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평가사를 회원으로 둔 한국감정평가사협회가 국내 1위 은행인 KB국민은행과 갈등을 빚고 있습니다. 감정평가법에 따라 감정평가법인에 맡겨야 할 업무를 은행 내부에서 처리하고 있어서죠. 최근 국민은행은 행내 감정평가사를 배치한 부서의 이름을 바꿔 달기도 했죠.
은행이 자체 담보가치 산정을 하는 근거는 금융감독원 세칙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감정평가법이 상위법이라는 게 감평협회 입장입니다. 은행 입장에선 자체 평가로 수수료를 절감할 수 있는 경영상 이점이 있는데요. 전문가들은 감정평가법인에 맡겨 감정평가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확보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보고 있어요.

그저 '밥그릇 싸움'일까
한국감정평가사협회는 지난해 9월부터 KB국민은행 사옥 앞에서 여덟 번의 규탄대회를 열었습니다. 은행이 감정평가사를 고용해 '가치평가부'를 운영하고 자체평가를 하는 건 불법이라는 주장이에요. 지난달부터는 금융위원회에 적극적으로 시정을 요구하고 있어요. 감평협회가 금융권 중 국민은행을 콕 집은 이유는 자체 감정평가 규모가 가장 크기 때문입니다.
감평협회가 추산한 KB국민은행의 자체 감정평가액은 2024년 75조원으로 2022년(26조원)의 약 3배 수준이에요. 국민은행 소속 평가사 1명이 평균 123억원의 고액 부동산을 한 달에 19건 평가하고 있다고 봤어요. 국민은행이 아낀 수수료는 550억원으로 국내 1위 감정평가법인(350억원)보다 많다고 해요. 이에 대해 국민은행 측은 "내부 수치와 다르다"고 반박했어요.
가치평가부를 폐지하라는 요구가 계속되자 국민은행은 최근 부서 명칭을 '담보관리부'로 바꿨어요. 2024년 경영공시를 보면 여신관리심사그룹 산하에 가치평가부가 명시됐는데 2025년엔 그 이름이 담보관리부로 변경됐어요. 국민은행 측은 "부서 이름이 바뀐 게 맞다"며 "주택은 대부분 시세가 있어 주택을 평가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말했어요.
담보관리부엔 30여명의 감정평가사가 소속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해 채용 공고를 보면 은행은 '자체 담보평가 및 외부 감정평가에 대한 심사 능력'을 갖춘 감정평가사를 뽑았어요. 이 직원은 본부 부서 승인 대상인 담보물에 대해 담보 평가금액을 심사하고, 자체 담보평가 대상 부동산의 적정 가치를 산정·승인하는 업무를 맡죠.
국민은행은 자사만이 아닌 은행권 전반의 관행이라고 항변합니다. 하지만 감평협회는 전담 부서를 두고 자체 평가하는 곳은 국민은행이 유일하다고 말해요. 감정평가를 의뢰하는 방식은 은행마다 다르다는데요.
한 은행권 관계자는 "A은행은 지점마다 알아서 감평법인을 계약하는데 B은행은 본부가 계약한 곳에서만 평가를 받도록 한다"며 "지점에선 대출을 많이 취급하기 위해 담보가치를 높게 잡으려는 경향이 있고, 본부에선 금융사고가 나면 안 되니 보수적으로 취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사전추정 해줬더니 의뢰 '뚝'
은행 자체 감정평가를 둘러싼 갈등 이면엔 '갑을 관계'가 존재합니다. 감정평가법인 입장에선 금융회사가 큰 고객이에요. 2018년 기준 전체 감정평가시장 매출 가운데 금융권이 의뢰한 담보평가 비중이 42%에 달해요. 그래서 일감을 따내기 위해 탁상감정도 제공합니다. 탁상감정은 정식 감정평가를 의뢰하기 전에 현장 조사 없이 담보물건의 개략적인 가치를 사전 추정하는 것을 말해요. 이 무료 견적서가 매출 감소로 돌아올 줄은 몰랐겠죠.
탁상감정 연구를 수행한 배진희 감정평가사에 따르면 국내 9개 금융기관의 탁상감정 의뢰 건수는 2020년 102만3000건에서 2024년 105만8000건으로 증가했어요. 하지만 정식 감정평가로 이어진 비율은 29.7%에서 25.1%로 오히려 하락했죠. 협회를 통한 공식 의뢰만을 집계한 거라 실제로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돼요. 감정평가사 1175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카톡(69.6%), 문자(67.5%), 전화(57.3%) 등을 이용한 의뢰가 주를 이룬다고 해요.
또 정식 감정평가 의뢰 전 예산 편성, 사업계획서 작성 등에 활용해야 할 탁상감정을 금융기관이 다른 용도로 활용한 사례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어요. '기존 대출 만기 연장(56.6%)'과 '자체 감정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구축(41.4%)', '본건 대출 실행(35.6%)' 순이었죠. 협회는 최근 4년간 국민은행이 연평균 12만건의 탁상자문을 받은 뒤 3만1700건의 정식감정을 의뢰했고, 2만3000건에 대해서만 수수료를 입금했다고 지적했어요.
외부에 맡기면 이자에 불똥?
금융권 일각에선 은행의 자체 감정평가를 중단하면 대출 이자액이 상승할 거란 우려를 제기하는데요. 감평협회는 "감정평가 수수료가 대출이자에 반영돼 서민 부담이 늘어난다는 건 허위 주장"이라고 반박했어요. 은행 가산금리엔 대출 취급에 따른 은행 인건비, 전산처리비용 등 업무 원가가 포함되긴 해요. 하지만 대법원은 '은행의 감정평가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어요.
감정평가가 잘못 이뤄지면 차주의 피해로 이어져요. 국토부는 감정평가를 감정평가법인에 맡기도록 한 건 감정평가의 독립성과 전문성, 공정성을 확보하려는 조치라고 판단했어요. 국회도 감평협회의 손을 들어줬어요. 문진석 의원이 대표로 발의한 감평법 개정안은 자체 감정평가를 한 금융기관에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이라는 벌칙을 적용하는 내용이에요.
'금융기관의 담보감정 현황과 은행법 관련 규정'을 연구한 곽상빈 변호사는 "담보가치가 낮게 평가되면 대출한도가 줄어들거나 추가 담보가 요구될 수 있으며, 과대평가될 경우 부채 부담이 실제 자산가치에 비해 과도하게 높아질 위험이 있다"고 봤어요.
그는 "대출을 실행해 주는 금융기관이 담보물을 자신의 수익성에 따라 임의로 평가할 경우 금융산업 전반에 걸쳐 위험이 커질 가능성이 존재한다"며 "독립적인 감정평가업자를 통해 담보물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