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인사이드 스토리]삼성·SK 추격하는 中…'각개전투'로는 버거운 이유

  • 2026.09.18(금) 06:50

설계·제조·장비·소재까지…中 '반도체 풀스택' 가동
HBM 3년·D램 2년·낸드 1년…韓-中 기술격차 축소
빅펀드·지방정부 원팀 지원…삼성·SK 부담 가중
업계·전문가 "돈으로 못 맞서면 규제라도 풀어야"

/생성형 AI로 제작한 이미지

중국이 반도체 설계부터 제조·장비·소재·패키징까지 산업망 전체를 동시에 키우는 '반도체 자립 풀스택' 구축에 나섰습니다. 미국의 첨단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에 막힐 때마다 개별 기술의 우회로를 찾던 데서 벗어나 공급망 일부가 끊겨도 자체적으로 버틸 수 있는 산업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겁니다.

범용 D램에서는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가 이미 세계 시장 점유율 10%까지 올라섰고요. 고대역폭메모리(HBM)·파운드리·노광장비에서도 추격 속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반도체 경쟁이 개별 기업 간 기술 싸움을 넘어 국가 생태계 간 총력전으로 번지면서 한국도 기술 격차를 지키기 위한 대응이 한층 급해졌습니다.

'땜질식 추격' 끝낸 中…반도체 산업망 통째로 키운다

중국 공업정보화부와 국가발전개혁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전자정보 제조업 발전 제15차 5개년 계획(2026~2030년)'은 2030년까지 추진할 중점 과제의 첫머리에 '산업 기초능력 공고화'를 올렸습니다. 핵심은 "집적회로 전체 산업망의 난관을 돌파한다"는 겁니다.

육성 대상은 반도체 설계·제조·패키징 및 테스트·장비·소재·설계자동화(EDA) 등 6개 분야입니다. 특정 기술이나 장비 하나를 국산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반도체 생산 전 과정의 자립도를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이죠. 첨단 반도체를 둘러싼 미국의 제재가 장기화할 가능성까지 염두에 둔 겁니다.

중국은 이를 바탕으로 지난해 17조4000억위안(약 3556조원)이었던 전자정보 제조업 연 매출을 2030년 30조위안(약 6131조원)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도 내놨습니다. 전자정보 제조업은 중국 41개 주요 공업 분야 가운데 13년 연속 매출 1위를 차지한 핵심 산업입니다.

아직 약점은 분명합니다. 중국이 가장 취약한 분야로 꼽는 것은 극자외선(EUV)·심자외선(DUV) 노광장비와 EDA, 첨단 소재 등입니다. 미국의 수출 규제로 첨단 노광장비와 관련 기술 도입이 막히면서 미세공정 고도화에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중국은 이 약점을 자체 공급망 구축으로 메우고 있습니다. 화웨이는 자체 투자조직 등을 통해 중국 노광장비·광학부품·고출력 광원 업체에 잇따라 투자하고 있습니다. 중국 업체가 개발한 첨단 DUV 노광장비는 현재 중국 최대 파운드리 업체 SMIC와 화웨이 생산라인 등에서 시험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아직 생산성과 신뢰성 측면에서 네덜란드 ASML과 격차가 있지만 자국 반도체 업체가 국산 장비를 직접 테스트하면서 기술을 축적하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는 겁니다.

메모리에서는 추격이 이미 수치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한국과 중국의 기술 격차는 △HBM 약 3년 △D램 2년 △낸드플래시 1년 수준으로 좁혀졌습니다.

CXMT는 알리바바 계열 반도체 설계사 T헤드 등과 5세대 HBM인 HBM3E를 시험 중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이 HBM4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 세대가량 뒤진 수준입니다.

EUV 장비를 구하기 어려운 약점은 첨단 패키징과 이종 결합 기술로 보완하고 있습니다. CXMT는 중국 낸드 업체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의 웨이퍼 접합 기술 등을 활용해 HBM 개발을 추진하고 있고요. 우한신신·통푸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등 중국 후공정 기업들과도 협업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특히 CXMT의 성장 속도가 가파릅니다. 글로벌 D램 시장 점유율은 2023년 1% 미만에서 올해 2분기 10%까지 높아졌습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에 이은 세계 4위입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HBM과 서버용 메모리 등 고부가 제품에 생산능력을 집중하는 사이 공급이 빠듯해진 범용 D램 시장을 파고든 결과입니다.

더 눈여겨볼 대목은 중국 업체들이 범용 제품에서 확보한 현금을 다시 첨단 기술에 투입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과거에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지원을 토대로 적자를 감수하며 시장 점유율을 높였다면 이제는 자체 사업으로 벌어들인 현금까지 연구개발(R&D)과 생산능력 확충에 투입할 수 있게 됐습니다. 범용 시장 확대가 차세대 기술 추격을 위한 실탄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中은 총력전, 韓은 기업전…'체급' 달라진 경쟁

파운드리에서도 격차가 빠르게 좁혀지고 있습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삼성전자와 중신궈지(SMIC)의 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 차이는 0.5%포인트(p)까지 줄었습니다. 삼성 파운드리 점유율은 5.9%로 낮아진 반면 SMIC는 성숙공정 수요를 기반으로 매출을 20%가량 늘리며 삼성전자를 바짝 뒤쫓았습니다.

삼성전자는 중국과의 가격 경쟁보다는 2나노미터(㎚·10억분의 1m) 등 최선단 공정에 승부를 걸고 있습니다. 올해 2분기 실적 발표 당시 삼성전자는 클라우드 서비스 업체와 AI PC 고객사로부터 2나노 수주를 확보, 브로드컴 등 주요 고객사와 추가 프로젝트를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성숙공정 물량을 앞세운 SMIC와 최첨단 AI·고성능컴퓨팅(HPC) 수요를 겨냥한 삼성전자의 전략이 갈리는 지점입니다.

중국의 추격이 위협적인 이유는 개별 기업의 기술력만이 아닙니다. 중앙정부·금융기관·지방정부·기업이 함께 움직이는 '원팀 체제'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어서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빅펀드'로 불리는 국가집적회로산업투자기금입니다. 중국은 2014년 이후 빅펀드를 세 차례 조성했습니다. 1~3기 펀드를 합치면 6867억위안, 원화로 130조원이 넘습니다.

중앙정부가 산업 전략을 세우면 국유은행과 국유기업이 장기 자금을 공급, 지방정부는 공장 부지와 전력·용수 같은 기반시설을 지원합니다. 기업이 기술 개발과 생산에 집중할 수 있도록 투자 위험을 국가 차원에서 나눠지는 구조입니다.

CXMT가 자리 잡은 안후이성 허페이가 대표적입니다. 허페이시는 초기 투자비의 상당 부분을 지방 국유자본으로 조달하면서 장기간의 손실을 견딜 수 있는 이른바 '인내 자본'을 공급했습니다. 그 결과 현재 허페이에는 집적회로 관련 기업 500여곳이 모여 있습니다.

한국은 사정이 다릅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개별 기업이 대규모 설비투자와 연구개발은 물론 협력사 생태계 구축까지 상당 부분 떠안고 있습니다. 정부가 경기 남부 반도체 메가클러스터에 622조원의 민간 투자를 유도하고 정책금융과 세제 지원을 제공하고 있지만 실제 투자 재원의 대부분은 기업 몫입니다.

전력과 용수 확보도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는 10GW 이상의 전력과 하루 110만톤(t)을 넘는 용수가 추가로 필요한 것으로 추산됩니다. 송전망 건설과 인허가가 늦어질 경우 기업이 공장을 지어도 제때 가동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결국 중국이 이번 5개년 계획을 통해 노리는 것은 개별 기술의 국산화를 넘어선 '시스템 경쟁력'입니다. 반도체 설계와 생산에 필요한 장비·소재는 물론 자금과 인프라까지 자국 안에 갖춰 외부 제재에도 흔들리지 않는 체계를 만들겠다는 겁니다.

한국 반도체 업계로서는 HBM 등 첨단 제품의 기술 격차를 유지하는 동시에 범용 메모리와 파운드리, 장비·소재 생태계까지 지켜야 하는 상황입니다. 중국이 범용 시장에서 벌어들인 현금을 다시 첨단 기술과 생산시설에 투입하는 구조가 굳어질수록 추격 속도는 더 빨라질 수 있습니다.

반도체 경쟁의 단위도 '기업 대 기업'에서 '국가 생태계 대 국가 생태계'로 바뀌고 있습니다. 중국과 같은 대규모 재정 지원이 쉽지 않은 한국으로서는 연구개발 환경과 산업 인프라 등 기업 경쟁력을 제약하는 요소부터 신속히 해소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중국은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으며 반도체 산업을 키우고 있지만 한국이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기는 어렵다"며 "그렇다면 연구개발 인력이 충분히 연구할 수 있도록 52시간 관련 규제를 풀고,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부지 확보처럼 이미 필요한 것으로 확인된 과제부터 속도를 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이미 다 알고 있는데 이를 실행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며 "새로운 지원책만 찾을 게 아니라 기본부터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덧붙였습니다.

naver daum
  • 오늘의 운세
  • 오늘의 투자운
  • 정통 사주
  • 고민 구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