에 서 있는 중국이 수출 통제 카드를 연이어 꺼내들며 무기로 삼자 전략광물이 경제적인 가치를 넘어 국가 안보의 판도를 결정할 핵심 요인이라는 분석이 나오자 이같은 흐름을 이어나가겠다는 의지가 담겼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전략광물이 군수 및 첨단산업 핵심 소재로 자리잡고 있는데 중국이 공급망을 쥐고 흔들자 이에 대비하기 위해 미국이 지속해서 고민해왔다"라며 "이같은 상황에서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지난 8월 미국 경제사절단으로 미국 방문 당시 미국 측의 협의 논의가 있었고 전략광물 시장에 대한 지위 상승이 필요했던 고려아연 역시 이를 적극적으로 검토하면서 추진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려아연 측은 이번에 구축되는 제련소의 구체적인 정보는 현재까지 미정이라는 입장이지만, 업계에서는 미국 상업지역 후보군 중 한곳에 안티모니, 게르마늄 등을 정제하는 제련소가 될 거라고 보고 있다. 전통적인 비철금속 제련 시설이 아닌 전략광물 제련에 초점을 맞췄다는 거다.
이번 제련소 구축이 진행되면 고려아연의 글로벌 전략광물 시장 지위는 한층 더 높아질 거란 관측도 나온다. 세계 최대 전략광물 소비 시장인 미국에 직접 제련소를 건설하게 됨에 따라 대규모 거래처를 확보할 수 있게 될 거란 이유에서다.
결사반대 외친 영풍…왜?
고려아연이 미국 제련소 투자를 검토하겠다고 하자 경영권 분쟁에 나서고 있는 영풍 측은 즉각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이번 제련소 구축에 참여하는 미국 정부의 투자 방식이 고려아연의 지배구조에 큰 영향을 끼칠 거라는 이유에서다.
고려아연은 이번에 미국 제련소 구축에 나서면서 이를 위해 미국 정부 측과 합작법인을 만들기로 했다. 미국 국방부는 약 2조~3조원가량을 투자한다. 고려아연은 제3차 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자금을 조달한다는 계획을 검토하기로 했고 고려아연의 지분 10%를 합작법인이 보유하는 구조다.
이 절차가 마무리될 경우 영풍-MBK가 보유하고 있는 지분과 최윤범 회장 측이 보유하고 있는 지분 모두가 줄어들게 된다. 금융투자업계 등에서는 제3자배정 유상증자 등이 마무리되면 영풍-MBK연합의 지분은 현재 44%에서 30%후반으로 크게 낮아지고 최윤범 회장 측의 지분도 현재 30% 안팎에서 20% 중반으로 낮아진다고 본다.
여기에 더해 10%를 쥐고 있는 미국 제련소 합작 법인이 새로운 고려아연의 주요 주주가 된다. 10%가량의 지분이라고는 하나 미국 정부의 의사를 전달하는 창구가 될 수 있다. 전략광물의 경제적 및 안보적인 위치를 고려하면 미국 정부의 지분율과 상관없이 미국 정부의 입김이 커질 수 있는 구조다.
특히 이번 미국 제련소 투자를 최윤범 회장이 진두지휘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미국 정부가 사실상 최윤범 회장의 경영권 수성을 위한 '백기사'가 될 수 있다는 점이 영풍이 우려하는 부분이다. 이번 제련소 법인 측이 최윤범 회장의 우호지분으로 분류되면 영풍-MBK와 비슷한 수준으로 높아질 것이란 관측이다.
영풍 관계자는 "미국 정부가 프로젝트가 아닌 고려아연 지분에 투자하는 것은 사업적 상식에 반하는 경영권 방어용 백기사 구조"라며 "정상적인 사업 구조라면 투자자는 건설될 미국 제련소 프로젝트 법인에 지분 투자를 하는 것이 상식"이라고 말했다. 이어 "고려아연 지분을 미국 정부에 내어주는 것은 자금 조달이 주목적이 아니라 의결권을 확보해 최윤범 회장의 경영권을 방어해 줄 백기사를 확보하려는 의도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미국 정부 기관이 해외 민간 기업에 대해 합작법인을 통한 우회 출자 방식을 택한 전례는 찾아보기 힘들다"라며 "이 자금이 순수한 투자인지 아니면 미국 정부를 방패막이 삼아 급조된 자금인지 그 실체도 밝혀야 한다"고 했다.
이번 미국 제련소 구축이 완료되게 되면 국내 제련 기술이 해외로 유출될 가능성도 있다고 짚었다. 이날 영풍 측은 "울산 제련소의 쌍둥이 공장을 미국에 짓게 되면 국내 제련산업 공동화는 물론 핵심 기술 유출 위험까지 초래한다"라며 "수십 년간 축적된 고려아연의 독보적인 제련 기술이 합작이라는 미명 하에 해외로 유출되는 것 또한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고려아연 측은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 등 세계 각국이 핵심광물 공급망 구축에 사활을 걸고 있고 이 경쟁에서 뒤처질 경우 우리나라 국가 경제는 물론 국내 기업들의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다"라며 "고려아연은 국가기간산업 기업이자 전략광물 공급망 구축에 일조하는 기업으로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기업가치를 증대해 중장기적으로 주주가치가 향상할 수 있도록 정진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어 "영풍·MBK는 국가 경제의 중차대한 순간에도 오직 적대적 M&A를 위해 고려아연의 기업가치를 훼손하는 행위를 지속하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