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그룹이 2년 넘게 이어온 사업 구조 개편(리밸런싱)의 막바지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성장성과 외부 투자 유치를 위해 떼어냈던 자회사 가운데 사업 연관성이 높은 곳은 다시 본체에 합치고 미래 전략과 거리가 있는 사업은 매각해 투자 여력을 확보하는 방식인데요. 재계에서는 SK 리밸런싱의 무게중심이 단순 '몸집 줄이기'에서 핵심 사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선택과 집중'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배터리·소재 다시 묶는 SK이노…재편의 종착점
SK그룹 계열사는 2024년 219개에서 올해 151개로 2년 사이 68개 줄었습니다. 지주사 SK㈜의 별도 기준 순차입금도 2024년 말 약 10조5000억원에서 지난해 말 약 8조6000억원으로 2조원 가까이 감소했죠. 지난 7월엔 SK㈜가 반도체 웨이퍼 업체 SK실트론 지분 70.6%를 두산에 약 2조3000억원에 매각하는 대형 거래도 마무리했습니다. 굵직한 비핵심 자산을 덜어내는 작업이 어느 정도 일단락되자 최근에는 사업 연관성이 높은 계열사를 하나로 묶어 운영 효율을 높이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SK이노베이션과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의 재결합입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달 25일 이사회를 열고 SKIET를 흡수합병하기로 했는데요. 합병 비율은 1대 0.1174540으로 SKIET 주주는 보유 주식 1주당 SK이노베이션 주식 0.117454주를 받게 됩니다. 양사는 오는 11월 관련 승인 절차를 거쳐 내년 1월 1일 합병을 마칠 예정입니다.
SKIET는 2019년 SK이노베이션의 소재 사업을 물적분할해 출범한 뒤 2021년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했습니다. 전기차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던 당시엔 리튬이온 배터리 핵심 소재인 분리막을 앞세워 독자 성장에 나섰지만 시장 환경이 달라지면서 상황도 급변했죠. 전기차 수요 둔화와 북미 시장 회복 지연에 중국 업체들의 증설까지 겹치면서 공급 과잉과 가격 경쟁이 심해진 겁니다.
실적도 크게 악화했습니다. SKIET는 2024년 2910억원, 지난해 2464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는데요. 올해 상반기에는 중국 자회사 매각에 따른 처분손실 등이 반영되면서 순손실이 1조3000억원까지 불어났습니다. 별도 법인으로 추가 자금을 조달하며 버티기보다 SK이노베이션에 다시 편입해 비용을 줄이고 사업 구조를 재정비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배경입니다.
SK이노베이션은 합병 후 조직과 기능을 통폐합해 연간 약 600억원의 비용을 줄이고 2년 안에 분리막 사업의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을 흑자로 돌린다는 목표입니다. 2029년에는 영업이익 흑자 전환을 추진하고요. SK이노베이션의 연구개발(R&D) 역량과 SKIET의 제품 개발 능력을 결합하는 한편, 전기차에 집중됐던 분리막 수요처도 SK온의 에너지저장장치(ESS) 사업 등으로 넓힐 계획입니다.
이번 SKIET 합병은 SK이노베이션이 지난 2년간 추진해 온 고강도 사업 재편의 사실상 마지막 퍼즐로 평가됩니다. 앞서 출발점은 2024년 11월 SK E&S와의 합병이었죠. 정유·석유화학·배터리 사업에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내는 액화천연가스(LNG)·발전 사업을 더해 배터리 업황에 따른 실적 변동성을 낮추고 재무 체력을 보강했습니다.
이어 재무 부담이 컸던 SK온의 체질 개선에 나섰습니다. SK온은 2024년 11월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을 합병한 데 이어 지난해 2월 SK엔텀, 11월에는 윤활유 사업을 하는 SK엔무브까지 차례로 품었죠. 현금창출력이 있는 사업을 붙여 배터리 사업의 자금 조달 능력을 높이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사업 통합과 함께 대규모 자본 확충과 자산 유동화도 병행했습니다. SK이노베이션은 70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 발행과 2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추진, SK온과 SKIET도 각각 2조원과 3000억원 규모의 자본을 확충했습니다. 발전소 지분 유동화 등을 통해 추가 현금도 확보했고요.
이를 바탕으로 SK온에 투자한 재무적투자자(FI)에게 원리금 약 3조6000억원을 상환, 미국 포드와의 배터리 합작사 블루오벌SK 구조도 손질했습니다. SKIET까지 다시 품으면서 배터리·소재를 중심으로 이어져 온 SK이노베이션의 재편 작업도 마무리 수순에 들어간 셈입니다.
합병으로 군살 빼고, 매각으로 재무 체력 보강
SK가스도 지난달 26일 프로판탈수소화(PDH) 사업 자회사 SK어드밴스드를 흡수합병하기로 했습니다. SK가스가 해외서 프로판을 조달하면 SK어드밴스드가 이를 원료로 프로필렌을 생산하는 구조지만 그간 원료 조달과 생산·판매, 자금 조달은 서로 다른 법인에서 이뤄졌었죠.
문제는 업황 악화였습니다. 중국의 대규모 증설로 프로필렌 공급 과잉이 심해지면서 SK어드밴스드는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연속 영업손실을 냈는데요. 지난해 영업손실은 약 1400억원, 순손실은 약 2450억원에 달했습니다.
올해 상반기에는 404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흑자로 돌아섰고 지난해 말 407%를 웃돌던 부채비율도 6월 말 338% 수준으로 낮아졌지만, 재무 부담이 여전히 큰 데다 업황 불확실성도 이어지고 있어 모회사와의 통합을 통해 사업 안정성을 높이려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합병 후에는 프로판 조달부터 프로필렌 생산·판매까지 하나의 손익 체계로 관리할 수 있게 됩니다. 원료 가격과 제품 판매 가격을 함께 고려해 공장 가동률을 조정하고 SK가스의 신용도를 활용해 차입금을 갈아타 금융비용을 낮추는 효과도 기대됩니다. 부진한 자회사를 별도 법인으로 두기보다 재무 여력이 있는 모회사 안에서 정상화를 추진하는 쪽을 택한 겁니다.
SK에코플랜트에서는 이러한 '선택과 집중' 전략이 한층 선명하게 나타납니다. 사업 연관성이 높은 자회사는 합치고 향후 전략과 거리가 있는 사업은 매각하는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어서죠. SK에코플랜트는 지난달 27일 100% 자회사 SK에코엔지니어링을 흡수합병하기로 한 데 이어 31일에는 SK오션플랜트 지분 36.62%를 디오션자산운용 컨소시엄에 4100억원에 매각하는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했습니다.
SK에코엔지니어링은 2022년 SK에코플랜트가 플랜트 사업을 물적분할해 만든 회사인데요. 배터리와 바이오, 발전·터미널 등의 설계·조달·시공(EPC)을 맡아왔지만 최근 배터리 업계의 투자 축소와 계열사 발주 감소로 수익성이 악화했습니다. SK에코플랜트는 올해 2월 재무적투자자(FI)가 보유한 지분을 약 3600억원에 사들여 완전 자회사로 만든 뒤 추가 출자까지 했죠.
결국 별도 법인을 유지하며 자금을 계속 투입하기보다 조직을 하나로 합치는 쪽을 택했습니다. SK에코엔지니어링의 설계 역량과 SK에코플랜트의 시공·사업관리 능력을 결합해 반도체 생산시설과 AI 데이터센터 등 하이테크 인프라 사업의 수주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구상입니다.
반대로 해상풍력 사업은 정리 대상에 올랐습니다. SK오션플랜트는 삼강엠앤티가 전신입니다. SK에코플랜트는 2021년 유상증자와 전환사채(CB) 인수 등에 약 4500억원을 투입해 경영권을 확보했었죠. 당시 SK건설에서 SK에코플랜트로 사명을 바꾸고 환경·에너지 기업으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인수한 주요 자회사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이후 환경·에너지 자회사들의 실적이 악화하면서 SK에코플랜트의 재무 부담도 커졌습니다. 이에 지난해 리뉴어스와 리뉴원 등 환경 자회사를 글로벌 사모펀드(PEF) KKR에 매각한 데 이어 SK오션플랜트까지 처분하기로 했죠. 매각대금은 차입금 상환 등 재무구조 개선에 활용, 확보한 여력은 반도체·AI 인프라 솔루션 사업에 집중할 계획입니다.
'AI 풀스택' 향해 재배치…성패는 결국 실적
SK가 모든 사업에서 법인 수를 줄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분야에서는 오히려 사업을 떼어내 전문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죠.
SK텔레콤은 최근 대규모 AI 데이터센터 개발을 맡을 SK하이퍼를 설립, SK브로드밴드의 데이터센터·해저케이블 사업은 SK호라이즌으로 분리하기로 했는데요. SK호라이즌은 KKR과 IMM인베스트먼트·스톤브릿지캐피탈 컨소시엄으로부터 3조원대 규모의 투자도 유치했습니다. SK하이퍼가 초대형 AI 데이터센터 개발을 맡고 SK호라이즌은 기존 데이터센터 사업을 운영·확장하는 식으로 역할을 나눈 겁니다.
SK하이닉스도 올해 1월 미국 솔리다임의 구조를 개편하면서 AI 솔루션을 전담할 'AI 컴퍼니'를 만들고 최대 10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했습니다. SK㈜와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도 공동 투자에 참여했고요.
성장 속도가 빠르고 대규모 자본이 필요한 AI 사업은 별도 법인을 통해 전문성과 투자 유치 능력을 높이는 반면, 업황 악화로 재무 부담이 커진 에너지·소재 사업은 모회사와 합치거나 비핵심 자산을 매각하는 식입니다. 계열사 수를 일률적으로 줄이는 게 아니라 사업의 성장성과 자금 조달 필요성에 따라 구조를 달리하고 있는 셈입니다.
재계에서는 이런 움직임을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강조해온 'AI 풀스택' 전략에 맞춰 그룹의 자본과 사업 구조를 다시 짜는 과정으로 보고 있습니다. 실제 SK㈜는 지난해까지 비핵심 자산을 팔아 현금을 확보하는 데 주력했지만 올해 상반기에는 종속·관계기업 지분 처분으로 약 1조3200억원을 확보하는 동시에 다른 지분 취득에 약 1조2100억원을 투입했죠. 자산을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확보한 자금을 성장 사업에 다시 배치하기 시작한 겁니다.
다만 법인을 합친다고 자회사가 안고 있던 부채와 손실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자회사 실적과 차입금은 이미 모회사의 연결재무제표에 반영돼 있는데요. 합병 이후에는 오히려 부진 사업의 위험이 모회사 별도 실적과 재무구조에 직접 반영됩니다. SK이노베이션의 경우 SKIET 주주에게 합병 신주를 발행하면서 기존 주주의 지분이 일부 희석되는 부담도 있고요.
결국 2년 넘게 이어진 SK 리밸런싱의 성패는 새로 짠 사업 구조가 실제 수익성과 현금흐름 개선으로 이어지느냐에 달렸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SKIET가 목표대로 흑자로 돌아서고, SK가스가 프로필렌 사업의 적자를 줄이며, SK에코플랜트가 반도체·AI 인프라 수주를 늘려야 그동안의 재편 작업도 성과를 입증할 수 있습니다.
석유화학 사업은 여전히 남은 과제로 꼽힙니다. 업황 부진이 장기화하고 있는 SK지오센트릭 등 화학 부문의 추가 구조 개편 가능성도 열려 있는데요. 지난 2년간 팔고 합치며 사업·재무구조의 큰 틀을 다시 짠 SK가 이제 이를 실제 이익과 성장으로 연결할 수 있느냐가 리밸런싱의 다음 시험대가 될 전망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