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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TV를 조금씩 '착하게' 바꿔가는 그들

  • 2021.05.28(금) 09:39

[창간기획]ESG경영, 이제는 필수다
업계 최초 온실가스 줄이기 '고잉 그린' 공표
에코패키지·솔라셀리모컨·재생플라스틱 '첫걸음'

ESG 경영이 대세다. 투자유치, 수주 등 경영활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국내 많은 기업과 금융사들이 핵심 경영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ESG 경영은 금융투자, 스타트업 육성, 제품 개발 등 실질적인 기업활동에 적극적으로 녹아들고 있다. 비즈니스워치는 다양한 ESG 경영활동이 이뤄지는 현장을 발굴해 공유함으로써 ESG경영 확산에 기여하고자 한다. [편집자]

지난 1월 열린 '삼성 퍼스트룩 2021'은 여느 해와는 확연히 달랐다. 퍼스트 룩(First Look)은 이름 그대로 삼성전자가 매년 여는 TV 신제품 출시 행사다. 한 해 판촉을 시작하기 전 업계와 소비자들의 이목을 사로잡으려 세계 최대 가전박람회 CES(Consumer Electronics Show)와 연계해 열고 있다.

하지만 올해 행사에서 신제품 얘기는 쑥 뒤로 밀렸다. 경쟁사와 다퉈가며 그렇게 내세우던 화질과 화면 크기, 삼성이 가진 '초격차' 정보기술(IT)을 끌어모아 선보이는 사용 편의성도 모두 뒷전이었다. 

시작부터 직접 앞에 나선 한종희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장(사장)은 행사 전체의 절반 가까운 시간을 할애해 '고잉 그린(Going Green), 룩 백(Look Back)'이라는 메시지, 그리고 이를 아우르는 '스크린 포 올(Screen for All)'이라는 새로운 TV 사업의 방향성을 전했다. 비대면 시대 폭발하는 가전 수요를 잡겠다며 내놓은 회심의 신제품 '네오 QLED TV' 소개도 한참 뒤에나 나왔다.

삼성전자가 강조한 메시지 '고잉 그린'과 '룩 백'은 각각 친환경과 접근성을 말한다. 제품과 사업에서 탄소 발자국을 줄여가겠다는, 또 제품 사용에 소외되는 사회계층이 없도록 돌아보겠다는 약속이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서 각각 E(Environment)와 S(Social)다. 한 사장은 '스크린 포 올'에 대해 "최고의 스크린 경험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드는 데 기여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고잉 그린' 3개 프로젝트에 참여한 손성도 디자이너, 한승산 엔지니어, 김관영 엔지니어./사진=삼성전자, 그래픽=비즈니스워치

변화의 핵심은 친환경에 있었다. TV 생산부터 제품 수명주기 전반에 걸쳐 탄소 배출량을 줄여내고, 자원순환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올해 삼성 TV의 가장 큰 혁신이라는 것이다. △에코 패키지 확대 △솔라셀(Solar Cell) 리모컨 △재생 플라스틱 사용 등이 그 첫걸음이다. 아직은 크지 않지만, 의미 있는 변화의 시작에 참여한 3명의 직원들 얘기를 삼성전자 뉴스룸에서 들어봤다. 

버려지는 박스, 생활 소품으로 '에코 패키지'

TV 제품의 포장재는 안에 있는 내용물을 잘 보호해야 하는 게 주역할이다. 하지만 부수적으로는 광고판이 되기도 한다. 삼성은 여기서 거품을 뺐다. 먼저 올해부터 포장재에 둘렀던 각종 색채 인쇄를 걷어냄으로써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냈다.

특히 포장재는 배송과 설치가 끝나면 쓰레기가 된다. 이를 살린 것이 '에코 패키지'다. 포장재 소재가 튼튼한 골판지인 만큼 작은 가구나 생활소품으로 만들면 버려지지 않고 오래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이다. 소품을 만드는 도면과 방법은 포장재에 찍힌 QR코드로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하면 매우 상세하게 나온다. 

포장재에는 기존과 달리 도트(점) 패턴을 입혀 사용자가 골판지를 재단하고 조립하기 쉽도록 했다. 이 작업에 참여한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손성도 디자이너는 "다양한 용도의 가구 도면을 제공해 사용자 취향에 맞게 선택해 제작 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며 "간단해 보이지만 마케팅, 그래픽 등 다양한 분야의 협력이 있어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에코 패키지/사진=삼성전자 제공

도면은 제품의 종류와 화면크기 등에 따라 수십가지. 가장 쉬운 것들로 △고양이 터널 △책꽂이 △탁상선반 등이 있다. 손 디자이너는 "심미적인 부분에 치중하면 만드는 게 어렵거나 사용성이 떨어질 수 있고, 너무 쉬우면 외관이 예쁘지 않아 균형을 잡는 게 쉽지 않았다"며 "안전사고를 유발할 수 있는 도안도 전부 제외했다"고 했다.

일부 TV 제품으로 시작한 에코 패키지는 올해 선보이자마자 TV 전 제품으로, 또 청소기, 주방가전, 공기청정기 등까지 확대됐다. 손 디자이너는 "삼성이 뛰어난 기술력의 제품도 만들지만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작은 부분에도 신경 쓰고 있다는 점을 알리고 싶다"고 전했다. 

건전지 교체 없는 '솔라셀 리모컨'

삼성전자는 TV의 보조도구에 지나지 않는 리모컨에서도 '고잉 그린'의 접근 방법을 찾았다. 소비자 입장에서 사실 리모컨은 아무 생각없이 쓰다가 배터리가 떨어져 교체할 때쯤에야 에너지 소비를 인식한다. 통상 1년에 한 번, 소형 건전지 2개 정도다. 이조차도 소모하지 않도록 하자는 해결책이 '솔라셀 리모컨'이다. 뒷면에 태양전지 패널을 배터리 교환 없이 반영구적으로 쓰게 한 것이다.

개발에 참여한 김관영 엔지니어는 "TV의 사용 주기를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약 7년으로 설정했을 때, 1년에 한 번만 리모컨 배터리를 교체해도 한 가정에서 14개의 배터리가 꾸준히 폐기된다"고 말했다. 이를 삼성전자의 연간 예상 판매대수에 적용하면 9900만개나 된다. 

2021년형 QLED TV 전 제품에 적용되는 솔라셀 리모컨/사진=삼성전자

하지만 집안에서 쓰는 리모컨을 태양광 충전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김 엔지니어는 "리모컨은 TV를 사용하지 않을 땐 가만히 놓여있어 운동에너지 등으로 충전하기는 어렵다"며 "그래서 잘 때를 빼고는 늘 켜있는 실내등으로도 충전할 수 있는 저조도 솔라셀을 택해 리모컨에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 정도의 전력량도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아예 전기를 86% 덜 쓰는 '간편모드' 리모컨을 고안해 냈다. 김 엔지니어는 “TV를 조작하는 기기인 리모컨은 사용자와 최접점"이라며 "사용자가 조금 더 가치를 느낄 수 있는, TV 구매에 결정적 포인트가 될 수 있는 그런 리모컨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더 비싸지만 '재생 플라스틱 사용'

초보 단계지만 TV 외장 등에 쓰이는 플라스틱 소재를 재활용품으로 채우는 변화도 올해부터 본격화했다. GESP(Global E-waste Statistics Partnership)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매년 버려지는 전자폐기물은 5000만톤을 넘는다. 하지만 이중 재활용되는 것은 17%에 그친다. 

/그래픽=김용민 기자 kym5380@

사실 재생 플라스틱을 쓰면 돈은 더 든다. 폐자원의 수거, 정제, 물성 보강을 거친 재생 플라스틱은 제조 공정에서 단가가 높아진다. 친환경 바람 속에 수급도 달려 이를 사용하면 5~10% 비용이 증가한다. 이를 담당하는 한승산 엔지니어는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에서만 사용하는 플라스틱의 양이 연간 25만톤인데 그중 10~30%만 재생 플라스틱으로 대체해도 3만~7만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재생 소재의 활용이 늘어나는 이유는 친환경 효과가 커서다. 한 엔지니어는 "해안가에 버려지는 폐소재의 20%를 차지하는 PET를 가공해 제품 외장재에 적용할 수 있다"며 "해양오염을 방지하는 새로운 친환경의 이미지를 시장 가치에 부여하고 환경 보호 활동을 선도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오랜 재생 플라스틱 활용을 오래 고민하면서 소재로도 완성도가 높고, 단가는 크게 부담되지 않는 제품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솔라셀 리모컨은 물론 TV 등 가전 내장재와 뒷면 커버 등이 쓰인다. 이를 통해 매년 500톤(t)의 온실가스 감축효과를 보고 있다는 설명이다. 

TV에서 시작하는 삼성전자의 '고잉 그린' 노력은 아직은 걸음마 단계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사업 규모나 TV 판매량 등을 감안하면 이런 노력만으로도 저감할 수 있는 온실가스량은 무시 못하는 규모다. 삼성 측은 올해 생산되는 TV 제품의 친환경 방식 적용으로 줄일 수 있는 온실가스 감축량은 약 2만5000톤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는 30년생 소나무 380만그루가 흡수하는 양이다.

/그래픽=비즈니스워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