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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의 Pick]"김치전의 낯선 변신"…익숙함을 비튼 모던 한식

  • 2026.06.18(목) 14:00

김성호 파크 하얏트 서울 부총주방장 인터뷰
대중 한식의 편견을 깨는 반전 비주얼 요리
양식 기법으로 한식의 '맛의 레이어'를 쌓다
글로벌 감각으로 풀어낸 파크 하얏트의 품격

김성호 파크 하얏트 서울 부총주방장./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셰프의 요리는 종종 예술작품에 비유되곤 합니다. 셰프는 접시라는 캔버스 위에 자신만의 철학과 재료에 대한 경외심을 담아 수만 번의 칼질로 하나의 작품을 만듭니다. 예술가들의 그것과 견주어도 전혀 밀리지 않죠. [셰프의 Pick]은 그들의 이런 노력을 담아냅니다. 국내 호텔 셰프들의 이야기와 요리에 담긴 철학 한 조각을 음미해보려는 시도입니다. 최고의 셰프들이 전하는 화려하고 소박한 이야기를 맛 보실 준비가 되셨나요? 이제 출발합니다. [편집자]

최근 국내 호텔 미식(F&B) 트렌드의 중심에는 '경험의 가치'가 자리 잡고 있다. 특히 SNS를 통해 미식을 접하는 고객들의 눈높이가 나날이 높아지면서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넘어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순간'을 제공하는 것이 호텔 다이닝의 핵심 경쟁력이 됐다.

강남 테헤란로의 중심에서 서울의 스카이라인을 조망할 수 있는 파크 하얏트 서울 24층 '더 라운지(The Lounge)'는 최근 대대적인 메뉴 개편을 단행하며 미식가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정통 한식의 틀을 깨고 프렌치 터치를 가미해 독창적인 '모던 코리아 다이닝'을 선보이고 있는 파크 하얏트 서울 부총주방장 김성호 셰프가 추구하는 새로운 럭셔리 미식 세계를 들여다봤다.

프렌치 기법을 입은 대중 한식

그동안 정통 한식을 지향해왔던 더 라운지는 이번 개편을 통해 정교하고 현대적인 모던 코리아 다이닝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김성호 셰프는 파크 하얏트가 추구하는 브랜드 가치와 글로벌 고객의 니즈를 고려해, 본인의 강점인 프렌치·이탈리안 양식 베이스의 경험을 토대로 한식 플레이버를 풀어내는 방식을 택했다. 디너 코스 역시 기존 한 종류에서 두 가지 선택지로 늘려 고객의 취향을 폭넓게 반영하도록 했다.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디너 코스에 포함된 '안동찜닭'과 '주꾸미볶음'이다. 호텔 파인다이닝에서 보기 드문 대중적인 로컬 메뉴를 전면에 내세운 건 철저한 타깃 분석에 따른 결과다. 현재 더 라운지는 투숙객의 80%, 디너 고객의 70% 이상이 외국인으로 구성돼 있다.

김 셰프는 "해외 고객들은 단순히 값비싼 식재료를 나열한 요리보다 대중적이고 로컬 색채가 짙은 한국 음식에 더 큰 호기심을 보인다"며 "이렇듯 친근한 일상 메뉴들을 호텔의 품격에 걸맞게 재해석하는 데 가장 공을 들였다"고 설명했다.

더 라운지 랍스터 김치전/사진=파크 하얏트 서울

익숙한 이름의 메뉴들이지만 서브되는 비주얼은 예상과 전혀 다르다. 프렌치 기법으로 조리해 눈으로 보는 즐거움을 극대화했다. '주꾸미볶음'은 생선 뼈를 우려낸 크림 소스를 곁들여 외국인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도록 밸런스를 맞췄다. '안동찜닭'은 닭다리살을 프랑스식 롤라드 기법으로 말아 저온 조리했다. 프랑스식 소스인 '주(Jus)'에 간장 양념을 더해 감칠맛을 높이고 깨와 메밀 크럼블, 참기름 파우더로 식감까지 살렸다.

그는 자신의 요리 철학과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메뉴로 '랍스터 김치전'을 꼽았다. 김 셰프는 "누구나 익숙하게 아는 김치전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등장해 놀라움을 주고 싶었다"면서 "랍스터를 프랑스식 롤라드 기법으로 둥글게 말아 저온 조리하고 김치 주스를 분자요리 기법을 통해 캐비어 형태의 '김치 펄'로 구현해 한입에 먹었을 때 모든 맛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김치 특유의 강한 산미와 향을 부드럽고 섬세하게 전달해 내외국인 모두가 편안하게 즐기도록 유도한 전형적인 '트위스트' 메뉴다. 그는 "분자요리 기법과 프렌치 조리 기술을 활용했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한국적인 맛을 재미있고 현대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라며 "앞으로도 익숙한 음식을 새로운 맛과 비주얼로 재해석하는 방향을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맛의 레이어'를 쌓다

김 셰프가 이끄는 주방의 핵심 경쟁력은 '맛의 레이어(Layer)'를 쌓는 섬세한 공정에 있다. 전통 한식의 갈비찜이나 조림이 양념을 한 번에 넣고 오래 졸여내는 방식이라면, 양식은 구워서 육즙과 향을 가둔 뒤 삶고 다시 소스를 발라 졸여내는 등 여러 단계의 공정을 거치며 맛을 축적한다.

레이어 과정을 거쳐 조리되는 더 라운지의 '갈비찜'은 소뼈를 오래 고아낸 양식 베이스에 간장 양념을 더하고 레드와인 대신 복분자주스를 넣어 한국적이면서도 다채로운 향을 냈다.

현재 매장 내 매출 1위를 기록 중인 '도미조림' 역시 마찬가지다. 도미 뼈를 오래 고아 고추장을 소량만 첨가해 본연의 향을 살린 소스를 만든다. 함께 곁들이는 무는 저온 조리(수비드)로 양념이 은은하게 배어들게 해 입안에서 부드럽게 으깨지도록 했다. 생선도 가장 촉촉한 최적의 온도로 익혀내 스테이크 같은 식감을 구현했다.

더 라운지 관자 전복죽(왼쪽)과 도미 조림/사진=파크 하얏트 서울

김 셰프는 "겉으로 보면 전통적인 도미조림 같지만 세부 공정에는 프렌치 기법이 많이 들어가 있다"면서 "한국식 도미조림이 강한 고추장 양념에 집중한다면 우리는 서양식 조리 기법을 사용해 생선 뼈를 오랜 시간 우려낸 육수를 활용해 보다 깊고 섬세한 맛을 구현하는 데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손님들이 이런 메뉴들을 보면 굉장히 신선하게 생각한다"며 "지금은 영어식 표현으로 되어있는 메뉴판도 이제는 익숙한 한글식 표기 방식으로 바꿔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점심 시간대 고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죽 메뉴에도 차별화를 꾀했다. 전통적으로 물에 넣고 끓이는 방식 대신 쌀을 리조또처럼 볶아내 쌀알이 톡톡 터지는 식감을 살렸다. 여기에 참기름과 허브오일, 랍스터오일 등 다양한 기름을 활용해 풍미를 끌어올렸다.

그는 "고객이 모든 공정을 직접 느끼지는 못하더라도 음식을 맛보는 순간 차이를 경험하게 된다"면서 "전통 방식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기 위해 수많은 공정을 거치는데, 그 과정 자체가 한식이 가진 '정성'의 가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주방 팀원들 역시 하나의 요리를 하나의 작품처럼 완성한다는 마음으로 굽고 삶고 찌는 과정을 반복하며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미식 놀이터

김 셰프는 파크 하얏트 서울에 합류한 이후 공간의 타깃을 명확히 설정하고 전략적인 접근을 이어가고 있다. 비즈니스 고객이나 백화점 VIP 등 안목이 높은 고연령대 고객층을 겨냥해 '성인들이 온전히 즐길 수 있는 놀이터'로서의 매장을 기획했다.

이런 고민 끝에 탄생한 대표적인 메뉴가 바로 '헤네시 V.S.O.P 코냑 빙수'다. 이미 시장에서 하나의 대중적인 문화로 자리 잡은 망고빙수를 넘어, 주류와 디저트를 페어링하는 성인 전용 빙수를 선보이며 차별화를 시도했다.

이 제품은 한국 미식 문화에 관심이 높은 중국인 고객들을 중심으로 입소문을 타며 출시 초기임에도 높은 판매고를 올리고 있다. 사계절 내내 빙수 예약을 받기 시작하면서 관련 매출은 이전 대비 200% 이상 급증했다.

더 라운지 애플망고 빙수(왼쪽)와 헤네시 V.S.O.P 코냑 빙수/사진=파크 하얏트 서울

김 셰프는 "빙수는 맛뿐 아니라 시각적인 즐거움과 계절감을 함께 전달할 수 있는 콘텐츠로, 작지만 확실한 만족을 추구하는 소비 흐름과 맞닿아 있다"면서 "전통적인 기물을 활용해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더한 망고 빙수와 더불어 이제 호텔 빙수는 단순한 디저트를 넘어 호텔의 품격을 경험하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고 분석했다.

심야 시간대 해외 투숙객을 겨냥해 야식 룸서비스 메뉴를 강화한 것도 주효했다. 한국식 매운 짬뽕을 미식 콘텐츠로 업그레이드해 선보인 결과, 지금까지 2000그릇 이상 판매되는 성과를 거뒀다. 떡볶이와 치킨 등 K푸드를 호텔급 퀄리티로 제공하며 외국인 고객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그는 최근 미식 소비 트렌드 변화에 대해 "이제 고객들은 음식을 먹으러 오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이 주는 경험과 가치를 소비한다. SNS를 통해 세계 최고 레스토랑의 음식까지 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인 만큼 단순히 맛있는 음식만으로는 차별화하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이어 "K팝과 K컬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외국인 고객들도 식재료와 조리법, 메뉴에 담긴 스토리까지 적극적으로 질문하며 한국 음식 자체를 하나의 문화 경험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강해졌다"고 덧붙였다.

근거 있는 자신감

올해로 18년 차 경력을 맞이한 김성호 셰프는 주방의 체계적인 운영과 일관된 품질 유지를 최우선으로 꼽는다. 메뉴의 완성도는 특정 셰프의 감각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동일한 수준으로 재현할 수 있는 표준화에서 온다는 믿음 때문이다.

더 라운지는 식재료의 신선함과 지속 가능성을 위해 매달 전국 농장과 직접 소통하며 유기농 제철 식재료를 공급받고 있다. 이번 여름 시즌에는 참외와 청사과를 활용한 에피타이저 드레싱을 선보인다. 초복부터는 삼계탕을 리조또 스타일로 재해석한 삼계죽과 저온 조리한 돼지고기 안심 구이 등을 '미식을 위한 보양식' 콘셉트로 출시할 예정이다.

김 셰프는 "예전에는 여름 보양식을 단순히 체력을 보충하는 음식으로 생각했다면 최근 고객들은 건강은 물론 맛과 경험까지 함께 원한다"며 "한 끼를 먹더라도 영양과 미식적 만족을 동시에 얻고 싶어 하는 만큼 전통 보양식을 보다 세련된 방식으로 풀어낼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이처럼 과감한 도전을 이어갈 수 있는 배경에는 파크 하얏트 서울 조리부의 열린 문화가 있다. 총주방장 다미앙 셀므(Damien Selme)는 부하 직원의 아이디어를 적극 수용하고 지지해 주는 리더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하면 직접 레퍼런스를 찾아보고 함께 발전시키는 문화가 자리 잡혀 있다.

김성호 파크 하얏트 서울 부총주방장./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이런 정교한 협업 덕분에 주방 팀원들은 럭셔리 브랜드 협업 사업, 마스터 오브 와인 행사, 로컬 셰프들과의 컬래버레이션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어오고 있다. 그는 "총주방장이 팀원들의 의견을 먼저 듣고 다양한 시도를 적극적으로 지지해 준다"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하면 직접 레퍼런스를 찾아보고 함께 발전시키는 문화가 자리 잡혀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아직 실패라고 부를 만한 경험은 없었다"며 "앞으로도 실패를 두려워하기보다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내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셰프는 "파크 하얏트가 추구하는 '절제된 품격'과 '진정성 있는 배려'를 고객 경험과 주방 문화 전반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것에 가장 중점을 두고 있다"면서 "화려한 기교를 앞세우기보다 식재료 본연의 가치와 계절감을 가장 완성도 높은 방식으로 표현하려 한다. 각 레스토랑의 콘셉트는 다르지만 모든 메뉴가 파크 하얏트 서울만의 품격과 진정성을 담고 있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는 어느 호텔을 가던지 음식을 다 잘하는 시대인 만큼 셰프 스스로가 하나의 브랜드가 되어 고객에게 신뢰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이번 여름, 정교한 모던 한식 콘셉트를 더욱 견고히 유지하면서 단품부터 코스까지 아우르는 더 라운지나의 럭셔리 미식을 더 많은 대중에게 알리는 것이 그의 목표다.

그는 "결국 제가 추구하는 메뉴는 단순히 국제적이거나 한국적인 음식이 아니라, 파크 하얏트 서울만의 정체성과 스토리를 담아 국내외 고객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라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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