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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장과 대형마트의 '제로섬 게임'

  • 2026.09.19(토) 13:00

[주간유통] 대형마트 규제 완화 논란
규제 유지해도 전통시장 규모 매해 줄어
경쟁자 규제보다는 '지원'에 초점 둬야

그래픽=비즈워치

[주간유통]은 한주간 유통·식음료 업계에서 있었던 주요 이슈들을 쉽고 재미있게 정리해 드리는 콘텐츠입니다. 뉴스 뒤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사건들과 미처 기사로 풀어내지 못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여러분께 들려드릴 예정입니다.[편집자]

제로섬 게임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이 게임에 참가한 참가자들의 점수를 모두 합하면 '제로'가 되는 게임이라는 의미입니다. 가장 쉬운 예는 스포츠입니다. 한 팀이 승리해서 승점을 얻으면 상대팀은 승점을 잃죠. 누군가 이득을 보면 반드시 다른 한 쪽이 손해를 본다는 겁니다.

이 경우 꼭 내가 잘 해서 이기는 것만이 답은 아닙니다. 내가 플레이를 잘 하지 못하더라도 상대의 발을 걸어 넘어뜨려 낙오시키면 자연스럽게 나에게 이익이 돌아올 수 있습니다. 내가 잘 하는 것보다 남을 잘 못 하게 만드는 게 승리 전략이 될 수 있죠. 

하지만 이런 제로섬 게임은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힘듭니다. '너와 나'라는 당사자만 존재하는 세계를 구축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나만 잘 한다고 일이 잘 풀리는 것만도 아니고, 상대가 망한다고 내가 저절로 잘 되는 일도 많지 않습니다.

설연휴를 이틀 앞둔 12일 서울 동대문구 청과시장에서 시민들이 제수용품을 구매하고 있다./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그럼에도 세상엔 너를 앞서나가지 못하게 하면 내가 잘 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 혹은 기업들이 있습니다. 최근의 대형마트 규제 완화를 둘러싼 논란들도 그렇습니다. 최근 몇 년간 쿠팡 등 이커머스가 급성장하며 대형마트가 어려워지자 새벽배송 등의 규제를 풀자는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그러자 전통시장을 살려야 한다며 반대하는 목소리가 드높습니다.

대형마트의 새벽배송 규제 완화를 반대하는 논리는 간단합니다. 소비자들이 대형마트 새벽배송을 이용하게 되면 전통시장과 소상공인들의 매장을 찾는 사람들이 줄어들 거라는 겁니다. 반대로 대형마트의 영업을 규제하면 대형마트에 가지 못하는 소비자들이 전통시장으로 발길을 돌릴 거라는 논리입니다.

이 세상에 유통 채널이 대형마트와 전통시장만 존재해야만 성립되는 논리입니다. 대형마트가 새벽배송을 하지 않아도 소비자들은 얼마든지 새벽에 제품을 받아볼 수 있습니다. 새벽뿐만이 아닙니다. 퀵커머스가 확산되며 이제 주문 후 1~2시간이면 집 앞으로 제품이 배송됩니다. 심지어 여기엔 '소상공인'과 '전통시장'의 상품도 포함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대형마트는 현재 대한민국의 유통 채널 경쟁에서 한 발, 아니 두어 발 뒤처져 있는 플레이어입니다. 쿠팡의 올해 3분기 누적 매출은 36조원을 넘어섰습니다. 대형마트 3사의 소매 판매액을 합친 것보다 10조원 가까이 많습니다.

나를 알아야 위태롭지 않다

그럼 전통시장이 공격해야 할 건 대형마트가 아니라 쿠팡이라는 이야기일까요. 물론 그것도 아닙니다. 쿠팡이 사라지거나 경쟁력을 잃는다고 해도 그 자리를 지금의 전통시장이 차지할 가능성은 없습니다. 그 자리엔 또다른 쿠팡이 나타날 겁니다. 대형마트의 자리를 쿠팡이 차지한 것처럼 말이죠.

대형마트의 발목을 잡아 전통시장이 '상대적 우위'에 서게 하겠다는 전략은 제로섬 게임에서 착안한 논리입니다. 이 논리가 현실에서 적용되지 않는다는 건 이미 지난 14년의 유통 환경 변화로 증명됐습니다. 일요일 영업을 막고, 새벽배송을 막았지만 소비자들의 발길은 전통시장이 아닌 스마트폰 속 이커머스로 향했습니다. 

그렇다면 전통시장이 살아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머리를 싸매도 이루지 못한 일을 단숨에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이 고민에 한 발을 함께 담그는 것은 도움이 될 겁니다.

그래픽=비즈워치

중요한 건 끊임없이 나타나는 경쟁자를 제거하는 게 아닌, 나의 경쟁력을 높이는 겁니다. 10여 년 전 전통시장을 홍보하던 사람들은 늘 '대형마트보다 싸다'를 외쳤습니다. 명절이면 으레 나오는 '전통시장과 대형마트 차례상 가격 비교' 같은 기사들은 전통시장의 장점을 알리는 게 목적이었죠. 

하지만 소비자는 대형마트가 '싸서' 가는 게 아닙니다. 쿠팡의 성공 요인도 다른 이커머스보다 '싸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쿠팡은 새벽배송 비용이 가격에 녹아 있어 다른 이커머스보다 대체로 가격이 높은 편입니다. 그래도 사람들이 쿠팡을 찾는 건 '빠른 배송'이라는 차별화된 경쟁력 때문입니다.

전통시장 역시 '나만의 경쟁력'을 발굴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최근 젊은 층과 외국인들에게 '핫플'로 꼽히는 전통시장들은 대부분 차별화된 장점이 있습니다. 인생 사진을 남길 수 있는 멋진 풍경 요소가 있거나, 냉동 제품에선 절대 찾아볼 수 없는 풍미의 갓 쪄낸 떡을 파는 떡집 같은 요소는 이커머스나 대형마트가 따라하기 어려운 경쟁력입니다.

중국 춘추시대의 병법가 손무는 손자병법에 '지피지기면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흔히 '백전백승'으로 잘못 인용되는 문구지만 실제로는 '위태롭지 않다'는 말입니다. 왜 손자는 '상대를 이긴다'고 말하지 않고 '내가 위태롭지 않다'고 말했을까요. 아마 그는 이 세상이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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