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워치 창간2주년특별기획 좋은기업

②찔끔찔끔은 그만..확 풀어라

  • 2015.05.12(화) 14:18

비즈니스워치 창간 2주년 특별기획 <좋은기업> [다시 뛰자!]
탁상행정에서 돌발규제까지 각종 규제 난무
과감한 규제 철폐로 기업하기 좋은 환경 조성해야

한국 제조업이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전자와 자동차를 중심으로 한 대기업들의 경쟁력이 약화되면서 제조업 전반에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선진국과 신흥국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지금까지와는 다른 반전카드가 요구된다. 한국 제조업이 처한 현실을 짚어보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개혁 방향, 새로운 성장모델 등을 제시해본다. [편집자]

'규제개혁'이라는 표현을 처음 사용한 김영삼 정부 이후, 이 단어는 지금까지 모든 정부가 빠지지 않고 제시한 화두였다. 전 정권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나타내기 위한 아이템으로 이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늘 그렇듯 창대했던 시작과 달리 끝은 흐지부지였다.

정부의 규제개혁이 실패한 이유는 바로 '현장'이라는 핵심이 빠져 있기 때문이란 평가가 대부분이다. '탁상 행정'이라는 비판이 따라다니는 배경이다. 이번 정부 역시 비슷한 길을 가고 있다.

◇ 탁상행정부터 돌발 규제까지 

 

이번 정부의 대표적인 규제개혁 아이콘인 푸드트럭이 대표적이다. 지난 10여년간 불법이었지만 작년 4월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로 합법이 됐다. 각종 법 개정은 물론 단종됐던 소형 경트럭의 생산도 재개됐다. 일사천리였다. 정부는 바닥면적 0.5㎡ 이상인 소형 경트럭을 푸드트럭으로 개조하는 것을 허용했다. 또 전국 350여개 유원지와 놀이공원 내에서 푸드트럭의 영업도 가능토록 했다. 실효성 우려가 있었지만 묵살됐다. 푸드트럭은 그렇게 규제개혁의 신화가 됐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푸드트럭의 현주소는 참담하다. 현재 전국에서 합법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푸드트럭은 4대 뿐이다. 푸드트럭이 식품위생법이 요구하는 시설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유원지, 놀이공원 영업 허용도 기존 상권에 가로막혔다. 다급해진 정부는 영업 허용 범위를 대학으로 확대했지만 이번에는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푸드트럭은 이제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들의 대학 내 이동식 점포로 전락하게 됐다.

 

▲ 푸드트럭은 지난 10여년간 '불법'이었다. 하지만 작년 박근혜 대통령의 한마디로 '합법'이 됐다. 푸드트럭 합법화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규제개혁의 아이콘이 됐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푸드트럭은 정부의 탁상행정이 빚어낸 대표적인 규제 개혁 실패 사례로 꼽힌다.


푸드트럭이 탁상행정의 대표적인 사례라면 규제가 산업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시장 선점의 기회를 놓친 경우도 있다. 지난 2011년 한국항공우주연구원(KARI)은 독자기술로 무인 수직 이착륙 헬기를 개발했다.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다. 대한항공은 이 원천기술을 이전받아 시범비행까지 마쳤다. 하지만 이 국산 무인 헬기가 국내서 상용화되려면 2년을 더 기다려야한다. 관련 법 제정 등 규제 인프라 구축 일정이 오는 2017년으로 잡혀있어서다.

반면 경쟁 업체들은 이미 상용화에 나섰다. 독일의 운송회사인 DHL은 이미 무인 비행체인 '드론(drone)'을 이용한 소포 배달을 시작했다. 미국의 아마존도 향후 5년내 전체 주문량의 86%를 드론으로 소화한다는 계획이다. 미국은 지난 2012년 무인항공기 민간운용법을 제정했다. 세계 무인항공기 시장 규모는 오는 2023년 89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규제 때문에 눈 앞에서 신시장을 놓칠 판이다.

 

▲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지난 2011년 세계에서 두번째로 개발에 성공한 무인 수직 이착륙 헬기 TR-100. 하지만 국내에서 이 무인 헬기가 상용화되려면 앞으로 2년을 기다려야한다. 관련 규제와 인프라 구축 논의가 오는 2017년으로 예정돼 있어서다. 이미 미국과 독일 등 경쟁업체들은 무인 헬기와 무인 비행체인 '드론'을 상용화해 소포 배달 등에 이용하거나 계획을 진행 중이다. 규제가 산업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시장 선점의 기회를 놓친 대표적인 사례다.

 

업계 관계자는 "아무리 좋은 상품을 개발해도 규제에 발목이 잡혀 시장에 나설 수 없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며 "기존 규제로 해결하기 힘든 신제품은 제품 개발부터 정부가 해당 인증기준을 함께 개발해 출시단계에서 신속히 적용하는 ‘미국형 이노베이션 패스웨이(innovation pathway) 제도’와 같은 친기업적인 제도 도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갑작스런 규제 신설로 예상보다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 사례도 있다. 현대차그룹은 오랜 기간 뚝섬에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건설에 공을 들여왔다. 서울시와도 원만하게 협의를 진행해왔다. 하지만 서울시장이 바뀌면서 현대차그룹의 뚝섬 프로젝트는 난항을 겪게됐다. 서울시가 비도심지역 50층 이상 신축 금지 규제를 신설하면서 현대차그룹의 뚝섬 프로젝트는 무산됐다. 결국 현대차그룹은 3조원 정도로 예상됐던 뚝섬을 포기하고 3배가 넘는 비용을 들여 삼성동 한전부지를 낙찰 받았다.

◇ '빼기 쉬운' 가시만 뽑는다

“툭툭 규제를 던져놓는데 개구리는 거기 맞아서 죽을 수도 있다.”
“쓸데없는 규제는 우리가 쳐부술 원수, 제거하지 않으면 우리 몸이 죽는 암덩어리.”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손톱 밑 가시'를 뽑겠다고 선언했다. 그동안 국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던 각종 규제를 완화해 기업들에게 숨통을 틔워주겠다고 했다. 규제개혁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은 매우 확고했다. 박 대통령은 연일 규제에 대해 강렬하고 직설적인 발언들을 쏟아냈다.

박 대통령의 이런 의지는 일단 실행에 옮겨졌다. 작년 3월 규제개혁장관회의가 처음으로 열리고 현장의 목소리들을 청취했다. 푸드트럭도 이 당시 나온 이야기였다. 해당 부처 장관들은 열심히 메모했고, 개혁을 약속했다. 봇물 터지듯 각종 혁안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기업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현실성이 없는 데다 정작 필요한 규제는 외면했기 때문이다.

 

작년 12월 열린 2차 규제개혁장관회의 이후 기업들은 더욱 냉담해졌다. 당시 정부는 경제단체가 제시한 153개의 규제개혁 요구안 중 114개 규제에 대한 개혁을 약속했다. 숫자상으로는 전체 요구안의 74.5%가 받아들여진 셈이다. 하지만 기업들은 '앙꼬 빠진 찐빵'이라며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는 작년 3월 첫 규제개혁장관회의를 열고 정부 규제 전반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올해로 3회째를 맞은 규제개혁장관회의에 대해 기업들의 평가는 냉담하다. 기업들이 원하는 핵심은 빠지고 늘 변죽만 울린다는 평가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규제개혁 사례를 발표·홍보하는 장으로 전락했다는 이야기마저 나온다.


당시 재계는 수도권 규제 완화, 고용 관련 규제 등 기업 활동과 직결되는 각종 핵심 규제완화 또는 개선을 요구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런 재계의 요구에 대해 다음에 논의하자며 미뤘다. 정부가 수용한 114개 규제의 절반 이상은 법 개정 없이 정부가 독자적으로 개선이 가능한 사안들이었다.

최근에 있었던 3차 규제개혁장관회의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이전보다 못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 두 번의 규제개혁장관회의를 통해 건의된 77건의 현장 건의 과제중 76건(98.7%)이 개선됐다고 밝혔다. 또 ‘손톱 밑 가시’ 규제 288건중 286건(99.3%)이 해결됐고 규제 기요틴 114건중 103건(90.3%)이 마무리됐다고 강조했다.

한 대기업 고위 관계자는 "3차 회의는 긴장감도 떨어진 데다 그동안 정부가 얼마나 잘했는지 강조하는 자리였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며 "정말 규제개혁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토로했다.

◇ 창조경제=과감한 규제 철폐

 

기업들은 정부의 규제에 대한 불만이 크다. 무엇보다도 정부가 규제 신설에는 적극 나서지만 규제 개선과 철페에는 소극적이라는 점이 기업들의 가장 큰 불만이다. 투자하려고 해도 촘촘하게 짜여진 규제 탓에 섣불리 나설 수 없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지난 2013년 기준 우리나라의 시장 규제 지수는 1.88이다. 시장 규제 지수는 OECD가 5년마다 작성한다. 국가 통제, 기업가 정신 저해, 거래 및 투자장벽의 3개 항목을 지수로 작성, 취합해 산출한다. 지수는 최저 0에서 최고 6까지다. 점수가 높을 수록 규제가 심하다는 의미다. 우리나라는 전체 OECD 분석 대상국 31개국 중 터키, 이스라엘, 멕시코에 이어 4위를 차지했다. OECD 평균치는 1.46이었다.

 

규제의 수도 점점 늘어가는 추세다. 지난 2013년 말 1만5260건이던 정부 규제건수는 작년 7월 1만5327건으로 늘었다. 규제 개선에 대한 기업들의 체감도도 미미하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중소기업 10곳 중 6곳(59.3%)은 '지난 2년간 정부의 규제 개선 노력에도 실제로 개선된 것은 없었다'고 답했다.

 

▲ 자료: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들은 정부가 규제 개혁과 철폐에 좀 더 과감히 나서야 한다고 주문한다. 사건이 발생하면 규제를 통해 해결하려 했던 과거의 규제만능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이다. 규제만능주의가 규제를 양산해왔고 정부는 오로지 규제를 통해 정부가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 채우기에만 급급하다는 것이 기업들의 시각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철강업체들이 불황으로 신음하고 있는 마당에 정부는 온실가스배출제를 도입한 것도 모자라 간접 배출에 대한 이중 규제까지 나서고 있다"며 "국제 협약이라며 전 세계 어느 나라도 시행하지 않는 간접 배출 규제까지 도입해 업계를 옭죄는 정부를 보고 있자면 화가 난다"고 말했다.

 

화학업계 관계자도 "제품 종류별로 위험성을 고려해 취급할 수 있는 수량을 허가하는 지정수량제의 경우 수십년째 그대로인 탓에 업체들은 주문이 늘어도 생산을 늘릴 수가 없다"며 "여기에 업체들은 화평법, 위험물안전관리법, 산업안전법, 소방법 등 기업 활동보다 규제 대응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한다"고 토로했다.

 

유환익 전경련 산업본부장은 “우리경제가 3%대의 저성장 국면을 극복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이고 강도 높은 규제 개혁이 필요하다"며 "정권의 의지가 아닌 시스템에 의한 지속적인 규제 개혁과 규제 비용 감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