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경쟁 구도가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고대역폭메모리(HBM)에서는 삼성전자가 선두 SK하이닉스와의 격차를 한 분기 만에 절반 이하로 줄였고, 미국 마이크론은 생산능력을 두 배 가까이 늘리며 추격에 나섰다. 범용 D램에서는 중국 창신메모리(CXMT)가 처음으로 두 자릿수 점유율을 기록했다. 인공지능(AI) 확산으로 메모리 수요가 급증하는 가운데 한국·미국·중국 업체들이 증설과 기술 고도화에 속도를 내면서 메모리 패권 경쟁이 한층 치열해지는 모양새다.
SK 쫓는 삼성, 韓 양강 쫓는 마이크론
4일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삼성전자의 글로벌 HBM 시장 매출 점유율은 33%로 전 분기(21%)보다 12%포인트(p) 상승했다. 반면 1위 SK하이닉스는 58%에서 50%로 8%p 낮아졌다. 두 회사 간 격차는 1분기 37%p에서 2분기 17%p로 절반 이하로 줄었다.
이는 삼성전자가 글로벌 빅테크를 상대로 HBM 공급을 늘린 영향으로 풀이된다. 현재 HBM 시장 매출의 대부분은 5세대 제품인 HBM3E에서 나오고 있지만 하반기 6세대 HBM4 출하가 본격화하면 삼성전자의 추격 속도는 더 빨라질 전망이다. 카운터포인트는 "삼성전자가 HBM4 출하를 바탕으로 향후 시장 점유율을 점진적으로 확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3위 마이크론도 증산에 속도를 내고 있다. 2분기 점유율은 18%로 전 분기보다 3%p 떨어졌다. 대신 생산능력을 대폭 늘려 반전을 노리고 있다. 연말까지 HBM 생산능력을 웨이퍼 기준 월 10만장 안팎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지난해 월 4만~5만장 수준에서 2배 가까이 늘어나는 규모다.
설비 투자도 빠르게 진행 중이다. 마이크론은 대만과 싱가포르 생산거점에 HBM 제조 장비를 잇달아 들여오고 있다. 현재 생산량의 대부분은 HBM3E 12단이 차지하지만 연말에는 HBM4 12단 비중을 최대 50%까지 높일 것으로 알려졌다. HBM4는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가속기 '베라 루빈' 등에 탑재되는 핵심 메모리다.
마이크론의 증설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를 따라잡기 위한 승부수로 읽힌다. 업계에서는 두 한국 업체의 HBM 생산능력을 각각 월 15만~20만장 수준으로 추산한다. 마이크론이 계획대로 연말까지 월 10만장 규모를 확보하면 생산능력 격차는 상당 폭 줄어들 전망이다. AI 가속기용 HBM 수요가 공급을 웃도는 상황에서 생산능력이 곧 점유율과 수익성을 좌우하는 경쟁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범용 D램 파고든 CXMT…HBM까지 넘본다
HBM에서 한·미 업체들이 증산 경쟁을 벌이는 사이 범용 D램에서는 중국 CXMT의 존재감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CXMT는 2분기 글로벌 D램 시장에서 매출 기준 10%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분기 점유율이 두 자릿수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23년까지만 해도 1%에 못 미쳤던 점유율이 지난해 2분기 4%, 올해 1분기 8%를 거쳐 2분기 10%까지 올라섰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 등 기존 '빅3'의 합산 점유율은 1년 사이 94%에서 87%로 낮아졌다. 삼성전자는 38%로 1위를 지켰고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은 각각 25%, 24%를 기록했다. 두 회사의 격차는 1%p에 불과하다.
CXMT는 한국 업체들이 HBM 등 고부가 제품에 생산능력을 집중하면서 공급이 빠듯해진 범용 D램 시장을 파고들었다. 증설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업계에서는 현재 월 30만장 수준인 D램 생산능력이 2028년 최대 60만장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SK하이닉스의 현재 전체 D램 생산능력과 맞먹는 규모다.
범용 제품에서 몸집을 키운 CXMT는 첨단 메모리로도 영역을 넓히고 있다. 저전력 D램 등 고부가 제품 공급을 확대하는 동시에 HBM3E 양산도 추진 중이다. 최신 HBM에서는 아직 한국 업체들과 기술 격차가 크지만 대규모 생산능력과 내수 시장을 발판으로 추격 속도를 높이고 있다는 평가다.
향후 메모리 시장의 승부처는 HBM4로 모일 전망이다. AI 가속기 성능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HBM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고 세대가 바뀔수록 제품 가격과 수익성도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HBM4 공급을 늘리는 동시에 차세대 HBM4E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마이크론 역시 증산을 통해 공급 주도권 확보에 나섰다. 여기에 CXMT까지 한 세대 뒤 제품부터 따라붙으면서 경쟁 구도는 한층 복잡해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메모리 시장이 기존 3강 구도에서 벗어나고 있다"며 "범용 D램에서는 CXMT가 점유율을 빠르게 높이고 있고 HBM에서도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의 추격이 거세지면서 사실상 4파전 양상으로 재편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