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와 소상공인이 '대형마트 새벽배송 규제 완화'에 따른 상생 조건을 두고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대형마트는 온라인 유통사와 똑같은 환경에서 경쟁할 수 있는 길을 열어달라는 입장이다. 반면 소상공인들은 골목상권이 위축될 가능성을 고려해 대형마트에게 일정한 제약을 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새벽배송 허용 범위와 소상공인 보호 방안을 둘러싼 양측의 입장차가 더욱 선명해지는 모습이다."우리는 어떡하라고"
전국상인연합회(전상연)는 최근 내부적으로 대형마트의 새벽배송을 허용하는 대신 신선식품 소량 판매를 제한하는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대형마트가 심야 시간대(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에 단일 품목 1만원 이하의 농·축·수산물을 판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의 영역을 구분해 소상공인의 생존권을 지키겠다는 취지다.
실제로 전통시장에서는 양파나 오이, 상추, 마늘 등 필요한 식재료를 그때그때 구매하려는 소비가 적지 않다. 1~2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이 같은 소비 형태는 더욱 확산되는 추세다. 소비자가 한 끼 식사나 반찬을 준비하는 수요까지 대형마트의 새벽배송으로 이동할 경우 전통시장이 경쟁력을 갖고 있던 영역까지 잠식될 수 있다는 게 소상공인들의 우려다.
이충환 전상연 회장은 "수박처럼 무거운 상품들은 소비자들이 시장에 와서 사는 것 자체가 불편하지만 가볍고 소량으로 자주 사는 신선식품은 시장 상인들이 지키고 있는 대표적인 1차 상품"이라며 "소상공인 매출에서 1차 식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70~80%에 달할 정도"라고 말했다.
이어 "2000~3000원어치 식재료들을 모아 반찬을 만들어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어떤 한 품목을 1만원어치 대량으로 사려는 소비자는 많지 않다"며 "1만원 이하라는 기준점을 설정하게 된 것도 소상공인이 받는 타격을 줄일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대형마트와 같은 조건에서 경쟁하기 어렵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는다. 대형마트는 촘촘한 물류망을 갖추고 있어 소량의 신선식품이라도 집 앞까지 보낼 수 있다. 다만 전통시장 상인들은 배송 인력 자체가 부족한 데다, 개별 점포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어 이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쉽지 않다. 이 때문에 대형마트의 새벽배송이 확대될 경우 그나마 남아 있는 전통시장을 찾는 발길마저 줄어들 것이라는 관측이다.
현장에서 만난 한 소상공인은 "대형마트가 새벽배송을 한다는 점보다 이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생활권의 마지막 소비 시장까지 파고드는 것이 가장 두렵다"며 "온라인 시장이 급격하게 커진 상황에 자본력에 촘촘한 물류망까지 갖춘 대형마트까지 합세하게 된다면 골목상권의 남은 생존 기반마저 흔들리는 건 시간 문제"라고 토로했다."왜 우리한테 그래"
하지만 대형마트 업계의 생각은 다르다. 업계는 소상공인과의 상생 필요성에 동의하면서도 대형마트만 판매를 규제하는 건 불공정하다는 입장이다. 이미 쿠팡을 비롯한 컬리, 오아시스 등 이커머스(전자상거래)가 시간과 장소의 제약 없이 신선식품을 판매하고 있음에도 불구, 대형마트에 또 다른 족쇄를 채우는 것은 이커머스의 배만 불리는 것이 아니냐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예컨대 쿠팡은 현재 와우 멤버십 회원이 1만5000원 이상 신선식품을 구매할 경우 무료로 새벽배송을 해주고 있다. 농·축·수산물 등 품목을 따로 구분하지 않고 최소 주문금액만 맞추면 되는 식이다. 반면 대형마트에서는 8000원짜리 계란 한 판과 3000원짜리 대파 한 단, 7000원짜리 재래김을 주문한다고 가정해도 살 수 없다. 개별 상품의 가격이 1만원을 넘지 않기 때문이다.
대형마트 한 관계자는 "국거리용 고기나 수산물, 채소 등 소비자가 1만원 이하로 구매하는 상품들이 많은데 이를 판매하지 못한다는 건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상품 자체가 줄어드는 것"이라며 "여름철 수박처럼 대형마트가 9900원 가격으로 할인 판매하는 상품까지 제한될텐데 결국 소비자에게 가격 부담이 전가될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강조했다.
업계가 이번 소상공인들의 의견에 반발하는 이유는 또 있다. 대형마트는 현재 월 2회 의뮤휴업 이외에도 점포 개점 시 인근 소상공인에게 상생기금을 조성·지원하고 있다. 여기에 현행법상 전통시장 반경 1㎞ 이내 입점에 대해서도 제한을 받고 있다. 대형마트가 지역 상권과 상생하기 위해 상당한 비용과 노력을 부담하고 있는 상황에서 새벽배송 허용을 계기로 추가적인 양보까지 요구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대형마트 업계 사이에서는 정부가 당초 새벽배송 규제 완화를 논의했던 취지에 맞게 규제의 형평성을 따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대형마트가 장바구니 물가 부담의 최전선에 있는 만큼 공정한 가격 경쟁을 통해 소비자 부담을 낮추는 역할을 이어갈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대형마트의 영업 활동을 단순히 규제하기보다 소비자들의 구매 방식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또 다른 대형마트 관계자는 "이커머스 업체들과 동일한 시장에서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본래의 목적인데 특정 업태에만 규제를 적용하는 방향은 옳지 않다"며 "소비자들이 상품과 서비스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유통업계의 경쟁 여건을 함께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