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인 긴축과 금리 인상 기조에 따른 주식시장 부진으로 공모주 시장 역시 한껏 움츠러든 가운데 기업인수목적회사(SPAC·스팩)를 통한 상장을 택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기업공개(IPO) 과정에서의 흥행 실패 리스크를 줄이면서 직상장처럼 대규모 자금 조달이 가능하다는 장점에서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향후 스팩이 해산되더라도 공모가와 투자기간별 이자가 보장된다는 이점이 있다. 단 유통물량이 적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변동성이 크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올 들어 스팩 상장 11곳…경쟁률 '세 자릿수' 기본
2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연초 이후 상장을 했거나 상장이 임박한 스팩은 11곳에 달한다. 올 초 디비금융스팩10호가 2022년 첫 스팩 상장의 신호탄을 쏜 뒤 2월에 △한국제10호스팩 △IBKS제17호스팩 △하나금융21호스팩이 나란히 증시에 입성했고 지난달에는 △에스케이증권7호스팩 △유진스팩8호가 데뷔했다.
이달 들어서는 키움제6호스팩과 미래에셋비전스팩1호가 상장해 거래되고 있다. 오는 27일에는 신한제9호스팩, 28일 신영스팩7호 29일 상상인제3호스팩이 각각 증시에 발을 들인다.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해 현재 상장 절차를 밟고 있는 스팩도 5곳이나 된다. △삼성스팩6호 △IBKS제18호스팩 △케이비제21호스팩 △교보12호스팩 △신한제10호스팩 등이다.
이는 연초 LG에너지솔루션 이후 '가물에 콩 나듯' 하는 일반 상장과는 대조적인 흐름이다. 최근 대내외 불확실성 확대로 증시가 침체되자 상장에 나서는 기업이 눈에 띄게 줄었다. 실제 지난달 스팩을 제외한 상장 기업은 6곳에 그쳤고 이달 들어서는 1곳이 전부다. 일부 기업은 아예 상장 계획을 철회하고 있다.
스팩의 인기도 심상치 않다. 비례 기준으로 IBKS제17호스팩의 청약 경쟁률은 1736대 1에 달했고 키움제6호스팩 또한 1052대 1을 기록했다. 한국제10호스팩(801대 1)과 유진스팩8호(700.69대 1), 하나금융21호스팩역시 세 자릿수 이상의 경쟁률을 보였다.
기업도 투자자도 하락장서 '윈윈'…변동성은 주의
스팩은 비상장기업을 인수·합병할 목적으로 세운 일종의 페이퍼컴퍼니다. 증권사가 설립하고 투자금을 받아 코스닥에 상장시킨다. 증시 입성 3년 이내에 비상장기업과 흡수합병한 뒤 간판을 바꿔 달면 된다.
기업 입장에서 스팩의 가장 큰 장점은 상장 과정이 간단하다는 것이다. 스팩과 비상장기업이 주주총회에서 합병 안건만 통과시키면 모든 상장 절차가 완료된다. 수요예측 부진으로 공모가를 희망가격 아래에서 확정하고 필요한 자금 확보에 실패해 상장을 철회하는 사례가 원천 차단되는 것이다.
상장 이후 마땅한 합병 상대를 찾지 못해 해산하더라도 단일가인 공모가 2000원이 보장되고 일정 수준의 이자도 나온다는 점은 투자 매력을 높이는 요소다. 스팩은 금융투자업규정에 따라 공모자금의 90% 이상을 은행에 맡겨둬야 한다.
앞서 우량한 비상장기업과 합병해 주가가 뛴 스팩도 눈여겨볼 만하다. 지난해 제이시스메디칼과 합병상장한 유안타제3호스팩은 지난 11일 1만원을 찍은데 이어 최근 9000원대를 횡보하고 있다. 엔피로 합병된 삼성스팩2호도 1만1000원 안팎을 오가는 중이다. 모두 스팩 공모가 대비 5배가 넘는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
다만 유통물량이 일반 기업 주식보다 적어 주가 변동성이 크다는 점에선 유의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에는 일부 스팩이 연일 상한가를 기록한 뒤 돌연 급락해 거래소가 주의를 당부하기도 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아무리 펀더멘털이 괜찮은 기업이라도 요즘 같은 장에선 자금 확보가 어려울 수 있다"며 "스팩은 이런 불확실성을 낮춰줄 수 있어 당분간 택하는 기업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스팩 상장주식 수가 일반 주식에 비해 적어 주가조작에 이용될 수 있다는 점은 유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