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기록적인 폭염 속에서 태양광 발전은 전력 총수요의 4분의 1을 분담하며 전력 피크 지킴이 역할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기후에너지환경부에 따르면 지난달 전력수요가 올여름 최대치인 95.3기가와트(GW)까지 치솟았을 때 태양광 공급량은 24.6GW에 달했는데요.
정부도 태양광 발전 판을 대폭 키울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내년도 신재생에너지 예산을 기존 9000억원에서 1조8000억원으로 2배 증액 편성하고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밑그림을 통해 현재 31GW 수준인 사업용 태양광 설비를 2040년까지 155.3GW로 5배 늘리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죠. 이는 현재 국내에 가동 중인 원전·석탄·LNG 등 모든 발전 설비 용량의 총합과 맞먹는 규모입니다.
그러나 정부가 거대한 햇빛 장터를 열어도 국내 태양광 산업 생태계 전반에 온기가 돌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이미 국내 시장 주도권을 중국산이 꽉 쥔 탓에 예산 확대의 결실을 중국 기업들이 챙겨갈 공산이 크기 때문인데요. 국내 태양광 산업이 안방에서 좀처럼 기지개를 켜지 못하는 구조를 들여다봤습니다.
가성비에 털린 안방
정부가 내년부터 대규모 예산을 쏟아붓기로 했지만 국내 태양광 시장의 실상을 뜯어보면 이미 국산의 흔적을 찾기 어렵습니다.
지난 2일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신정훈 의원이 한국에너지공단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태양광 모듈 보급량은 3753메가와트(MW)로, 이 중 중국산은 2601MW로 69.3%를 차지했습니다. 반면 국산은 1152MW로 30.7%에 그쳤는데요.
불과 6년 전인 2019년 78.4%에 달했던 국산 모듈 비중은 지난해 30.7%로 47.7%포인트(p) 급락한 반면 같은 기간 중국산 비중은 21.6%에서 69.3%로 3배 넘게 폭등했습니다. 특히 전체 보급량이 전년 대비 13.3% 늘어나는 동안 중국산은 34.6% 급증했지만 국산은 오히려 16.5% 뒷걸음질 쳤죠.
셀의 상황은 더 처참합니다. 국산 셀 점유율은 3.9%로 곤두박질쳤고 중국산 점유율은 무려 96.1%에 달합니다. 사실상 국내에 깔리는 패널 열 개 중 아홉 개 이상이 중국산 셀로 채워지고 있는 셈입니다.
국내 시장이 저가 중국산에 빠르게 잠식된 배경에는 단가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소규모 설비 중심의 시장 구조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국내 태양광 발전소의 80% 이상은 100킬로와트(kW) 미만의 농가·지붕형 설비인데요. 개인이나 소규모 사업자들이 은행 대출이나 사비를 털어 짓다 보니 이들 입장에서는 초기 투자비(CAPEX)를 낮춰 회수 기간을 줄이는 것이 절대적입니다. 품질 차이가 크지 않다면 국산 대비 20~30% 저렴한 중국산을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겁니다.
태양광의 뼈대인 기초 소재 생태계가 일찌감치 붕괴한 점도 내수 잠식을 부채질했습니다. 태양광 제품의 기초 원료인 고순도 폴리실리콘과 이를 녹여 만든 결정 기둥인 잉곳, 이를 얇게 절단한 판인 웨이퍼는 태양전지의 발전 효율과 모듈 제조 원가의 절반 이상을 좌우하는 핵심 소재인데요. 2010년대 중국발 치킨게임 당시 저가 물량 공세를 버티지 못해 웅진에너지, 넥솔론 등 국내 잉곳·웨이퍼 업체들이 줄줄이 도산했고 OCI홀딩스 역시 원가 부담 탓에 2020년 국내 태양광용 폴리실리콘 생산을 접었습니다.
안방에 남은 제조 라인의 현실은 수치로도 확인됩니다. 한화솔루션 큐셀부문의 올해 상반기 모듈 공장 평균 가동률은 31.2%에 그친 반면 미국 내 모듈 공장 평균 가동률은 98.6%로 나타났습니다.
같은 기간 국내 셀 생산 공장 가동률은 90.9%를 기록했으나 이는 내수용이 아닌 대부분 미국으로 보내는 물량입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1~7월 한국의 태양광 셀 수출액 4억8814만 달러 중 99%가 미국으로 향했습니다. HD현대에너지솔루션 역시 미국 매출 비중이 2024년 10.7%에서 지난해 32.9%로 증가했고 OCI홀딩스도 말레이시아산 폴리실리콘을 앞세워 대미 공급망을 채우고 있습니다. 미국의 강력한 대중(對中) 무역 장벽과 친환경 보조금 혜택을 좇아 국내 주요 기업들의 생산과 공급망 축이 사실상 미국 중심으로 완전히 쏠려 있습니다.
혈세로 中 밥상 차려줄라
최근 정부는 국내 태양광 제조 공급망의 경쟁력 회복을 지원하기 위해 부품 생산량에 비례해 세금을 깎아주는 국내생산세액공제를 도입하기로 했습니다. 이미 중국산에 주도권을 내준 뒤라 때늦은 대응이라는 지적도 나오지만 국내 제조 기반을 지탱할 최소한의 안전판이 마련됐다는 점은 긍정적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와 유럽 시장은 이미 중국산에 잠식됐다"며 "향후 확정될 공제 방식과 지원 규모가 관건이겠지만 생산세액공제 제도가 국내 시장 점유율 반등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생산세액공제만으로는 무너진 내수 시장을 되살리기에 역부족이라는 시선도 적지 않습니다. 정부가 내년 예산을 늘려 추진하는 햇빛소득마을이나 공장 지붕, 영농형 태양광 등은 수익성 중심의 소규모 사업이자 저가 중국산 패널이 시장을 독식해 온 대표적인 영역입니다. 막대한 지원 예산이 투입되는 만큼 설치·보급 시장에서 국산 패널 우대 조건이나 수입산 검증 기준이 촘촘하게 마련되지 않으면 국가 재정이 고스란히 중국 기업의 주머니로 흘러 들어가는 구조가 반복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국처럼 중국에 태양광 주도권을 내준 해외 주요국들은 가격 경쟁을 넘어 공급망 안보 제도화를 서두르고 있습니다. 유럽연합(EU)이 탄소중립산업법(NZIA)을 앞세워 공공조달과 재생에너지 입찰 전반에 비(非)가격 기준을 전면 의무화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최저 입찰가만 따지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특정국 의존도와 공급망 회복력, 탄소 발자국 등을 의무 평가해 중국산 저가 공세를 걸러내고 역내 제조 기반을 지탱하는 방식입니다.
전문가들은 위기에 몰린 국내 태양광 제조업의 자생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보조금이나 세액공제를 넘어 공공 입찰 시장의 체질 개선과 차세대 기술 투자가 병행돼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이재준 동국대 교수는 "국내 태양광 제조 생태계가 이미 약화된 상황이라 단순히 국산 제품 사용을 권장하는 수준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며 "국내에서 경쟁력 있게 셀과 모듈을 생산할 수 있도록 제조 지원과 수요시장 정책을 함께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가격 경쟁만을 무한정 허용하기보다는 유럽 NZIA처럼 공급망 안정성과 특정국 의존도, 제품 신뢰성·지속가능성 등 비가격 요소를 정부 지원사업에 합리적으로 반영하는 제도적 장치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아울러 실리콘과 페로브스카이트뿐 아니라 차세대 태양전지 원천기술 연구가 지속적으로 지원돼야 향후 시장을 이끌 연구 인력과 기술 경쟁력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