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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보영의 페북사람들]땅이 제 캔버스죠

  • 2021.01.29(금) 13:16

박지혜 아티스트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크레이지 제이제이'란 예명으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서 세라믹디자인을 전공했고

일본 동경 예술대학원에서

파인아트(순수미술)로

석사와 박사를 받았다.

"제 미국 스튜디오입니다.

가끔 팔뚝만한 쥐들이 나와

처음에는 많이 놀랐는데

지금은 함께 지내면서

즐겁게 작업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오일 페인팅이 좋아

그쪽으로 학교를 준비했어요.

보통 페인팅에서 조각으로 가는데

저는 반대의 길을 걸었죠.

석사 과정을 거치면서

작업실에 있는 시간보다

개인적으로 밖에서

작품활동을 하는 시간이

더 많아지게 되었어요.

페인팅보다 더 재미있는 걸

새롭게 발견하게 된 거죠.

페인팅 역시 밖으로 나가

여러 사물들과 직접

교류하는 작업이 더 좋았어요."

"금전적으로 운이 좋았어요.

일본재단에서 등록금 생활비를

4년간 장학금으로 지원받아

경제적으로 큰 걱정 없이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었죠.

재료비는 만만치 않더라고요.

그래서 돈이 안 드는 방법을

이것저것 찾았어요.

공사장에서 쓰는 쇠파이프

수도관 파이프 등을 사거나

전철 공사장에 직접 가서

철근 콘크리트를 공짜로 받아

트럭으로 싣고 오면서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어요.

이 재료를 한 공간에

다른 환경으로 설치할 수 있다는

그 생각만으로도 너무 기뻤죠."

“그렇게 2-3년 동안

건축자재와 LED, 재활용 TV 등을

모으러 다니면서 나머지 시간은

야외작업에 빠져 있었어요.

제게 건물 안에서 작업은

너무 답답하기만 했어요.

일본 후쿠오카에 있는

빈집과 외딴섬 등 돌면서

현장에서 설치작업을 했어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열정적으로 몰입했어요.

그냥 몸이 움직이는 거죠.

그러다 보니 건강에

하나둘씩 문제가 생겼죠.

한 번은 용접을 하다가

마스크를 제대로 쓰지 않아

눈이 망가진 적이 있어요.

거의 반년간 통증을 안고 살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한국으로 돌아와 치료를 했죠."

"사실 박사까지 공부할

마음은 전혀 없었어요.

아티스트면 그냥 아티스트지

박사가 무슨 의미가 있나

생각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석사 동기 중 한 명이

박사 과정을 하게 되면

학교 스튜디오를 공짜로

사용할 수 있다는 말에

열심히 공부해서 붙었어요.

2016년 교환유학시절에

이스라엘에 가고 싶었는데

전쟁을 하고 있는 와중이어서

일본 정부가 막았어요.

2017년엔 독일 바이마르로

갔는데 적응을 못했어요.

사실 독일로 간 목적은

땅을 사기 위해서였어요.

수익을 위한 부동산이 아니라

작업을 위한 공간이었죠.

스튜디오가 아닌 넓은 땅을

캔버스 삼아 작품활동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어요.

독일로 가기 전에도

일본에서 작은 땅을 샀어요."

"미술관이나 전시관 등에서

여러 작품 전시를 하다 보니

설치 후 퇴출되지 않는 작품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내가 소유한 땅이라면

마음대로 설치 보관하고

퇴출도 가능하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시작하게 된 게

바로 'Canvas Land'입니다.

2016년부터 시작했는데

현재 일본과 미국에서

제가 직접 땅을 사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어요."

"물론 여러 제약이 있어요.

밖에서 작품활동을 하게 되면

자연환경이 변함에 따라

작품도 변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걸 그대로 둘지

아니면 다시 손을 볼지

생각해야 할 문제가 많아요.

하지만 제 포인트는

지구 밖 우주에서 봤을 때

박지혜의 작품이 곳곳에

위치하고 있다는 겁니다.

마치 화석과도 같은 것이죠.

자연환경이 변함에 따라

그 위에 있는 작품까지

자연스럽게 변하겠지만

제가 그 캔버스 위에서

작품활동을 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고 남아있는 거죠.

보이지 않는 화석처럼."

"지금은 미국 캘리포니아

바스토(Barstow)에서 작업 중이죠.

2017년 겨울 미국을 방문해

다양하게 리서치를 한 후

캔버스를 위한 땅

2에이커(2600평)를 샀어요.

축구장 크기 정도 됩니다.

일본서 박사를 하고 있을 때라

미국과 일본을 오가면서

띄엄띄엄 작업을 했어요.

여행 비자밖에 없어서

오래 머물 수도 없었죠.

작업을 하는 와중에는

LA 패션디스트릭에 있는

큰 스튜디오를 얻었어요.

3층 공장 건물을 빌려

3000파운드나 되는

철판을 옮겨야 했어요.

넓고 싼 곳을 찾다 보니

팔뚝만 한 쥐들과 함께

몇 달을 동고동락했죠."

"그곳에서 용접한 작품을

캔버스인 바스토까지 옮기려면

보통 두 시간 반 정도 걸리는데

LA는 교통 체증이 심한 탓에

왔다갔다하면 하루가 다 가요.

그렇게 2주일에 한 번씩

작업장과 캔버스를 오가면서

그렇게 작업을 했죠.

제 장점이자 단점이

뚜렷한 계획도 없이

본능적으로 행동하는 겁니다.

열심히 만들고 옮겨놓은 작품을

도난당하는 일도 생겼어요.

그냥 허허벌판만 보이는데

그 당시 느낀 허탈감은

지금도 잊히지 않아요."

"저는 완성된 비주얼이 아닌

그 작품을 만들기 전에

캔버스 땅을 잘 고르고

다양하게 작업하는 과정

자체에 더 큰 의미를 둬요.

캔버스 위 작품은

언제나 변하기 마련이죠.

결코 영원할 수 없어요.

우리의 삶이 그렇듯이

제 뜻대로 되진 않아요.

언제나 변한다는 바로

그 사실만이 진실인 거죠.

여러 캔버스 땅 중에

굳이 그 위치, 그 모래 상태

그 경사를 가진 땅을

캔버스로 골랐다는 사실이

제게는 중요합니다.

마치 캔버스의 사이즈

즉 두껍거나 얇은 천

둥글거나 각진 프레임을

작품을 하기 전에 고르듯

저도 작품을 위해

그 캔버스를 선택한 사실은

언제까지나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다는 거죠.

제가 작품을 창조하거나

부수는 건 제 자유입니다.

무언가를 소유하면서

내 삶의 일부로 삼는 것은

강력한 메시지가 있어요."

"아티스트로서 나 이외에

더 많은 사람과 작품을

공유하는 과정 그 자체가

저에겐 꿈을 이뤄가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나 혼자만의 작품이나

특정인의 소유물이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사실이

아티스트에겐 그만큼

의미가 크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하나의 결과로써

완성된 작품이 아닌

캔버스 땅에서 작품으로

완성되어 가는 과정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또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그 경험들이 쌓이고 쌓여

조금씩 나만의 꿈을

이뤄간다고 생각해요."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더 나아가 저를 가두고 있는

그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큰 작품을 하고 싶어요.

언어와 문화, 생활 등의 변수가

한계로 작용할 수 있겠지만

내가 가진 능력 이상으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내 안의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 있는 힘은

스스로의 믿음에서 나온다.

분명 힘든 시기를 걷고 있지만

막다른 길이 아니라

터널이란 희망으로

모두 잘 견뎌내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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