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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 생수병 32개 숨어 있는 아이오닉5

  • 2021.06.10(목) 07:15

[창간기획]ESG경영, 이제는 필수다
현대차 디자인팀이 전한 친환경 소재
아이오닉5 계기로 전차종으로 확대

ESG 경영이 대세다. 투자유치, 수주 등 경영활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국내 많은 기업과 금융사들이 핵심 경영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ESG 경영은 금융투자, 스타트업 육성, 제품 개발 등 실질적인 기업활동에 적극적으로 녹아들고 있다. 비즈니스워치는 다양한 ESG 경영활동이 이뤄지는 현장을 발굴해 공유함으로써 ESG경영 확산에 기여하고자 한다. [편집자]

최근 이목을 끌며 출시된 현대자동차 아이오닉5에서 친환경 소재 내장은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각계 다수의 관심은 아이오닉5의 기반이 되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E-GMP)에만 집중됐다. 1회 배터리 충전으로 얼마나 오래 달릴 수 있는지, 엔진 대신 모터를 단 전기차의 주행감은 어떤지 등이다. 하지만 '폐차 쓰레기'라는 환경이슈를 고려하면 친환경 소재 적용은 전기차 플랫폼만큼이나 혁신적인 시도다.

지난해 국내에서는 신차 189만대가 팔렸고, 노후 차량 95만대가 폐차됐다. 2대가 생산될 때 1대는 폐기된 셈이다. 폐차 과정에서 차의 골격인 철은 거의 100% 재활용되지만 플라스틱, 고무, 유리, 시트 등 부품 대부분은 태워지거나 땅에 묻힌다. 국내에서만 95만대가 폐차됐으니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는 폐차 쓰레기는 얼마나 될까? 현대차는 전기차 아이오닉5에 '착한 모빌리티 소비'의 대안을 담았다.

아이오닉 5는 페트병을 재활용한 패브릭으로 시트와 팔걸이를 만들었다/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문짝에서 버튼까지"

아이오닉5에는 다양한 친환경 소재가 사용됐다. 시트는 사탕수수 등에서 추출한 바이오 성분을 활용한 원단으로 제작됐다. 시트와 함께 암레스트(팔걸이)엔 재활용 투명 페트병을 가공해 만든 원사가 들어갔다. 도어 트림과 도어 스위치, 크래시 패드는 유채꽃 등에서 추출한 '바이오 오일 페인트'를 썼다. 시트 가죽 염색 공정엔 식물성 오일을 사용했다. 

지난 2월 열린 아이오닉5 콘퍼런스에서 이상엽 디자인담당 전무는 "차 시트 제조과정에서 가죽에 화학약품을 많이 쓰는데 아이오닉5는 화학약품은 최대한 줄이고 바이오 오일을 통해 색을 구현했다"며 "문짝에서 작은 버튼까지 섬세하게 친환경 소재를 고민한 차"라고 소개했다.

현대차그룹이 친환경 소재 개발에 나선 것은 2000년대 초반이다. 재활용이 어려운 석유화학 소재 플라스틱을 선순환이 가능한 식물 자원 소재로 바꾸려는 시도였다. 실제 차에 적용된 것은 2014년 기아의 쏘울 EV(전기차)다. 대시보드에 석유계가 아닌 사탕수수에서 추출한 바이오 플라스틱을 사용한 것이다. 이후 2016년 현대차의 아이오닉, 2018년 수소전기차 넥쏘 등으로 범위를 넓혔다.

현대차는 아이오닉5를 계기로 친환경 소재 적용 차종을 확대할 방침이다. 이상엽 전무는 "아이오닉5를 시작으로 현대차 전체로 확대할 계획"이라며 "자동차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자동차 업계에서는 완성차업체를 통칭)으로서 친환경에 대한 책임을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이오닉5 도어와 크래시 패드는 바이오 페인트로 도색했다./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아이들을 위한 큰 걸음"

하지만 안전과 직결된 자동차의 소재를 바꾸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교체 비용도 만만치 않다. 환경을 위해 기꺼이 돈을 더 부담하겠다는 착한 소비가 활성화되지 않는 이상 대중화하기도 쉽지 않다는 의미다. 박찬기 현대차 CMF(Color·Material·Finishing)팀 책임연구원에게 개발과정에 대해 물었다. CMF팀은 차 개발 과정에서 외·내장의 색깔과 재질, 시트 패턴 등을 디자인하는 팀이다. 아래는 이메일 인터뷰로 진행된 일문일답이다.

- 아이오닉5 개발과정에서 친환경 소재를 사용할 때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이었나.

▲ 가장 큰 고민은 경쟁사와 차별되면서 실제 적용 가능한 현대차만의 친환경 소재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다른 산업 영역에선 친환경소재 사용이 범용화되고 있는데, 자동차 업계에선 가혹한 내구 성능을 만족할 소재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개발 초기부터 다양한 친환경 소재를 탐색했고, 적용 가능한 소재 목록을 만들었다. 선정된 친환경 소재들이 차 물성에 적합한지 검토하기 위해 실제 부품에 적용했고 평가 과정에서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해 사용하지 못한 소재도 많다.

- 친환경 소재 사용으로 원가 부담이 늘어난 것은 아닌가.

▲ 현대차 디자인센터에서 아이오닉5 개발단계부터 판매 지역별(국내·북미·유럽) 소비자를 대상으로 시장조사를 진행했다. 자동차 실내에 친환경 소재를 적용할 경우 소비자 선호도와 친환경 소재에 대해 지불 가능한 비용에 대한 조사였다. 지역별로 결과는 달랐지만 상당한 비용을 재료비 명목으로 추가 지불할 의향이 확인됐다.

- 친환경 소재가 적용되는 범위는 어떻게 결정됐나.

▲ 소비자가 아이오닉5 실내공간에서 하는 모든 행동을 염두에 두고 소재 계획을 세웠다. 차 실내에서 운전자의 손과 발, 몸이 직접 닿는 부분이 친환경 소재의 최우선 적용 대상이었다. 우선 손이 자주 닿는 스위치 부품과 스티어링 중앙의 혼커버, 도어, 마그네틱 패널이 선택됐다. 몸이 닿는 시트와 발이 닿는 플로어, 보조매트뿐 아니라 헤드라이닝에도 바이오 소재를 적용해 머리 위에서 친환경 소재가 감싸주는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었다.

- 실제 아이오닉5에 들어간 친환경 소재는 얼마나 되나.

▲ 우선 재활용 투명 페트병(recycled PET)은 시트와 도어에 적용되었는데 500㎖ 페트병이 최소 10개에서 최대 32개가 사용됐다. 시트 원단 기준으로 패턴과 색에 따라 다양한 원사가 적용되는데 재활용 PET 소재 함유량은 10~41%다. 

사탕수수와 옥수수 추출 바이오 물질은 크래시패드, 도어 등 부품에 적용됐다. 차 1대당 총 730g이 포함됐다. 가죽시트 염색 공정에서 사용되는 동물성·합성 오일 대신 식물성인 아마 씨앗 추출 오일이 대체됐는데 1대당 200g이 사용됐다. 플라스틱보다 생분해 기간이 단축되는 고밀도폴리에틸렌(HDPE)재질의 페이퍼렛(Paperette) 소재는 도어 가니시 부품 4개에 총 0.08㎡ 면적으로 사용됐다. 유럽 판매 차량의 시트에 한정됐지만, 294g의 천연 울도 적용됐다.

- 이전에 친환경 소재가 적용된 아이오닉, 넥쏘 등 모델과의 차별성은 무엇인가.

▲ 넥쏘 등에서 검증된 친환경 소재를 기반으로 범위를 확대했다. 운전자가 실내공간 어느 곳을 보더라도 친환경 소재를 인지할 수 있도록 말이다. 친환경 소재를 제조하는 과정의 친환경성도 고려했다. 폐기되는 차 소재로 업사이클링된 제품을 선보이는 등 전체 제조과정에서 탄소 발자국을 줄이는 방법도 검토했다. 우리의 아이들이 살아갈 환경에 도움되도록 이전보다 큰 걸음을 내딛게 된 것이다. 앞으로 친환경 소재 적용 범위를 확대하고 다각도에서 소재 연구를 하겠다.

/그래픽=비즈니스워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