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과 일자리> 총론
AI·기계공학 급속 발달로 일자리 대체 가시화
인간 고유 영역 모호…윤리·로봇세도 '핫이슈'
요즘 공공기관 가운데 정보통신기술(ICT) 면에서 '핫(hot)'한 곳은 우정사업본부다. 우본은 우편 업무 혁신을 위해 전기차와 드론,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4차산업혁명 시대의 대표적 기술들을 앞다퉈 도입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사람을 대신할 기술을 현장에 투입하고 있으나 일자리가 줄기는 커녕 되레 새로 생기고 있다는 점이다.
우본에 따르면 우편 업무 효율화를 위해 소형 전기차 1000대 도입을 앞두고 정비를 비롯해 운영·관리 담당 인력을 새로 뽑을 계획이다. 우본은 2020년까지 전기차를 총 1만대 보급한다는 계획이다. 관리 인력도 덩달아 늘어날 전망이다.
'비약적인 기술 발전=일자리 감소' 공식은 성립할까? 적어도 우본의 사례는 그렇지 않다. 사람과 기계가 서로 적대적이지 않고 공존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바람직해 보인다. 산업의 구조적 변화에서 비롯된 집배원 인력의 자연 감소분을 기계가 대체하고 이 과정에서 전기차 관리직이라는 전에 없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했기 때문이다.
◇ 단순 반복 업무 '치고 들어온' 로봇
하지만 지금의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 발달 속도를 감안하면 미래가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만약 우체국에 인공지능 두뇌를 탑재하고 자율주행 기능을 갖춘 휴머노이드 혹은 배달에 최적화한 로봇이 등장한다면 어떻게 될까.
웬만한 잔고장은 스스로 고치거나 운영 관리에 특화한 또 다른 로봇의 도움을 받기 때문에 사람의 힘이 필요 없다면 말이다. 우편 업무의 완전 자동화가 실현되는 것인데, 사람의 입지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현실화될 가능성이 없거나 먼 미래 얘기가 아니다. 미국의 대표적 물류운송 업체 UPS는 '문 앞에서 문 앞으로(Door to door)' 서비스를 위해 자율주행 트럭부터 드론, 또는 계단을 걸을 수 있는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인 아마존도 2012년에 7억7500만달러를 들여 물류로봇 기업 '키바(Kiva)'를 인수하고 로봇을 자체 생산하고 있다. 원래 키바는 아마존 물류 창고에서 활용해 온 운반 로봇인데, 이를 아예 사들여 자사는 물론 다른 회사의 물류업에 접목하려는 것이다.
국제로봇협회(IFR)에 따르면 로봇산업 가운데 물류서비스 분야가 유독 높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인간은 위험하고 반복적인 일을 하기 싫어하지만 로봇은 다르기 때문이다. 지겨운 것과 위험한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까닭에 반복적인 일은 인간보다 훨씬 잘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오는 2022년까지 많은 분야의 기초적인 일들은 로봇으로 대체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현재 세계 로봇시장도 급격한 성장 추세다. IFR에 따르면 제조업용 로봇은 오는 2020년까지 연평균 17%의 성장이 예상되고 있다. 서비스용 로봇은 2018년에서 2020년 사이 총 457억 달러 규모의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 '독학 로봇'까지…모호해진 인간영역
단순 노무직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요즘 부상하는 인공지능 기술의 핵심은 컴퓨터가 스스로 데이터를 학습하고 규칙을 찾는 방법으로 인간의 지능을 구현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사람이 직접 규칙을 프로그래밍해 컴퓨터에 알려주는 방식으로 인공지능을 구현했다. 반면 기계학습이라 불리는 머신러닝(machine learning)은 일일이 가르치지 않아도 혼자 깨친다. 구글 자회사 딥마인드가 개발한 '알파고 제로'는 기존 알파고와 달리 백지 상태에서 바둑의 기본 규칙만 사람에게 배우고 독학으로 '입신(入神)'의 경지에 올랐다.
산업계에서도 인공지능의 비약적인 발전이 노동 시장에 가져올 변화에 관심을 모으고 있다. 머신러닝과 빅데이터에 기반한 급진적인 기술적 성과에 힘입어 기계가 단순 업무 뿐만 아니라 사람 고유의 일이라 여겨졌던 일들까지 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학자들 사이에선 인공지능이 일자리에 미칠 영향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일자리의 미래 연구로 유명한 영국 옥스포드 대학의 칼 프레이와 마이클 오스본 교수는 향후 20년 내에 35%의 일자리가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에 의해 대체될 것이라고 봤다.
우리나라도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이 높은 일자리가 많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LG경제연구원의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노동 시장 일자리의 거의 절반인 43%가 자동화 고위험군으로 분류됐다.
전통적으로 화이트 칼라를 상징했던 경영 지원이나 사무 보조 성격의 업무들이 자동화에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공지능을 이용한 비즈니스 로봇이 서류 분석이나 보고서 작성, 메일 회신, 인사 채용 등을 자동화하기 때문이다.
◇ '뜨거운 감자'로 등장한 윤리·로봇세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이 급격히 발달하면서 일자리 뿐만 아니라 로봇의 윤리·도덕적 문제도 새롭게 대두되고 있다. 사람의 수고를 덜어주고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는 기술들이 인간과 어떤 관계를 맺을지 윤리적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4차산업혁명 시대에 접어들면서 조만간 인간처럼 생각하는 로봇이 출현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한 가운데 '로봇공존사회'에 대한 대비책을 세워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10월 핸슨 로보틱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소피아(Sophia)는 로봇 최초로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로부터 시민권을 부여 받았다. 이는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추진하는 미래 도시 '네옴(Neom)'의 홍보 차원의 이벤트이긴 하다.
하지만 세계 로봇시장이 최근 연평균 13% 높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고 군사와 의료, 교육,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 로봇이 투입됨에 따라 로봇의 인격이나 책임 소재 등 실질적인 이슈와 현안이 반영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자인간으로서 로봇이 그에 맞는 법적인 책임과 권리, 의무를 가지고 로봇 개발자와 연구자는 인간의 존엄과 사생활, 안전을 고려할 것을 담은 일종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로봇세 역시 뜨거운 감자다. 로봇이 사람의 일자리를 뺏는다면 로봇 소유자나 해당 기업에 일정의 세금을 부과, 이 재원으로 실직자를 교육하거나 지원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로봇에 세금을 물리면 산업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로봇은 인간과 달리 권리와 의무가 없기 때문에 세금을 거둘 수 없다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로봇이 사람의 일자리를 뺏을 것이냐부터 윤리의 문제, 로봇세 등 로봇을 둘러싼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4차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더욱 뜨거워질 전망이다. 사실 미래 사회에 대한 낙관과 비관 모두 기술 발전에 따른 여러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에 불과하다. 여러 가능성 가운데 순기능은 극대화하고 역기능은 사전에 예방하는 현실적 대응이 더 중요하다.
이에 비즈니스워치는 내달 28일 '로봇시대, 우리의 일자리는'이란 주제로 포럼을 개최한다. 로봇산업을 둘러싼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일자리와 일상의 변화상을 점검하는 자리다. <☞ '2018 비즈워치 포럼' 바로가기>
올해로 창간 5주년을 맞는 비즈니스워치는 그동안 연중 기획을 통해 우리 경제의 당면 과제를 짚어왔다. 올해는 '일자리'를 어젠더로 삼고 청년 취업 문제 등을 다룬 '좋은 일자리, 희망을 노래하자'와 직장인의 재취업 및 창업을 조명한 '인생 2막, 준비 또 준비하라' 시리즈를 통해 한국 경제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한 바 있다.
이번엔 '로봇과 일자리'라는 주제로 급속한 변화의 갈림길에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해법을 모색한다. 독자 여러분들의 성원과 많은 관심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