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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보영의 페북사람들]독일의 서울꽃집 아저씨

  • 2020.11.27(금) 11:07

독일 서베를린의

샬롯텐 빌머스도어프구

조용하고 한적한 동네에

'서울꽃집'이란 한글 간판을 단

작은 꽃집이 있다.

독일 주소지는

Schillerstrasse 73, 10627 Berlin.

독일 이름은

'Blumen Seoul Form und Linie'

'서울꽃집 폼과 선'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꽃집 간판은

한글로만 쓰여 있다.

꽃집 가게 사장님은

손님이 간판을 못 읽어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정 읽고 싶으면

한글을 배우면 된다고.

'서울꽃집'의 주인은

김선만 플로리스트다.

39살이 되던 봄에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그리고 유학 11년째인

올해 2월 꽃집을 오픈했다.

"원래 대학에서는

기계공학을 전공했어요.

1996년 5월경 군대 제대 후

복학 전 부모님이 운영 중인

꽃집에서 일을 도와드리다

흥미를 느껴 부모님께

꽃일을 배우기 시작했죠.

저희 집안이 대대로

꽃일을 했던 덕분에

어릴 때부터 꽃이나 식물과

꽤 친근하기도 했고

뭔가 만드는 걸 좋아해서

이 길로 빠져든 것 같아요.

특히 1990년대 중반에

플러리스트 세계에선

유러피언 디자인이라고 해서

외국 선생님들을 초빙해

강연을 듣는 게 유행했어요.

유럽식 꽃 디자인을 접하면서

꽃에 더 빠져드는 계기가 됐죠."

"당시 외국 선생님들의

수업에 간간이 참여할 때였어요.

독일 국립 꽃예술전문학교인

바이엔슈테판의 교장 선생님의

수업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분이 저를 유심히 보시곤

독일 유학을 권유해 주셨어요.

바로 독일문화원으로 가서

독일어를 배우기 시작했죠.

문화원 선생님과 상담했는데

30대 초반의 늦은 나이에

무슨 유학을 가느냐고

독일에서 안 받아줄 거란

엄포까지 들어야 했죠.

이미 꽃집을 하고 있었기에

생활전선도 고민해야 했죠.

독일 유학이 막역한 꿈으로

기억 한쪽에서 잊히던 때

더 이상 현실에 안주하면

안 될 것 같아 모든 걸 정리하고

아무 계획 없이 실행에 옮겼어요.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게

39살 봄이었어요."

"학교 졸업 당시

포트폴리오 표지 사진이에요.

독일 교육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중학교에서 직업학교를 갈지

고등학교를 갈지 결정합니다.

취업을 위한 3년짜리 직업학교는

아우스빌둥이라고 해요.

일주일에 3일정도 현장에서

실기를 배우면서 일하고

하루나 이틀은 학교에서

이론 수업을 받는 형태죠.

직업학교를 잘 마치고

현장에서 1년 정도 경력을 쌓으면

마이스터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입학자격을 얻게 됩니다."

"독일어 공부를 마치고

그동안 꿈꿔왔던 바이엔슈테판에

조심스레 연락을 했어요.

그런데 입학 조건이 있었어요.

아우스빌둥 졸업 후 1년간

현장 경험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입학조차 어려운 상황이 된 거죠.

당시 제게 입학을 권유했던

교장 선생님은 이미 퇴직한 터라

상의할 곳조차 없었어요.

게다가 외국인 정원까지

꽉 차있던 탓에 무작정

교장의 결정을 기다려야 했죠.

다행히 한국에서 플로리스트로

10년 이상 일한 경력을 인정받아

불확실한 기다림 끝에

입학 허가를 받았습니다."

"학교생활은 쉽지 않았어요.

꽃이 사용되는 용도와 목적이

그렇게 다양한지 몰랐어요.

문화에 따라 종류와 용도가

다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그 나라의 고유한 문화도

배울 필요가 있었던 거죠.

문화의 벽과 마찬가지로

독일어라는 높은 언어 장벽으로

수업을 받는 게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필기시험을 볼 때면

교과 프린터를 토시 하나 안 빼고

통째로 외웠을 정도예요.

실기시험에서도 가끔

주제를 잘못 이해하기도 하고

동료들과 팀 과제에서도

혼자 엉뚱한 방향으로

작업하기도 했어요.(웃음)

하지만 독일의 교육은

뛰어난 우등생이 아닌

모두 함께 천천히 나가자는

목표를 가지고 있어서

제 부족함도 기다려줬어요.

선생님들과 동료들의 배려가

한국과는 사뭇 달리 다가왔죠.

그렇게 나름 좋은 점수로

무사히 학교 졸업해서

'국가 인증 꽃예술장식가'가 됐죠.

신분증에도 이름 앞에

마이스터란 타이틀이 붙어 있어요."

"학교를 졸업하고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있는

꽃집에 취직이 되었어요.

이벤트 장식을 많이 하는

나름 규모가 큰 꽃집인데

연말이면 비엔나의

호프부엌궁전(Hofburg palace)서

열리는 수많은 무도회 꽃장식을

도맡아 했을 정도였죠.

한국에선 상상도 못할 정도의

규모와 경험이었어요.

꽃을 이용해 그렇게 큰 장식을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

무엇보다 궁전에서 결혼하는

부호들의 결혼식 꽃장식에

플로리스트 수 십 명이 달라붙어

일하는 모습도 정말이지

너무 즐겁고 행복했어요.

그런데 대형 꽃장식이 끝나고 나면

피곤함과 함께 왠지 모를 공허함이

불현듯 밀려오더라고요.

누군가를 위해 의미 없는

노동만 하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정신적 피로함이 컸어요."

“유럽에선 꽃과 문화가

서로 연결되어 있어요.

일상에서 많은 꽃이 필요하고

많은 남녀노소가 꽃을 즐기죠.

단적인 예로 한 젊은 남자는

매주 자기 식탁을 위해

꽃을 한 송이씩 사 가요.

다른 누군가를 위한 꽃이 아닌

자신의 풍요로운 감성을 위해

한 송이 꽃을 삽니다.

그게 무척 감동적이었어요.

꽃을 대하는 태도도 달랐어요.

꽃에 대한 애정은 물론

꽃이 삶에 일부가 되어

늘 가까이에서 느끼려는

삶에서 큰 깨달음을 얻었죠.

한국도 꽃에 대한 인식 변화가

있었으면 하는 순간이었죠."

"첫 출근 때였어요.

꽃집에 낯이 많이 익은

동네 아줌마가 들어왔어요.

이웃집 아줌마인 줄 알았죠.

꾸밈없는 차림의

독일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수수한 차림의 중년 여성이었죠.

나중에 동료가 알려줬는데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였어요.

경호원도 없이 꽃집 안에

혼자 들어와서 정말 놀랐어요.

낡은 지갑에서 돈을 꺼내

직접 꽃값을 내고 가셨어요.

총리가 되기 전부터

단골손님이셨다고 해요.

그 뒤로 몇 번 더 오셨는데

용기를 내 가벼운 인사도 하고

함께 사진도 찍었어요.

직접 써준 사인도 받았어요.

대대로 물려줄 제 가보입니다."

"플로리스트는 무엇보다

근면하고 성실해야 해요.

꽃과 식물들의 이름이

사람 수만큼 많아요.

일단 그걸 다 외워야 해요.

새벽에 일어나는 건 기본이고

일주일에 몇 번씩 꽃을 사고

물도 주기적으로 줘야 하죠.

가게를 깨끗하게 청소하고

창문도 닦아줘야 합니다.

직원으로 있을 땐

월급도 쥐꼬리만큼 작아요.

물론 꽃집 주인이 돼도

유명하거나 큰 꽃집이 아니면

별만 다를 건 없지요.

하지만 꽃다발을 선물하는

이들의 따뜻한 마음에서

받는 이들의 환한 표정에서

큰 기쁨을 느낍니다.

플로리스트만이

느낄 수 있는 행복입니다.

이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지금까지 묵묵히 바라봐 준

아내에게도 너무 고마워요."

"어릴 적 저에게 꽃은

귀찮게 하는 존재였어요.

부모님 꽃집에서 만난 꽃들은

심부름의 대상이었거든요.

그래서 그다지 꽃을

좋아하지 않았던 거 같아요.

지금의 꽃은 다릅니다.

제 삶의 한 부분이 되었어요.

가끔은 꽃에게 말도 합니다.

'자르고 부러뜨려 미안하다'고.

서로 잘 해보자라고도 하죠.

꽃다발을 만들고 장식을 할 때

꽃에게 부탁하기도 해요.

'예쁘게 피어줘'

'장식 안에서 아름답게 뽐내줘'

꽃은 이제 저와 함께 하는

삶의 반려자입니다."

"독일도 코로나19 탓에

길거리에 사람이 적어요.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외출을 자제하는 탓에

자주 오시지는 못 하지만

꼬박꼬박 꽃을 사러 옵니다.

진정 꽃과 함께 하는 삶이죠."

국내에서도 코로나19가

재차 크게 확산하면서

모임과 만남이 취소되고

분위기도 움츠러들고 있다.

오늘 누군가 힘들어할 사람이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다면

잠시 짬을 내 꽃가게에 들러

화사한 꽃 한다발 사서

마음을 전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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