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하이닉스가 미국에 이어 일본도 차기 해외 생산거점 후보로 들여다보고 있다. 인공지능(AI) 확산으로 고대역폭메모리(HBM)와 D램 공급 부족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자 국내 생산능력을 확대하는 동시에 해외 투자처도 넓게 살피는 것이다. 다만 SK그룹은 일본 내 합작공장 설립이 구체화됐다는 외신 보도에는 선을 그었다.
메모리 부족 2030년까지…증설 압박 커져
1일 업계에 따르면,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달 31일 일본 센다이에서 열린 한·일상공회의소 회장단 회의에 참석해 일본 내 반도체 생산시설 투자 가능성을 묻는 현지 취재진에게 "스터디 과정을 진행하고 있으며 스터디가 끝나면 알려주겠다"는 취지로 답했다.
일부 외신은 이를 두고 'SK하이닉스가 일본에서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급증하는 AI 반도체 수요에 대응하고 생산비를 낮추기 위한 방안 가운데 하나로 현지 합작공장의 타당성을 살펴보고 있다는 내용이다. 일본 기업에 대한 소규모 인수나 공동 투자 가능성도 거론했다.
SK그룹은 곧바로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SK그룹 관계자는 "세계 어디든 공장 설립이 가능하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면서도 "최 회장이 합작공장 설립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는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일본 투자 가능성은 열어두고 있지만 공장 건설이나 합작 파트너, 투자 지역 등이 구체화된 단계는 아니라는 설명이다.
메모리 수급이 빠듯해지면서 생산능력 확대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 7월 HBM의 개당 평균 수출가격은 76.13달러로 한 달 전보다 9.5% 올라 처음 70달러를 넘어섰다. 수출 물량은 전월보다 27.3% 줄었지만 가격 상승으로 평균 단가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범용 D램 가격도 뛰고 있다. 7월 평균 수출가는 22.9달러로 전월 대비 24.3% 올랐다.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가속기 등에 들어가는 6세대 HBM인 HBM4 생산이 본격화하면서 원재료 격인 D램 투입량이 늘어난 영향이다. 고부가 HBM 생산 확대가 범용 D램 공급까지 압박하는 모습이다.
곽노정 SK하이닉스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27일 미국 인디애나주에서 "메모리 공급 부족이 2030년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AI 인프라 투자가 빠르게 늘고 있지만 반도체 공장을 짓고 실제 생산능력을 확보하기까지 수년이 걸리는 만큼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용인·청주·인디애나 찍고…日 생태계도 주목
이에 SK하이닉스는 국내외에서 증설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내에서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두 번째 생산시설인 Y2와 청주 M17에 약 54조원을 투자한다. Y2에는 차세대 D램 생산시설을, M17에는 AI 데이터센터용 낸드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생산라인을 구축할 계획이다.
미국에서는 지난달 27일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서 40억달러 이상을 투입하는 HBM 첨단 패키징 공장 착공식을 열었다. 2029년 하반기 양산을 시작해 엔비디아 등 미국 고객사에 공급할 예정이다. 한국에서 생산한 D램 칩을 현지에서 적층·패키징하는 후공정 거점이다.
일본은 아직 구체적인 투자 계획이 나오지 않았지만 반도체 산업 기반이 잘 갖춰져 있다는 점에서 후보지로 꼽힌다. 현지에는 반도체 소재업체 나믹스와 장비업체 도쿄일렉트론 등 주요 협력사가 있고 소니와 닌텐도 등 고객사도 자리 잡고 있다. 미국 마이크론 역시 히로시마에서 D램을 생산하고 있다.
낸드 업체 키옥시아와의 관계도 변수다. SK하이닉스가 투자한 베인캐피털의 특수목적회사(SPC)는 키옥시아 지분 14%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 곽 사장도 "고객사 및 협력사와 함께 낸드 시장을 공동 개발할 수 있는 방안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일본에서 사업 범위를 넓힐 경우 기존 협력 관계를 활용할 여지가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일본 정부의 반도체 유치 정책도 투자 매력을 높이는 요소다. 일본은 자국 내 공급망을 강화하기 위해 해외 반도체 기업의 공장 건설과 증설에 대규모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대만 TSMC의 구마모토 공장에도 정부 차원의 지원이 투입됐다.
만일 일본 투자가 현실화하면 SK하이닉스의 생산 체계는 한국을 중심으로 미국과 일본까지 넓어질 수 있다. 국내에서는 첨단 메모리 생산능력을 확대하고 미국에선 HBM 후공정 거점을 확보한 데 이어 일본의 소재·장비·낸드 생태계까지 활용하는 구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