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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보복의 미래

  • 2017.09.08(금) 11:00

거세지는 사드 후폭풍..암울한 기업들
사드는 잊어라..'적자생존' 전략 찾아야

 
'중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이 얼마나 더 흉흉해 질지…'.
 
8일자 한 경제지 1면에는 현대자동차 중국 합작 파트너인 베이징자동차가 결별을 고려중이라는 뉴스가 크게 실렸다. 현대차를 따라 중국에 들어간 한국 협력사들을 중국 부품업체로 교체하라는 압박도 거세지고 있다며 보복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중국시장에서 현대차 판매는 반토막이 났고, 공장은 최근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상황이다. 차가 안 팔리니 공장을 돌려봐야 재고만 쌓인다. 일부 중국 부품업체들은 대금이 밀리자 납품을 중단하기도 했다.
 
다른 경제지 헤드라인은 이마트가 남은 점포 6개를 모두 팔고, 연내에 중국에서 완전 철수한다는 내용이다. 이마트는 20년전 국내 대형마트로는 가장 먼저 중국에 진출하며 시장개척 의지를 다졌왔다. 누구나 탐내는 13억 소비시장을 포기하고 사업을 접는 것은 비즈니스 여건이 그만큼 절망적이라는 얘기다. 롯데마트는 전방위 행정규제와 소비자 불매운동이란 모진 매를 맞고 점포가 대부분 문을 닫았다. 본사가 1차 지원한 긴급 운영자금은 수개월만에 바닥을 드러냈고 최근 2차 자금 수혈에 나섰지만 미래는 암울할 따름이다.
 
현대차나 이마트, 롯데처럼 문제가 불거진 기업 일부만 뉴스를 탔을 뿐이다. 속으로 골병 들어드는 기업은 한둘이 아니다. 국내도 면세점, 여행사 등 중국 비즈니스와 관련된 업체의 한숨이 갈수록 깊어진다.
 
거세지는 사드 후폭풍..앞날은 암울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배치에 대한 중국의 대응 강도와 경제적 후폭풍은 예상을 뛰어넘는다. 박근혜 정부의 배치결정 이후 촉발된 반한 감정과 각종 행정규제가 우리 기업을 옭죄어 왔다. 시진핑 주석은 사드 문제를 국가 핵심이익과 연관지어 강경 모드로 일관했다. 공산당이 지배하는 사회주의 중국은 중앙과 지방정부, 관계당국이 충성경쟁하듯 각자의 수단을 동원했다. 이른바 사드 보복이다.
 
북한의 계속된 도발과 미국의 압박에 치어 사드는 일방향 외길 수순을 밟아왔다. 전략적 모호성은 급속히 설 자리를 잃었다. 지난 3일 북한이 6차 핵실험을 통해 훨씬 위험한 수준의 핵무기 보유 능력을 과시하면서 사드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정부와 주한미군은 발사대 4기를 성주기지에 추가 배치해, 사드 1개 포대의 작전운용 준비를 끝냈다.
 
사드 배치장면은 실시간 중계되면서 중국 언론으로부터도 집중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당국과 관영 매체들은 기다렸다는 듯 일제히 들고 일어섰고 비판여론은 들끓었다. 자극적 표현으로 도배된 중국 관영매체 보도와 사설은 총공세의 서막이 오르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 충분하다.
 
중국과 중국인에게 일촉즉발의 한반도 상황은 배려 대상이 아니다. 신의를 저버리며 첫단추를 잘못 꿴 한국이 핵도발을 빌미로 미국의 압력에 굴복했다고 판단한다. 한국이 결국 사드 배치를 강행하면서 중국의 전략적 이익을 훼손하고, 돌이킬 수 없는 외통수를 둔 것이라고 간주하고 있다. 시진핑 집권기간 동안 사드 보복이 중단되지 않을 것이라는 일부의 시각에 공감한다. 미국에 맞서 패권을 노리는 국가 전략적 이해와 최고권력자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는 점에서 그렇다. 중국과 미국간 패권다툼이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란 전제하에, 한국이 '오판(?)'을 반복하지 않도록 이번 기회에 확실히 각인시켜야 한다는 중장기 포석의 첫 걸음일지도 모른다.
 
시진핑 주석은 내달 19차 당대회를 통해 집권 2기를 맞는다. 반대파 숙청으로 1인 지배체제를 공고히 해 온 최고권력자가 5년 집권의 출발을 앞두고 존재감과 선명성을 높일 필요성은 충분하다. 사드는 애먼 제물로 삼기에 좋은 소재다. 흘러가는 분위기를 보면 시진핑 집권이 딱 10년까지만 이어진다는 보장도 없어 보인다. 북핵문제가 대화를 통해 해결된다고 하더라도, 핵 폐기가 아닌 동결 수준에서 봉합된다면 한중관계에서 사드 이슈는 여전히 남게 된다. 우리 기업에게는 암울한 전망이다. 북핵문제의 진행 상황에 따라 어느 순간 소멸되는 변수가 아니라 중국 비즈니스에 있어 하나의 상수로 자리매김 하기 때문이다.
 
남은 선택은 '탈(脫)중국' 뿐일까? 대안은 될 수 있다. 실제로 저가 노동력을 활용해온 단순 제조업의 경우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 각국으로 대안을 찾는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중국 전문가들은 생산법인은 옮기더라도 중국 유통법인이나 마케팅 네트워크는 유지·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조언을 내놓고 있다. 동남아 어느 국가에서 제품을 생산하건 '세계의 소비시장'으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에서 승부를 볼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이유로 내세운다.
 
◇ 사드는 잊어라..'적자(適者)생존' 모색할 때
 
중국과의 경제관계를 근본적으로 단절하고 살 수 없다면 달라진 환경에 적응해 생존하는 것은 차선의 전략이다. '적자생존'은 언제든 유효한 명제다. 환경이 사막이든, 습지든 적응한 개체는 살아남고, 살아남은 개체는 종족을 유지하며 환경을 바꿔나갈 동력을 얻을 수 있다.
 
최근 방문한 상하이에서는 우리 기업들의 변화 몸부림이 읽혀졌다. 제품이나 브랜드에서 한국 이미지를 과감히 지워나가고, 광고모델도 한류스타보다는 중국 현지모델을 기용하는 추세였다. 기업인들끼리 보복사례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고, 책잡힐 일은 미리 점검·정비해 함께 대응책을 강구하는 정기 모임도 생겨났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에는 턱없어 보이긴 하나 전에는 없던 노력들이다.
 
국내 대기업의 현지법인에 근무하는 한 지인은 "회사에서 사드의 '사'자도 꺼내지 말라는 엄명이 내려왔다"고 했다. 기획·조사·평가 등 중국 비즈니스와 관련한 일체의 보고서에 '사드'라는 용어를 언급하지 말라는 지침이 하달됐다는 것. 지인의 설명은 이랬다.
 
"언제까지 사드 핑계만 대고 있을 수는 없다는 게 회사 윗선의 생각인 듯 하다. 중국 비즈니스에 있어 사드 문제는 변수가 아닌 상수라는 사실을 직원들도 인식해 달라는 주문이다. 중국 거래처와 소비자들을 상대로 영업하면서 공기처럼 접해야 하는 환경인데, 나쁜 공기탓만 하고 밖에 나가지도 않으면 회사는 문을 닫을 수 밖에는 없으니 발상 자체를 바꾸라는 의미로 지침을 만든 것 같다"
 
인식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은 습관을, 습관은 운명을 바꾼다고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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