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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색깔 바꾸지 마라'…소주병 재활용 논란

  • 2020.09.07(월) 13:57

진로이즈백 인기…업계, '녹색-이형'병 맞교환 합의
환경단체 "시스템 붕괴" vs 하이트진로 "재사용률 높아"

소주병을 녹색으로 만들자고 했던 게 아니다. 이미 녹색병으로 만들어 팔던 제품들만 모아 병을 통일하자는 거였다. - 하이트진로 관계자

최근 소주 업계에서는 다소 복잡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바로 '소주병 재활용' 문제인데요. 그간 우리나라에서는 소주병 하면 녹색병을 떠올릴 정도로 일반화해 있습니다. 가장 잘 팔린다는 참이슬도 녹색, 2위 브랜드인 처음처럼도 녹색입니다. 지방 소주들도 대부분 녹색병으로 제품을 생산하고 있고요.

이 녹색병들은 라벨만 떼어내면 모두 똑같은 병입니다. 지난 2009년 소주 제조 업체들이 모여 녹색 소주병을 똑같이 만들어 사용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도 많은 제조사가 소주를 녹색병에 담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소주병을 더욱 원활하게 재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자원을 절약하고 환경은 지키자는 취지입니다.

하지만 최근 이 '녹색병 협약'이 깨졌다며 환경단체가 반발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얼마 전 소주 제조사들이 모여 공병 교환 가이드라인을 새로 만든 것을 지적한 건데요. 소주 업체들은 앞으로 녹색병이든 이형병(투명색 병 등)이든 1대 1로 맞교환하는 것에 합의했습니다.

그동안은 공병을 교환할 일이 많지 않았습니다. 각 사가 개별적으로 녹색 빈 병을 모아서 세척한 뒤 다시 쓰면 됐습니다. 다만 롯데주류의 청하 등 병의 색깔이나 모양이 다른 공병은 수수료(병당 10.5원)를 받고 해당 업체에 넘겨줬습니다. 이런 관행은 지금까지 큰 문제 없이 유지됐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지난해 4월 하이트진로가 출시한 '진로이즈백'이라는 제품이 큰 인기를 끌면서입니다. 진로이즈백은 출시 7개월 만에 1억 병 이상 팔리면서 주목받았는데요. 이 제품은 녹색병이 아닌 푸른빛의 투명한 병에 담겼습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진로이즈백이 잘 팔리다 보니 업체 간에 갈등이 촉발됐습니다. 기존의 녹색병이 아닌, 이형병에 담긴 진로이즈백의 공병을 선별해 회수하는 비용이 늘어나자 경쟁사가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해당 공병을 하이트진로 측에 돌려주지 않고 관련 가이드라인을 만들 것을 요구한 겁니다.

결국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에서 중재에 나서 이형병 처리에 대한 연구용역에 착수했고 그 결과가 지난 7월에 나왔습니다. 일단 녹색병이든 이형병이든 소주병을 1대 1로 맞교환할 수 있게 했습니다. 또 맞교환 후에 추가로 공병을 받아야 할 때는 병당 17.2원의 수수료를 주기로 했습니다. 예를 들어 하이트진로가 진로이즈백 공병을 추가로 받기 위해서는 경쟁사에 돈을 주고 가져가야 하는 겁니다.

그러자 환경단체가 반발했습니다. 환경운동연합 측은 진로이즈백과 같은 이형병이 지속 증가할 경우 공병 재사용 활성화에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소주병의 색과 모양이 제각각이면 재활용 시스템이 붕괴할 수 있고, 이 경우 제2의 쓰레기 대란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입니다.

하이트진로 측은 억울해하고 있습니다. 하이트진로는 그간 협약을 꾸준히 이행했고 지금도 잘 지키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하이트진로의 주력 소주 브랜드는 여전히 '참이슬'입니다. 참이슬은 녹색병을 쓰고 있습니다. 하이트진로는 이 참이슬 제품의 공병을 지금까지 열심히 재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협약을 여전히 준수하고 있다는 하이트진로의 주장도 전혀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이트진로는 또 과거 소주 업체들이 모여 합의한 것은 녹색병을 통일해 재사용하자는 것이지, 소주를 무조건 녹색병에 담자는 게 아니었다고 주장합니다. 이게 무슨 얘기일까요.

사실 과거에는 녹색병이 대세는 아니었습니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소주병은 투명한 것과 푸른빛을 띠는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다가 1994년 녹색병에 담긴 그린소주라는 제품이 엄청난 인기를 누리면서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그린소주가 인기를 끌자 경쟁사들이 줄줄이 소주를 녹색병에 담으면서 지금처럼 소주 하면 녹색병으로 통하는 시대가 된 겁니다.

이후 소주 업계 안팎에서는 시중에 녹색 소주병이 많으니 이를 공용화하는 건 어떻겠냐는 논의가 이뤄졌습니다. 당시로선 기발한 아이디어였습니다. 실제 자율협약까지 체결했습니다. 하이트진로는 이 협약의 내용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고 지적하는 겁니다. 이때 약속했던 것은 앞으로 소주는 무조건 녹색병에 담자는 게 아니었다는 주장입니다.

실제 당시 환경부가 내놓은 보도자료에서도 이를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보도자료 제목은 '소주병 공동 사용'이지만, 본문에서는 '녹색 소주병을 공동으로 제작·사용한다'고 돼 있습니다.

환경부 보도자료 캡처.

보도자료에는 '가장 많이 유통되는 녹색 소주병'이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당시에도 모든 제품이 녹색병은 아니었습니다. 보해양조는 자신들은 녹색병으로 제품을 만들고 있지 않아 이를 바꾸려면 설비 교체 비용이 많이 들어가고 기존 브랜드 가치도 떨어지게 된다고 반발했습니다. 결국 보해양조는 자율협약에 불참했습니다. 당시 환경부에 따르면 2007년 소주 출고량 기준으로 78%만 공용화병에 동참하게 됩니다. 나머지 22%는 이형병이었던 겁니다.

지금까지도 진로이즈백은 물론 청하, 한라산 등 이형병에 담긴 제품들이 있습니다. 한라산의 경우 이형병 자체를 '경쟁력'으로 내세우기도 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문제가 없다가 최근 논란이 벌어진 건 역시 진로이즈백이 잘 팔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라산이 전국적으로 불티나게 팔렸어도 같은 상황이 벌어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 언제든 새로운 히트상품이 나오면 벌어질 일이었다는 의미입니다.

지난 2009년 자율협약을 체결했을 때 환경부든 소주 업체들이든 이형병에 담긴 제품들까지 강압적으로 녹색병을 선택하게 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겠죠. 만약 음료수병을 하나로 통일한다면 제조 업체들은 물론 소비자들도 반발했을 겁니다. 와인병이 다 똑같다면 매력이 크게 떨어질 겁니다. 

소주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진로이즈백이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는 이 제품의 병 색깔이 신선하다는 점입니다. 과거 그린소주가 녹색병으로 소비자들에게 신선함을 줬다면, 이제 소비자들은 진로이즈백의 병 색깔에 매력을 느낀겁니다. 소주병이 앞으로도 계속 똑같다면 소주 자체의 경쟁력이 떨어질지도 모릅니다.

당시의 자율협약은 그때 상황에서는 소주병을 재활용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겁니다. 녹색병이 가장 많았던 시대였으니까요. 하지만 상황은 변하기 마련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간 맥주 하면 갈색 병이었는데, 최근에는 녹색 병 제품(테라)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습니다. 소주병을 강제로 녹색으로 정하지 못하는 이상, 상황에 맞춰 최선의 선택을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이트진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진로이즈백의 공병 회수율은 약 91%, 재사용률은 81% 수준입니다. 이는 지난 2017년 환경부에서 발표한 한국의 공병 재사용률(회수율 95%, 재사용률 85%)과 유사하다는 게 하이트진로 측의 설명입니다. 이형병도 이렇게 재활용을 잘하고 있는데 문제 될 게 없다는 것이 하이트진로의 입장입니다.

앞으로 소주병의 형태나 색깔은 더욱 다양해질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래도 공병을 회수하거나 재사용하는 게 번거로워지겠죠. 환경단체의 지적도 전혀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닙니다.

결국 제조 업체들의 자발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선 이번에 업체들이 모여 협약을 새로 마련했듯이 앞으로도 높은 공병 재사용률을 유지하기 위한 방안을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여기에 더해 환경 영향을 고려한 제품 생산 공정이나 재활용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겁니다. 큰 틀에서 '친환경 경영'을 적극적으로 추구한다면 이번처럼 병의 색깔을 두고 논쟁할 필요도 없어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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