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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인성 미래에셋증권 디지털부문 대표 인터뷰
AI 활용 갈수록 확대…토큰증권은 실리적 규제
매일 엄청난 양의 거래와 천문학적인 규모의 돈이 오가는 금융투자업계에서 디지털이란 떼려야 뗄 수 없는 핵심 키워드다. 따라서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DT/DX)'이라는 새 시대의 패러다임은 금투업계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정작 금투업계에서 디지털 전환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쉽게 풀어 설명해 줄 수 있는 이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디지털 전환이라는 용어가 단순히 정보기술(IT) 분야에 국한된 게 아닌 업계 전반의 문화와 사고를 포괄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자기자본 기준 국내 최대 증권사이자 업계 디지털 전환 선두주자로 꼽히는 미래에셋증권 디지털부문을 총괄하는 안인성 대표는 디지털 전환의 개념과 방향성에 대한 투자자들과 업계 관계자들의 이해도를 높일 적임자 중 하나다.
최근 비즈워치와 만난 안 대표는 디지털 전환에 대해 한 마디로 '투자자에게 제공하는 서비스 방식을 시장 변화 트렌드에 맞게 바꿔나가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디지털 전환에서 가장 중요한 건 기술이 아니다"라면서 "이 기술을 어떤 목적과 가치로 만들어 내느냐에 따라 혁신적인 서비스가 될 수도 있고 평범한 서비스가 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안 대표는 SK커뮤니케이션즈와 현대카드·현대캐피탈 등에서 디지털·IT 분야 업무를 담당했다. 이후 NH투자증권으로 옮긴 뒤 디지털본부장을 맡아 모바일증권앱 '나무'의 성공을 이끌었다. 2년 전 미래에셋증권으로 이직한 후에는 디지털부문을 총괄하며 전사적인 디지털 전환 및 이와 관련한 신규 비즈니스 개발과 도입을 주도하고 있다.
"디지털 전환, 근본은 고객 중심 환경으로의 변화"
투자자 서비스 방식 변화를 토대로 한 디지털 전환은 사례로 이해하는 게 더 빠르다. 이는 디지털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투자 문턱이 낮아지고 그에 따라 다수 투자자가 시장에 참여하는 것에 기인한다.
안 대표는 "코로나19바이러스가 유행하기 전 과거의 금융투자업이 금융자산 1억원을 보유한 투자자 1만명을 확보하는 전략에 무게를 뒀다면 지금은 100만원의 자산을 지닌 100만명에 접근하는 방식을 그와 비슷하게, 또는 그 이상으로 중시한다"며 "결과적으로 이들 투자자의 총자산은 1조원으로 같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디지털 관점에서 상대적으로 적은 자산을 보유한 투자자라도 많은 숫자를 확보하는 게 가능하다면 그들에 맞는 투자상품이나 마케팅기법 개발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게 그의 견해다. 안 대표는 "기존에는 상위 20% 투자자에 주로 신경 썼다면 이제는 '롱테일(Long tail) 영역 투자자(소외된 80%의 투자자)'들을 기반으로 한 서비스 가치 창출에도 공을 들여야 한다"며 "투자자를 대하는 사고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모든 산업이 온라인 플랫폼을 중심으로 재구성되는 '플랫폼화'로 가는 상황에서 투자자 중심 사고방식을 바탕으로 한 금투업계의 디지털 전환 경쟁력 역시 디지털 기반 투자 플랫폼에서 곧바로 드러난다. 이 점을 잘 아는 안 대표 역시 미래에셋증권으로 자리를 옮기자마자 서둘러 추진한 일이 바로 모바일앱 통합이다. 고객들의 트래픽과 데이터를 모바일 플랫폼에 묶어놓고 이를 기반으로 오프라인 지점이나 고객센터 등의 각종 채널을 통합하고 재구성한 것이다.
그는 "모바일앱은 디지털 전략의 구심점이 돼야 한다"며 "앱 통합이란 단순히 물리적으로 여러 개의 앱을 합치는 것을 떠나 탄탄한 베이스를 만들고 그 위에 고객 데이터 등을 촘촘히 쌓아 영업 전초기지화하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이는 영업의 방식과 깊이를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 있게 할 것이라는 판단이다.
디지털 전환에 따른 금융투자회사들의 역할 변화에 대한 의견도 피력했다. 안 대표는 "디지털 전환 과정에선 정보의 비대칭성이 깨지고 칼자루가 투자자에게 넘어간다"며 "타 산업 대비 고객 데이터 활용도가 낮았던 금융투자업 또한 투자자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모으는 형태의 환경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지금의 디지털 환경에선 증권사가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통해 투자자의 다양한 투자 '시그널'을 조합해서 다음 의사결정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투자 포인트를 미리 짚어줘야 한다"며 "투자업의 본질은 투자자의 의사결정에 있는 만큼 개개인이 다양한 상황하에서 더 좋은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조력자 노릇을 잘하는 게 증권사의 역할"이라고 주장했다.
지금까지의 금투업 경쟁력은 상품 선별과 추천 역량 등에 주로 맞춰졌지만 앞으로는 상품을 넘어 차별적인 경험을 제공해주는 게 더 중요해질 것이라는 예상이다.
AI 활용폭 갈수록 확대…토큰증권 규제는 실리적으로
챗GPT가 불러온 인공지능(AI) 혁명은 금투업계의 디지털 전환 속도를 가속화하는 요인 중 하나다. 이 같은 AI 기술 진화의 물결은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같은 금투회사들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함과 동시에 많은 고민거리를 던진다.
일찌감치 AI 기술을 적용한 투자콘텐츠 개발에 나선 미래에셋증권은 지난 2월 해외뉴스 실시간 번역 서비스를 시작한 데 이어 4월에는 챗GPT를 활용해 종목 시황을 요약하는 서비스를 내놨다.
지금은 마이크로소프트(MS)가 선보인 AI 비서 '코파일럿'과 비슷한 형태의 'AI PB(프로젝트명)'의 론칭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 투자 환경에 적절한 상품을 추천하는 것은 물론이고 나와 비슷한 투자방식을 지닌 투자자 가운데 수익률이 좋은 사람들은 최근 어떤 종목을 사고팔았는지, 세금은 언제 어떻게 내면 좋은지를 알려주는 등 그야말로 투자 비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미래에셋증권은 이외에도 고도화된 AI 기술을 적용해 투자자 정보와 시장 데이터를 결합, 자사 프라이빗뱅커(PB)들에 투자자 상담 자료를 전달하는 내부 서비스를 곧 출시할 계획이다. 회사 측은 투자자 대상 서비스 개선은 물론 상대적으로 성과가 미흡한 PB들의 역량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안 대표는 이를 두고 영화 아이언맨 시리즈 주인공인 아이언맨의 'AI 조수' 자비스(Jarvis)의 역할과 흡사하다고 평했다.
AI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투자 편의성을 높이는 혁신적인 서비스 도입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설명 불가능한' AI 기술의 오남용은 투자자들의 '금쪽같은' 돈을 세심히 다뤄야 할 금투회사들에 오히려 '독'이 될 여지도 있다.
이와 관련해 그는 "금투회사 입장에서 신기술 도입에 앞서 명심해야 할 것은 신뢰와 전문성이 담보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라며 "초거대 AI는 기본적으로 클라우드를 바탕으로 이뤄져 있는 만큼 관련 기술 도입과 활용에 있어 고객 개인정보나 상품정보 보안 유출 가능성을 명확히 제어할 수 있느냐가 매우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의 말처럼 10년 후 어떤 변화가 있겠느냐보다 10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을 게 무엇이냐에 집중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며 "10년 뒤에도 바뀌지 않을 것은 금융투자업의 고객 가치"라고 역설했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투자자들이 원하는 더 많은 수익, 더 낮은 리스크 및 비용을 실현해주는 방안을 늘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자본시장의 미래 먹거리로 떠오른 토큰증권에 대해선 증권사 투자은행(IB) 비즈니스의 디지털 전환을 이끌 것이라고 확신했다. 토큰증권이 제도권 영역 내로 들어오면 그간 소수 기관이나 고액자산가를 대상으로 한 IB 비즈니스를 매스화(대중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코로나19 유행 전 500만명 수준이었던 주식투자자가 리테일 비즈니스의 디지털화에 힘입어 1500만명을 넘어선 것이 이를 방증한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토큰증권이 성공적으로 제도권에 안착하기 위한 요건으로는 우선 토큰증권 관련 법제화를, 그다음으로는 생태계 조성에 초점을 맞춘 규제 정리를 제언했다. 그러면서 토큰증권의 발행과 유통을 너무 엄격히 분리하는 건 오히려 투자자 참여 저하의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