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제품이 쏟아지는 소비의 시대. 뭐부터 만나볼지 고민되시죠. [슬기로운 소비생활]이 신제품의 홍수 속에서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 만한 제품들을 직접 만나보고 가감없는 평가로 소비생활 가이드를 자처합니다. 아직 제품을 만나보기 전이시라면 [슬소생] '추천'을 참고 삼아 '슬기로운 소비생활' 하세요.[편집자]
*본 리뷰는 기자가 제품을 직접 구매해 시식한 후 작성했습니다. 기자의 취향에 따른 주관적인 의견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달라야 산다
바람에서 찬 기운이 가시는 3월이 되면 라면업계는 바빠진다. 여름 성수기를 겨냥한 비빔면 신제품을 선보이는 시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비빔면 시장은 참 보람없는 시장이다. 신제품이 나오면 서로 한 번쯤 맛보는 다른 시장과 달리 웬만큼 입소문이 나지 않으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찾는 제품만 찾는 시장이다.
실제로 현재 비빔면 시장은 팔도의 팔도비빔면과 농심 배홍동의 2파전이다. 나머지 제품들은 그 사이에서 혹시모를 반등을 노리거나, 틈새 시장을 차지한 것에 만족하는 모양새다. 그래서 비빔면은 단종도 참 빠르다. 한두 해를 두드려보고 아니다 싶으면 바로 단종 수순이다.
그런 만큼 또 신제품이 매년 나오는 시장이 비빔면 시장이다. 작년의 실패를 바로미터 삼아 업그레이드된 신제품을 들고 나온다. 4전 5기는 물론 6전 7기, 7전 8기도 드물지 않다. 그러다가 결국 '대박'을 낸 게 농심 배홍동이다. 다른 제조사들도 '제 2의 배홍동'을 꿈꾸며 3월이면 신제품 비빔면을 낸다.
올해 비빔면 신제품들의 특징은 '차별화'다. 올해 신제품을 내놓지 않을 예정인 삼양식품과 하림산업을 뺀 세 곳이 신제품 비빔면을 출시했다. 기존 비빔면 시장에서 부딪히기보다는 프리미엄 시장을 노리거나 틈새 시장을 겨냥한 제품이 대부분이다.
업계 1위 팔도의 경우 '팔도비빔면 더 블루'를 내놨다.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듯 팔도비빔면의 프리미엄 버전이다. 배홍동 시리즈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농심은 올해에도 배홍동의 새로운 배리에이션을 내놨다.
앞서 배홍동 쫄쫄면, 배홍동 칼빔면 등 색다른 제품을 내놔 좋은 반응을 얻었던 배홍동의 새 옷은 '막국수'다. 오뚜기의 경우 '밀면'을 콘셉트로 잡은 '진밀면'을 출시했다. 올해 비빔면 시장에선 어떤 제품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슬기로운 소비 생활]에서 알아보기로 했다.
가성비는 잊어라
가장 먼저 맛본 건 팔도의 신제품 '팔도비빔면 더 블루'다. 팔도는 2024년 '뜨빔면' 트렌드에 맞춘 간장·후추 베이스의 '팔도비빔면 2'를 내놔 좋은 반응을 얻었다. 지난해엔 기존 팔도비빔면의 비빔장을 '제로 슈거'로 바꾼 '팔도비빔면 제로 슈거'를 선보였다. 1등 타이틀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트렌드를 잡기 위해 노력했다는 의미다.
올해 팔도가 포착한 트렌드는 '프리미엄'이다. 웬만한 신제품 라면들은 봉지당 1100~1400원대에 출시된다. 대놓고 '프리미엄' 타이틀을 갖고 가는 제품들은 봉지당 가격이 2000원에 육박한다. 한 봉지에 800원 안팎인 팔도비빔면에 만족하지 못하는 소비자가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팔도의 프리미엄 전략은 식감이다. 기존 팔도비빔면은 '면발이 약하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면이 가늘고 탄력이 없다는 지적이었다. '더블루'의 면은 기존보다 확실히 굵은 '중면'이다. 칼국수면에 가까울 정도로 두툼하고 씹는 맛도 살아있다.
거의 '완벽'에 가까웠던 소스에도 터치를 더했다. 8가지 과채 원물을 배합하고 꽈리고추를 넣어 매운맛을 더했다는 설명이다. 프리미엄 제품인 만큼 토핑도 기존의 김에 마늘과 쪽파를 더했다.
실제로 맛을 보면 팔도의 의도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한 입을 넣으면 가장 먼저 파 향이 진하게 느껴져 기존 비빔면들과 다른 인상을 준다. 굵은 면은 씹힘이 인상적이고 소스는 단 맛과 신 맛, 매운 맛의 밸런스가 좋다. 괜히 '비빔면 명가'가 아니다.
문제는 언제나 '근본'이다. 개당 1200원 안팎의 팔도비빔면 더 블루는 개당 800원짜리 팔도비빔면과의 비교를 피할 수 없다. 50% 비싼 '더 블루'가 50% 더 맛있냐고 물으면 대답이 궁해진다. 하지만 어차피 '프리미엄' 제품에서 가성비를 찾는 건 무의미하다. 10%의 맛을 더하기 위해 2배의 가격을 지불하는 게 프리미엄이다. 그리고 '더 블루'의 면과 파 토핑은 10% 이상의 가치가 있다.

갈 길 잃은 맛
배홍동은 모범적인 도전자다. 다른 라면 제조사들이 팔도비빔면을 따라할 때 배홍동은 전혀 다른 결의 비빔면으로 시장에 안착했다. 2위 자리를 굳힌 후엔 '도전'에 나섰다. 쫄면을 지향한 '배홍동 쫄쫄면', 김치 칼국수를 모티브로 삼은 '배홍동 칼빔면'은 배홍동과 통일성을 가지면서도 또 다른 결의 맛을 냈다. 배홍동에서 갈아타는 게 아닌, 배홍동과 쫄쫄면, 칼빔면을 모두 구비할 가치가 있었다.
올해 배홍동의 도전은 '막국수'다. 국산 메밀을 사용한 건면을 활용해 메밀 막국수 풍의 비빔면을 선보였다. 배홍동 특유의 새콤달콤한 비빔장에 고소한 들기름을 더한 제품이다. 최근 몇 년간 외식 면 시장에서 들기름 막국수의 인기가 어마어마했음을 고려하면 당연한 선택이다.
메밀을 넣은 건면은 이 제품의 장점이다. 비빔장에 비벼 먹어도 메밀의 풍미가 느껴진다. 건면인 만큼 칼로리가 낮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배홍동 막국수 1봉지의 열량은 435㎉로, 기존 배홍동의 585㎉ 보다 150㎉ 낮다. 밥 반 공기에 달하는 열량이다. 깨알같은 메밀 토핑도 바삭바삭하니 씹는 재미가 있다.
문제는 들기름이다. 들기름이 들어가는 순간 배홍동의 새콤달콤한 소스의 맛이 싹 가려진다. 처음엔 매콤하고 칼칼한 배홍동 특유의 맛이 느껴지는가 싶지만 2~3번 젓가락질을 하다 보면 진한 들기름향이 압도한다. 배홍동에 들기름을 추가했다기보단 들기름 막국수에 배홍동 소스를 한 스푼 얹은 느낌이랄까. 주객이 전도됐다는 느낌이 가시지 않는다. 물론 들기름 막국수에 가까운 이 맛을 선호할 소비자도 있다. 하지만 시중에는 이미 '들기름 막국수'도 있다. 지금까지 나온 배홍동 시리즈 중 유일하게 재구매하지 않을 것 같은 제품이다.

오뚜기의 '지역 사랑'
오뚜기는 최근 몇 년간 꾸준히 가정간편식에 지역의 향토 요리를 결합하는 시도를 해 왔다. 2024년 '지역식 국물요리'로 시작해 지난해엔 '로컬대표 국물요리'로 이름을 바꾸며 종로 도가니탕, 대구 육개장, 청주 짜글이 등 다양한 지역 요리를 선보여 왔다.
올해 비빔면 신제품을 '부산식 밀면'으로 정한 것도 우연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바로 '부산 현지 스타일'을 내세운 '진밀면'이다. 진밀면의 가장 큰 특징은 '육수 분말'이다. 양념장 소스와 건더기 소스에 더해 밀면집에서 제공하는 '육수'를 분말스프로 구현했다.
비빔면을 끓인 뒤 분말육수를 차가운 물에 풀어 면에 부으면 '냉밀면'으로 즐길 수 있고 뜨거운 물에 풀면 따뜻한 육수를 마시며 차가운 비빔면을 맛볼 수 있다. 앞서 어묵국물 분말 등을 제공한 한정판 비빔면은 있었지만 진밀면처럼 2가지 방식으로 즐길 수 있는 밀면 타입 제품은 처음이다. 부산 밀면은 면 세계에서 확고한 자기 자리가 있는 인기 메뉴이기도 하다. 세 제품 중 진밀면을 가장 기대한 이유다.
비빔면 자체는 다소 평범하다. 진비빔면이 타마린드의 새콤한 맛과 향이 진한 개성있는 비빔면이었던 반면 진밀면은 '기본 비빔면'이라는 느낌이다. 눈을 감고 먹으면 이게 신제품인지 예전에 나왔던 어느 비빔면을 무작위로 가져온건지 알기 어려울 정도다.
육수'를 강조하기 위해 비빔면 자체는 무난한 맛으로 베이스를 잡았을까. 실제로 여기에 따뜻한 온육수가 함께하면 가산점이 붙는다. 짭쪼롬하고 구수한 온육수가 매콤새콤한 면과 꽤 잘 어울린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성공 공식'이다.
그럼 차가운 물에 탄 '냉밀면'도 만족스러울까. 안타깝게도 '이건 아니'다. 차가운 물에 분말스프가 잘 녹지 않고 뭉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치자. 겨우 녹인 냉육수를 비빔면에 붓고 한 입 먹는 순간 '실패'를 직감했다. 면의 맛도, 육수의 맛도 느껴지지 않는, '물에 씻은 비빔면' 맛이다. 혹시나 싶어 레시피를 다시 살펴봤다. 육수에 물을 너무 많이 부었나? 싶어서다. 아니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육수를 부어 먹게 돼 있는 밀면 전문점은 다 먹은 후에도 양념이 그릇에 넉넉히 남을 만큼 많다. 이 남는 양념이 육수와 섞이며 간이 맞는다. 하지만 봉지 비빔면은 면과 소스의 비율이 딱 1대 1이다. 여기에 육수를 부으면 소스가 묽어질 수밖에 없다.
온육수를 곁들이는 방식으로만 먹으면 괜찮지 않을까. 그럼 이제 기존에 나왔던 '어묵국물 스프'같은 시즌 한정판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기 힘들다. 비빔면 자체에 별 특색이 없어서다. 그냥 진비빔면에 '육수 스프'를 추가해 주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