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인사이드 스토리]하이트진로가 '테라 캔 5형제' 만든 까닭

  • 2022.02.10(목) 06:50

라인업 총 5개로 확장…라이벌 오비맥주 견제
가정용 시장 공략 강화 명분 속 기존 할인 종료
싸게·많이 판다…가격 변동 대응 유연성 확보도

/그래픽=비즈니스워치

하이트진로가 '테라 캔 5형제'를 완성했습니다. 2개 용량을 추가했는데요. 기존 250·355·500㎖ 제품군에 400㎖와 463㎖를 더했습니다. 일단 눈에 띄는 점은 가격입니다. 이번에 출시된 제품들의 ㎖당 단가는 기존 제품 대비 쌉니다. 400㎖ 제품의 ㎖당 단가는 355㎖ 대비 14.5% 낮습니다. 463㎖는 355㎖ 대비 ㎖당 단가가 18.5% 저렴하고요. 용량은 커졌는데 가격은 싸진 셈입니다. 그야말로 ‘파격적’인 가격이죠.

어떻게 이런 가격 역전 현상이 가능했을까요. 간단합니다. 싸게, 많이 팔려는 전략입니다. 하이트진로는 새 용량 캔 제품을 8개 번들로 판매합니다. 유통 채널도 대형마트와 슈퍼마켓 등 한 번에 많이 구매하는 이들이 많은 곳으로 정했습니다. 캔당 마진을 낮추더라도 판매량을 늘리겠다는 구상이죠. 흔히 알려져 있는 '규모의 경제' 효과를 얻으려는 겁니다. 나아가 더 많이 팔아 시장 점유율을 높이겠다는 계산까지 깔려 있겠죠.

하이트진로는 테라 신제품을 소비자 니즈에 맞춰 기획했다고 밝힙니다. 용량과 가격을 중시하는 트렌드에 착안해 6개월간 소비자 조사를 진행했다는데요. 이를 통해 소비자가 가장 좋아하는 용량을 내놓아 가정용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설명이죠. 그럴 듯 하지만 그대로 납득하긴 어렵습니다. 캔 용량을 늘리면 새로운 캔 제조 공정을 도입해야 합니다. 당연히 조금이라도 제조 원가가 오를 거고요. 결국 '다른 의도'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 테라 신제품에 담긴 의도는 뭘까요. 바로 '벤치마킹'입니다. 맥주의 캔 용량을 다양하게 하고 번들로 파는 전략은 새롭지 않습니다. 오비맥주가 지난해 비슷한 움직임을 보였었죠. 오비맥주는 지난해 4월 캔 맥주 '실속팩'을 출시했습니다. 375㎖, 473㎖ 제품 8개를 번들로 팔았죠. 이 제품들의 ㎖당 가격 역시 기존 카스 대비 저렴했습니다. 또 오비맥주는 출시 배경을 "가정용 시장 공략"이라고 밝혔었죠. 하이트진로와 완전히 같은 대답입니다.

하이트진로는 테라에 2개의 새로운 용량을 추가했습니다. /사진=하이트진로

당시 하이트진로는 할인으로 맞불을 놨습니다. '테라X스마일리' 한정판을 내놓고, 355㎖와 500㎖ 캔을 각각 기존 제품 대비 14.5%, 15.9% 싸게 팔았습니다. 7월에는 기존 테라 500㎖의 가격을 15.9% 내렸고요. 불가피한 선택이었습니다. 주류업체의 최대 고객은 도매상입니다. 이들은 싼 제품을 대량으로 사들인 후, 가격이 정상화된 다음 시장에 풀어 이윤을 챙깁니다. 결국 한 회사가 싸게 팔면 다른 쪽도 같은 방식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구조죠.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당시 하이트진로의 할인 전략은 효과적이었습니다. 오비맥주의 공세를 막아냈죠. 지난해 테라의 가정용 시장 판매량은 전년 대비 8% 가량 늘었습니다. 코로나19에 따른 유흥 시장 위축에 타격을 입었지만 가정용 시장에서는 선방한 셈입니다. 반년이나 지나서 굳이 오비맥주와 비슷한 결정을 내릴 이유가 없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이트진로가 뒤늦게 오비맥주와 같은 길을 가는 이유는 뭘까요.

일단은 가격인상 압력이 가장 큰 이유로 보입니다. 최근 알루미늄 가격이 폭등하고 있습니다. 지난 8일 런던금속거래소 기준 국제 알루미늄 선물 가격은 톤당 3233달러였습니다. 사상 최고가인 3380.15달러에 근접했죠. 알루미늄 주요 생산지인 중국 바이써가 코로나19로 봉쇄된 영향입니다. 아울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군사 충돌 가능성 등 알루미늄 생산에 필요한 에너지 수급 불안 우려도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따라 캔 원가가 오를 겁니다.

여기에 오는 4월에는 맥주에 1ℓ에 붙는 세금까지 20.8원 오릅니다. 과거 주류에는 제조단가 기준 ‘종가세’가 적용됐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출고량 기준 ‘종량세’가 적용됐죠. 때문에 소규모 양조장이 만들어 제조 단가가 높은 수제맥주가 혜택을 봤습니다. 하지만 종가세가 적용되는 소주와의 형평성 논란도 있었죠. 이에 정부는 종량세에 소비자물가상승률을 반영하기로 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물가가 폭등하면서, 세금이 크게 오르게 된 거죠.

테라는 지난해 코로나19 악재에도 '선방'했습니다. /그래픽=유상연 기자 prtsy201@

이것이 하이트진로가 기존 전략을 유지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원가가 너무 오른 만큼 테라의 가격을 더 내리기는 어렵습니다. 실제로 하이트진로는 지난 3일 테라 500㎖제품의 프로모션을 종료했죠. 오비맥주는 여전히 실속팩을 팔고 있고요. 하이트진로에게 새로운 카드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맥주 시장은 안정적입니다. 선택할 수 있는 '혁신적 방법'은 많지 않습니다. 따라서 오비맥주와 같은 전략을 택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입니다.

업계 일각에서는 '더 큰 그림'에 대한 시나리오도 나옵니다. 이번에 출시된 테라나, 카스 실속팩의 용량은 하나같이 애매합니다. 기존 제품과 한 모금 정도만 차이날 뿐이죠. 이 제품들을 공격적으로 마케팅한다면 기존 제품을 충분히 대체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먼 훗날 가격을 올리더라도 반발을 줄일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500㎖를 마시던 소비자들이 조금이나마 싼 463㎖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을 테니까요. 어차피 용량에 큰 차이도 없으니 말입니다.

다만 이런 가설이 짧은 기간 내 현실이 되진 않을 겁니다. 소비자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특히 맥주는 '서민 제품'입니다. 가격에 대한 관심도 높습니다. 오랫동안 355㎖와 500㎖가 표준 용량이었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 표준이 바뀐다면 아주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겁니다. 이미 많은 제품들이 이런 식으로 가격 대비 용량을 줄여 오기도 했죠.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의 마케팅 경쟁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요. 하이트진로의 뜻대로 테라 캔 5형제가 높이 비상할지 주목됩니다.  

naver daum
SNS 로그인
naver
facebook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