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신차 가격을 둘러싼 딜레마에 빠졌다. 원자재와 물류비 상승에 첨단 사양 적용 확대까지 겹치면서 가격 인상 압력은 커지고 있지만 높아진 차량 가격이 소비자의 구매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어서다.
앞으로 출시될 현대차의 주요 신차 역시 상품성 향상에 따른 가격 인상이 예상된다. 차량의 가치를 높여 차값 상승의 명분을 설득하는 전략을 이어가고 있지만 대중차 브랜드의 핵심 경쟁력인 가격 접근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아반떼 효과 보이지 않았다
8일 현대자동차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판매량은 4만9022대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25.7% 감소했다. 파업 여파로 판매가 급감했던 8월 3만4333대보다는 42.8% 증가했지만 지난해 9월 6만6001대에는 크게 못 미쳤다.
9월 추석 연휴에 따른 영업일수 감소와 신차 대기 수요 등이 판매에 영향이 있었지만 기아의 9월 국내 판매량은 전년 동월 대비 6.7% 감소하는 데 그친 것을 감안하면 현대차의 내수 판매 감소폭이 상대적으로 컸던 셈이다.
무엇보다 지난달은 현대차가 올해 핵심 신차로 내세운 8세대 아반떼의 판매가 본격화된 시점이었다는 점이 더 뼈아프다. 지난 8월 계약을 시작한 '디 올 뉴 아반떼'는 계약 첫날에만 1만대가 넘는 계약이 몰리며 높은 관심을 받았다.
다만 실제 판매에서는 기대했던 수준의 신차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전 세대 첫 출시보다는 판매고 확대가 더딘 모습이어서다.
7세대 아반떼는 2020년 4월 출시 이후 약 3주 동안 7447대가 판매됐고 온전한 첫 판매월인 같은 해 5월에는 8969대가 팔렸다.
올해 9월 판매된 아반떼 7305대 가운데 8세대 신형 모델은 6945대였다. 신형 모델끼리 비교하면 7세대의 온전한 첫 판매월보다 2000대 이상 적으면서 아반떼 신차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온다.
완성차 업계에서는 신형 아반떼의 판매량을 가를 변수로 높아진 구매가격을 꼽는다. 신형 아반떼 가솔린 모델의 시작 가격은 2398만원이다. 기존 7세대 모델의 최저 가격인 2062만원과 비교하면 소비자가 아반떼를 구매하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최소 금액이 336만원 늘었다.
기존 최하위 트림인 스마트 트림이 없어지기도 했지만 주요 편의사양을 갖추기 위한 실제 구매가격이 상승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신차 나올 때마다 가격 상승…다음은 투싼?
현대차의 가격 상승 흐름은 아반떼 이전부터 나타났다. 지난 5월 출시된 그랜저 부분변경 모델 '더 뉴 그랜저'의 가솔린 2.5 모델 시작 가격은 4185만원으로 기존 3798만원보다 387만원 올랐다. 완전변경이 아닌 부분변경 모델임에도 진입가격이 10%가량 높아진 것이다.
가솔린 3.5 모델 역시 4045만원에서 4429만원으로 약 400만원 상승했고 LPG 모델은 3865만원에서 4331만원으로 466만원 높아졌다. 최상위 캘리그래피 가격 역시 4710만원에서 5200만원대로 뛰었다.
앞서 완전변경된 팰리세이드도 가솔린 기준 시작 가격이 기존 3896만원에서 4383만원으로 487만원 상승했다. 싼타페 역시 완전변경 과정에서 가솔린 모델 가격이 트림에 따라 200만~300만원가량 올랐다.
차체를 키우고 안전·편의 및 디지털 사양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신차 가격도 한 단계씩 높아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는 거다.
현대차의 가격 전략은 신형 투싼에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는 최근 6년 만에 완전변경한 5세대 '디 올 뉴 투싼'을 공개하고 출시 준비에 들어갔다. 아직 가격을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대폭 상승이 예상된다. 국내에서 가장 인기있는 SUV 시장 베스트 셀러 모델이지만 가격 인상으로 인해 판매량이 더디게 늘어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가격 인상의 명분은 충분하다. 상품성이 대폭 향상되면서다. 차체 크기부터 새로운 인터테인먼트 시스템 등 안전 및 편의 사양등이 대폭 확대됐다. 제조원가가 상승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문제는 높아진 상품가치가 소비자에게 높아진 가격만큼의 구매가치로 받아들여질 수 있느냐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의 신차들은 차체가 커지고 플레오스 커넥트, 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등 안전 및 편의 사양이 확대되면서 상품성이 대폭 높아진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상품성이 높아지면서 제조원가도 상승하고 이를 가격에 반영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이어 "현대차 역시 가격이 높아진 만큼 그 가치를 높이겠다는 기조로 대응하고 있지만 대중차 브랜드의 핵심 경쟁력인 가격 접근성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중국선 2천만원대 전기차…전략 바꿀까
이런 가운데 현대차가 중국에서 택한 전혀 다른 가격 전략도 주목받고 있다.
베이징현대는 최근 중국 전략형 전기차 '아이오닉 V'를 출시했다. 공식 판매가격은 10만9900위안부터지만 출시 한정 가격은 9만9900위안부터다. 원화로 단순 환산하면 2000만원 안팎이다.
아이오닉 V는 단순히 사양을 줄여 가격만 낮춘 모델도 아니다. 전장 4900㎜, 휠베이스 2900㎜의 중형급 전기차로 CATL 배터리를 탑재했다. 중국 기준 1회 충전 주행거리는 최대 650㎞다. 퀄컴의 차량용 반도체와 중국 자율주행 기업 모멘타의 운전자보조 기술 등 현지 공급망과 기술도 적극 활용했다.
현대차가 중국에서 이처럼 공격적인 가격 전략을 펼칠 수 있는 배경에는 현지 공급망이 있다. 중국은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을 기반으로 배터리와 전장부품 공급망이 대규모로 형성돼 있고 업체 간 가격 경쟁도 치열하다. 여기에 중국 시장에서 판매량을 회복하기 위한 현대차의 공격적인 가격 정책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중국과 같은 가격을 국내에서 그대로 구현하기는 쉽지 않다. 단순히 국내 공급망을 활용하는 것만으로 중국과 같은 규모의 경제와 부품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현대차가 중국에서 보여준 접근법 자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평가다. 고급 사양을 계속 확대하면서 판매가격도 높이는 기존 방식과 달리 엔트리 트림을 강화하거나 플랫폼과 사양 구성을 원가 경쟁력 중심으로 다시 설계할 가능성이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저가형 트림을 새롭게 구성하기 위해 추가 투자를 할 가능성이 당장은 높지 않다고 본다. 신형 아반떼에서 엔트리 모델을 없앤 것이 대표적"이라면서도 "현재처럼 차량 가격 상승에 대한 소비자 부담이 지속될 경우에는 가격을 낮춘 플랫폼이나 엔트리 차량을 다시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