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님이 무슨 차를 타셨죠? ‘또봇 X(엑스)’입니다.”
한찬희 영실업 대표이사가 18일 기자간담회에서 처음 꺼낸 말이다. “교황청의 요구로 또봇을 보내긴 했는데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고 농담을 던졌다.
영유아를 자식으로 둔 부모는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기아차 ‘쏘울’이 변신자동차 ‘또봇 X’라는 것을. 그리고 지난해 크리스마스 아이들에게 줄 또봇을 사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던 ‘또봇 대란’을 기억하고 있다. 그만큼 또봇이 아이와 부모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절대적이다.
영실업은 또봇으로 재기에 성공했고, 기아차는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만큼의 홍보 효과를 누렸다. 그런데 영실업의 한 임원은 기아차에 대해 “서운하다”며 아쉬움을 표현했다. 이유는 뭘까?
영실업이 또봇을 처음 만든 때는 2009년 11월이다. 이후 2010년 4월 애니메이션이 방송되면서, 국민 장난감으로 자리 잡았다. 레고를 제치고 대형마트 완구부문 판매 1위에 올랐다.
2010년 200억원대에 머물던 영실업 매출은 349억원(2011년), 542억원(2012년), 760억원(2013년) 매년 급증했다. 또봇의 누적 매출은 1000억원 가량으로 추산된다.
그런데도 영실업이 기아차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영실업이 기아차에 내는 라이센스 비용이다. 또봇 개발 당시 영실업은 기아차와 라이센스 협약을 맺었다. 쏘울, 스포티지R, 포르테 쿱 등 실제 차량을 또봇의 모델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또봇이 대박을 내면서, 기아차는 영유아라는 잠재적 고객까지 확보했다. 기아차는 단 한 푼도 투자하지 않고서도 어마어마한 홍보 효과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꼬박꼬박 영실업에게 라이센스료를 받고 있다.
한찬희 대표는 “기아차에게 최소한의 라이스센스비만 내고 있다”며 “모터쇼나 기아차의 해외 진출 등에 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아차는 최대한의 배려로 최소한의 라이센스 비용만 받고 있는 셈이다. 기아차에겐 '합법적'이고, '합리적'인 결정일 것이다. 그런데 아쉬움을 토로한 영실업의 임원의 말 속엔 기아차가 척박한 국내 완구업계의 발전을 위해 ‘통 큰 배려’를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섞여 있었다.
국내 완구업계에서는 또봇의 성공을 “기적같은 일”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국내 완구 시장은 레고 등 해외 브랜드가 꽉 잡고 있었다. 여기에 시장은 계속 쪼그라 들고 있다. 저출산으로 주요 고객(영유아)이 줄고 있고, 초등학교 입학한 아이들은 장난감을 버리고 게임기를 잡는다.
영실업도 독일의 플레이모빌, 일본의 반다이 등의 국내 유통을 맡으며 성장해오다, ‘그란세이져’ 등 국내 애니메이션 캐릭터 상품에 꾸준히 투자했지만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영세한 국내 완구업체들이 선택한 길은 ‘협업’이다. 하지만 중소기업 완구업체가 대기업들과 함께 ‘비즈니스’하는 길은 순탄치 않다.
이번에 출시한 ‘바이클론즈’는 자전거(BIKE)가 핵심 아이템이다. 주인공들이 자전거를 타고 외계인들과 싸운다. 영실업은 이번 ‘바이클론즈’ 출시와 동시에 대형 자전거 제조업체와 함께 자전거를 출시하려 했다. 하지만 일단 방송 시청률부터 보자는 요구탓에 자전거 출시는 내년 1월에나 가능하다. 그 마저도 확정된 것은 없는 상황이다.
내년을 목표로 극장에서 볼수 있는 영화판 또봇을 준비하고 있지만, 이 작업도 수월하지 않다. CJ나 롯데 등 대형 배급사에서 ‘무리한’ 투자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찬희 대표는 “영실업은 아주 작은 회사다. 글로벌 완구업체 중 40조원 이상이 대기업들이 많다. 우리만의 힘으로 경쟁하기 힘들다. 생존을 위한 협업을 해왔다. 라이센스 등은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영실업의 직원은 약 100명에 불과하다.
▲영실업은...
영실업은 1980년에 설립됐다. 80~90년대에 독일의 플레이모빌과 일본 반다이의 파워레인저 등의 국내 유통을 맡았다. 90년대에는 자체 캐릭터 ‘쥬쥬’, ‘콩순이’ 등을 내놨다. 2000년대 들어 ‘그란세이져’, ‘아이언키드’, ‘이레자이온’ 등 국내 애니메이션 캐릭터 상품에 꾸준히 투자했지만, 큰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
결국 영실업은 2007년 비전하이테크에 매각됐다. 코스닥 상장사였던 영실업은 비전하이테크 우회상장의 통로로 활용됐고, 이후 몇 차례 기업 사냥꾼의 손을 거친 뒤 2010년 상장폐지됐다.
한편 영실업 창립자 김상희 씨는 회사를 매각한 뒤 2008년, ‘영실업’이라는 또 다른 회사를 차렸다. 우회상장을 위한 껍데기(쉘)만 팔고, ‘영실업’이란 회사의 명맥은 그대로 유지한 셈이다. 2009년 출시한 또봇이 대박을 터트렸다. 2010년 200억원대 머물던 매출은 지난해 761억원을 기록했다. 올해는 매출 1000억원이 목표다.
이후 김상희 씨는 2012년 말 영실업을 해외 사모펀드(헤드랜드 캐피탈 파트너스)에 팔았다. 김 씨는 이후에도 고문으로, 매일 회사에 출근하고 있다. 영실업 관계자는 김 고문을 “또봇의 아버지”라고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