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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획]실버택배의 세가지 포인트

  • 2018.05.21(월) 17:29

<인생 2막, 준비 또 준비하라>재취업①
일자리가 노인복지…돈·건강·정(情) '일석삼조'
"정부의 택배비 지원은 오해" 남모를 속앓이도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700만명을 향하고 있다. 더이상 일자리 문제는 청년들만의 고민이 아니다. 시니어도 일자리 없이는 안락한 노후를 꿈꾸기 힘든 시대다. 비즈니스워치는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시니어들의 현재 모습과 시니어 잡(Job)에 대한 해법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살펴본다. [편집자]

 

 

지난 14일 방문한 서울 구로구 천왕동 천왕이펜하우스 3단지 아파트. 1시간 반 가량 기다렸을까. 주차장으로 차가 들어왔음을 알리는 "삐이~"하는 소리에 자리를 털고 일어난 실배택배원들이 택배차량 짐칸으로 가더니 순식간에 크고 작은 화물을 내려놨다.

"이건 308동이요! 303동이요!"

운송장에 적힌 주소를 불러주는 목소리에 이들의 손놀림이 부산해졌다. 이날 배송해야 할 택배는 총 63개. 누런 서류봉투와 묵직한 생수묶음 등이 카트에 실려 각 가정으로 향했다.

 

◇ "일자리로 활력 솟아"

 

"체력이 허락하는 한 계속하고 싶죠. 아직 일할 데가 있다는 사실에 긍지도 생기고…"(김우생 실버택배원·83)

이 아파트는 2015년 8월 실버택배를 도입했다. 1층 실내주차장 입구에 택배거점(사무실)을 마련해놓고 이곳부터 가정까지는 만 60세 이상 시니어들이 배송토록 했다. 현재 배송과 반품 담당 13명을 비롯해 시니어 19명이 근무한다.

 

이들의 평균연령은 75세. 근로기준법상 정년(만60세)을 훌쩍 넘겼어도 카트를 한 손으로 끌 정도로 정정했다. 백창현(85) 실버택배원은 "일자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생활에 활력이 생긴다. 배송 자체가 운동이 되는 데다 용돈도 벌고, 이제는 나가라고 해도 못나간다"며 웃었다.

사무실에서 만난 7명의 실버택배원들은 일에 대해 높은 만족도를 나타냈다. 배송구역이 단지 내로 정해져 업무가 고되지 않고 하루 서너시간을 일하면 월 50만원 가량의 수입이 생긴다. 이들에게는 병원이나 경로당보다 훌륭한 복지제도가 실버택배였다.

"노인정 근처에도 안 가. 아휴~ 가면 담배 피우고 안좋아. 자연 속에서 걷고 내 용돈은 마련되니까 여기가 좋지."(최병운 실버택배원·79)

 

▲ 주차장으로 택배차량이 도착하자 실버택배원들의 손놀림이 분주해졌다. 각자 배송할 택배를 카트에 싣고 있는 실버택배원들. 이들의 평균연령은 75세다.


◇ 난데없이 날아든 '다산신도시'

 

남양주시 다산신도시가 국토교통부 중재로 실버택배를 도입하려다 여론의 반발로 무산된 일을 아는지 물었다. 주민들이 택배차량의 아파트 진입을 막아 생긴 일을 세금을 투입해 해결하려 한다는 논란이 일면서 다산신도시 실버택배는 없던 일이 됐다.

방금까지 "한약재는 우리나라에서 경동시장이 가장 크다"며 이야기꽃을 피우던 실배택배원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듣긴 했다"고 할 뿐 더이상 말이 없었다. 실버택배가 세금을 축내는 일로 여겨질까 걱정한 것으로 보였다.

실버택배원은 택배회사로부터 받는 수수료(배송 건당 약 500원, 월 35만원 가량)와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받는 지원금(매월 15만원)이 주 수입원이다. CJ대한통운에 따르면 현재 전국 170여개 거점에서 실버택배원 1400명이 일한다.

이들 모두가 한달에 50만원씩 받는다고 가정하면 연간으로 84억원의 돈이 든다. 이 가운데 37억원(1인당 210만원,운영비 포함)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노인 일자리 창출 명목으로 지원한다.

이 금액은 과한 것일까. 지난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에게 지급한 진료비는 21조원에 달한다. 
노인 1인당 310만원, 월평균으로는 26만원을 지원한 셈이다.

실버택배가 병원비보다 비용이 덜드는 정책임에도 실버택배원들은 난데없이 날아든 일로 가슴앓이를 했다.

 

천왕이펜하우스에서 실버택배 안살림을 챙기는 사단법인 길가온혜명 소속 황난실 실장은 "아버님들은 일자리와 건강을 얻고, 주민들은 안심하고 택배를 받아볼 수 있는 장점이 있는데 마치 정부가 택배비를 대준다는 식의 오해가 생기면서 논란이 커졌다"며 안타까워했다.

 


◇ 몸은 실버여도 기본은 충실 

 

배송을 시작한지 30여분 뒤 일찌감치 배송을 마친 실버택배원들이 하나둘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황 실장은 "쿠팡맨이 고객이 부재 중일 때 배송인증샷을 찍어 보내주는 것과 비슷하다"며 "아버님들이 스마트폰에 서툴러서 그렇지 마음만은 젊은 택배기사 못지 않다"고 했다.

앞서 김우생 실버택배원은 "자랑거리가 있다"며 이 얘기를 기사로 써달라고 부탁했다.

"312동 ○○○호. 그 분 성함이 정○○에요. 내가 여기 온지 3년 됐는데 문을 두드리면 한번도 그냥 나온 적이 없어요. 수고하신다며 요쿠르트 같은 걸 주는데 그 마음이 고맙더라구요. 마음이 따뜻해지고 보람을 느낀다고 할까. 3단지 주민들 참 친절합니다. 이 말 꼭 하고 싶습니다."

실버택배원들의 배송품목에 이웃간 정(情)이 추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