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가 김영섭 대표이사를 수장으로 확정하며 5개월여간의 경영공백을 끝냈다. 김 대표는 앞으로 2년7개월간 재계 12위의 KT그룹을 진두지휘한다.
김 대표 앞에는 온갖 과제가 산적해있다. 앞서 구현모 전 대표와 윤경림 전 사장이 차례로 사퇴하며 맞닥뜨린 비상경영체제에서 회사를 다시 정상 궤도에 올려놔야 한다. KT는 지난해 말부터 인사는 물론 주요 사업 현안에 대한 의사결정이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지난해 4만원에 육박했던 주가는 3만원대로 떨어졌다.
최고경영자(CEO) 교체 과정에서 드러난 KT 리더십 위기는 정부여당의 '내부 이권 카르텔' 의혹에서 촉발됐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주요 주주들이 김 대표 선임에 찬성의사를 밝힌 것도 KT 조직 쇄신에 대한 정권의 의지와 무관치 않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기대와 우려' 시각 교차
KT는 30일 서울 서초구 KT 연구개발센터에서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대표이사 선임을 포함한 4개 안건을 통과시켰다. 이날 김영섭 대표이사 선임 안건은 주총 출석 주식 수의 60% 이상, 발행주식총수의 25% 이상 찬성을 모두 충족하며 가결됐다.
김 대표는 안건 통과 직후 "대표이사라는 막중한 임무를 맡긴 주주 여러분과 지난 3월 말부터 이뤄진 비상경영상황에서 역할을 다해준 5만3000여명의 임직원에게 감사하다"며 "앞으로 대표이사로서 KT그룹이 보유한 대한민국 최고수준의 인프라와 기술력, 사업역량을 통해 지속가능한 성장을 구축하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주총에 참석한 주주들 사이에서는 김 대표 체제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일었다.
KT 장기투자자라고 밝힌 한 개인주주는 "경력이나 추천사유를 봤을 때 최적의 후보"라며 "오늘 이 자리가 지배구조 이슈를 마무리하고 KT가 새 대표 체제 아래 성장에 집중할 수 있는 시작점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다른 주주는 "삼성이나 현대와 같은 매출이 더 큰 회사를 국민기업이라 하지 않고 왜 KT를 국민기업이라고 하는지 (새 대표는) 공부를 더 해야 한다"며 "언론에서는 구조조정 전문가라고만 하는데 이는 직원들을 자르는 게 아니다. 민영화 이후 앞선 네 명의 CEO가 했던 전철을 밟지 말라는 것"이라고 당부했다.
"구조조정" VS "조직안정 우선"
김 대표는 LG유플러스 최고재무책임자(CFO) 출신이자 7년간 LG CNS 대표를 지낸 '재무통'이다.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빠르게 전열을 가다듬고 새로운 체제에 맞는 쇄신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달 초 KT 대표 후보자로 지명된 이후 본사 본부조직과 계열사에 이르기까지 두루 업무 보고를 받으며 KT의 청사진을 준비해왔다.
KT는 그간 CEO 교체과정에서 '내부 이권 카르텔'에 따른 리더십 의혹이 대두된 바 있다. 때문에 김 대표가 인적 쇄신과 구조 개혁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LG그룹 재직 시절 재무쪽 업무를 담당한 탓에 조직 슬림화를 위한 칼자루를 쥘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그러나 조직 안정화 측면에서 당장 파격적인 조치를 하기보다는 내부 결속에 집중할 것이란 목소리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빠른 경영 정상화와 조직 안정이 시급할 것"이라며 "당장 구조조정의 칼을 빼들기 보다는 내부 안정화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최근 업계의 화두가 된 인공지능(AI)과 같은 신사업 분야에서 경쟁력을 입증해야 하는 것도 김 대표의 몫이다. 경쟁사인 SK텔레콤은 최근 회사를 'AI 컴퍼니'로 탈바꿈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LG유플러스는 4대 플랫폼(라이프스타일·놀이·성장케어·웹 3.0) 전략을 추진하면서 발빠르게 사업 다각화에 나서고 있다.
KT 이사회도 후보 추천 당시 "(김 대표는) 그간의 기업경영 경험과 ICT(정보통신기술) 전문성을 바탕으로 KT가 글로벌 디지털플랫폼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한 미래 비전과 실행 전략을 명확히 제시했다"며 "새로운 경영 비전 아래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마련하고 임직원들의 변화와 혁신을 이끌며 대내외 이해관계자들과 협력적 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최고의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권 카르텔 우려 불식시킬까
이날 임시 주총에서는 경영계약서 승인에 대한 안건도 가결돼 눈길을 끈다. 이는 김 대표가 최근 이사회와 체결한 계약서에 대한 건으로 "이사회는 대표이사가 임기 중 대표이사 직무와 관련된 부당한 요구를 수용하거나 불법한 행위를 함으로써 회사에 재산상 손해를 입히고 그러한 행위로 인해 1심에서 벌금 이상의 형이 선고된 경우 이사회 결의로 연임에 응모하지 않을 것을 권고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김 대표는 이를 전적으로 수용하기로 했다. 이권 카르텔의 고리를 끊어 전임 경영진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새노조도 이권 카르텔과 관련해 전날 "현재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구현모 체제의 경영카르텔의 비리를 내부 감사하고 인적 쇄신을 해야 한다"며 "일감 몰아주기뿐만 아니라 비서라인, 노사라인 등 광범위한 카르텔이 존재하는데 비리경영진을 엄중 처벌하고 회사에 끼친 피해에 대한 구상권을 청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김 대표는 이날 취임사에서 KT가 변화와 혁신을 위해 이뤄야 하는 키워드로 △고객 △역량 △실질 △화합 등 4가지 키워드를 제시하며 "KT는 유무형 자산 외에도 인재, 대한민국 정보통신기술(ICT) 근간을 책임진다는 자부심 등 자산이 많은 기업으로 분명한 지향점을 가지고 지속성장 기반을 건실하게 쌓아가면 더 힘차고 빠르게 나아갈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