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피도 뷰티
인류가 스스로 생각하는 인공지능(AI)을 만들고, 스스로 목적지까지 찾아가는 자동차를 만드는 2026년이지만 아직도 숙제는 많다. 우주 탐사나 빅뱅의 비밀 같은 거창한 것만 있는 건 아니다. 아직도 인류는 비가 오면 긴 막대기에 천을 덧댄 '우산'을 써야만 하고 감기에 걸리면 쉬는 게 답이다.
인류가 풀지 못한 난제 중 가장 대표적인 게 '탈모'다. '역대 노벨상 수상자 중 몇 %가 대머리라더라'는 농담은 인류와 과학이 탈모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점을 꼬집는 농담이다. 손익이 맞지 않아서, 해당되는 대상이 많지 않아서 연구가 미진한 다른 불치병과 달리 탈모는 전 인류의 관심사인 데다 수익성이 확실한 항목임에도 정복하지 못한 증상이다.
현재까지 발견된 해답은 단 두 가지다. 하나는 효과가 입증된 먹는 약(피나스테리드)이나 바르는 약(미녹시딜). 또 하나는 두피 관리를 통한 예방이다. 피부 관리의 시대를 넘어 '두피 관리'의 시대가 온 셈이다. 130조원 규모로 추정되는 글로벌 헤어케어 시장에서 탈모·두피 관리 케어 제품군 점유율은 5% 안팎이지만 성장률은 가장 높다. 특히 두피를 피부의 한 부분으로 보고 관리하는 '스킨케어화(Skinification)' 트렌드는 헤어케어 시장의 핵심 성장 동력이다.
헤어 제품으로 가업을 시작한 아모레퍼시픽이 이를 소홀히 할 리 없다. 2008년 두피케어 전문 브랜드 '려'를 선보였고 2020년엔 신규 브랜드 '라보에이치'를 내놓으며 두피케어 카테고리를 강화했다. 최근엔 한 발 더 나아갔다. 피부·두피 진단부터 맞춤형 제품 추천, 생활습관 개선 제안까지 해내는 '아모레 용산'을 통해서다. 지난 21일 '아모레 용산'을 찾아 현대인의 난제를 풀어 봤다.
뷰티샵 아닌 '랩'
아모레 용산은 서울 용산의 아모레퍼시픽 본사 2층에 자리잡은 플래그십 스토어다. 설화수와 헤라, 에스트라 등 아모레퍼시픽의 대표 상품들을 판매하고 개인의 피부톤에 맞춘 파운데이션, 헤어 타입에 맞는 에센스 등을 즉석에서 만드는 등의 '미래형 뷰티 서비스'도 제공하는 공간이다.
매장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오면 '아모레 시티 랩'이 있다. 피부와 두피 상태를 정밀하게 진단하고 그간 축적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솔루션을 제공하는 공간이다. 얼핏 보면 뷰티샵이나 뷰티 케어 브랜드들이 제공하는 흔한 진단 서비스처럼 보였다. 뷰티 플랫폼에서 몇 차례 두피 진단을 받은 적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대부분 제품 판매를 위한 수단에 그쳤던 경험이 떠올랐다. 물론 시티 랩을 체험해 보기 전의 어설픈 감상이었다.
시티 랩에서는 아모레 용산 구매 고객을 대상으로 고객의 얼굴 피부와 두피를 촬영하고 수분 밸런스와 색소침착, 탄력, 주름, 모발 굵기와 밀도 등을 분석해 주는 '마이 스킨 퓨쳐' 서비스를 제공한다. 피부와 두피 타입에 맞는 제품 루틴을 추천해 줌은 물론 개선해야 할 생활 습관까지 체크해 준다.
아모레 시티 랩이 일반적인 뷰티 진단 서비스와 가장 다른 건 전문성이다. 브랜드 직원이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판단하는 게 아닌, 아모레퍼시픽의 전문 연구원이 직접 검사하고 문진한 뒤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한다. 솔루션의 기반에는 2014년 시작된 '바이오 랩'에서부터 축적된 데이터가 있다. 허투루 하는 조언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습관부터 루틴까지
마이 스킨 퓨처 서비스에서는 모발의 영역을 좌측 헤어라인·우측 헤어라인·앞 헤어라인·앞 중앙·정수리·후두부 등 6개 구역으로 나눠 각 구역의 모발 굵기와 밀도, 두피 상태를 검사한다. 기자의 경우 앞서 문진에서 두피 가려움과 트러블, 모발의 굵기가 고민이라고 밝혔다. 원래 모발이 가늘고 숱이 적은 편이어서 탈모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실제로 검사 결과 기자의 두피는 민감성·문제성 두피로 나타났다. 머리를 감고 드라이하지 않는 '자연건조' 습관이 문제라는 설명도 뒤따랐다. 다만 걱정했던 모발의 굵기나 밀도는 의외로 '문제없음'이라는 진단이었다. 단순히 '괜찮다'가 아닌, 각 구역의 모발 밀도와 굵기를 분석해 평균치와 대비해 줘 신뢰도가 높았다.
두피·모발 케어 루틴 제안 과정도 만족스러웠다. 단순히 아모레퍼시픽의 인기 제품을 추천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해당 제품이 어떤 유효성분을 보유하고 있고 그 성분이 어떤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지 자세히 설명해 준다. 꼭 특정 추천 제품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구매 여건에 맞게 제품을 선택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해 준다는 느낌이다. 기자의 경우 아침에는 두피강화 라인업인 라보에이치 샴푸를, 저녁에는 피지완화 기능성이 강조된 려 루트젠 아쿠아필 샴푸를 사용한 뒤 같은 라인업의 두피 토닉을 사용할 것을 제안받았다.
시티 랩에서는 생활습관의 개선도 제안한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머리를 감은 후 꼼꼼하게 드라이를 해야 한다는 설명을 들었다. 특히 뜨거운 바람이 아닌 차갑거나 미지근한 바람으로 말리라는 조언이다. 우측 헤어라인보다 좌측 헤어라인의 모발 굵기가 상대적으로 가는 건 옆으로 누워 자는 버릇이 원인일 수 있다는 분석도 있었다. 이 경우 베개와의 마찰 빈도가 높아져 모발이 가늘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상담을 마친 뒤에는 아모레 용산에 있는 '미쟝센 퍼펙트 세럼 비스포크'에서 나만의 헤어 세럼을 만들어 볼 수 있다. 모발과 두피 고민 등을 무인 기기로 설문한 뒤 원하는 향을 선택하면 나만의 맞춤 세럼이 즉석에서 만들어진다. '맞춤형 서비스'의 끝판왕 격이다.
최근 소비 시장의 트렌드는 '개인화'다. 생산자의 편의에 맞춰 만들어진 제품을 택일해 소비하는 게 아닌, 소비자의 니즈에 맞춰 세분화된 제품을 만들어 내는 게 생산자의 숙제다. 아모레 시티 랩은 그런 면에서 뷰티 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리키는 이정표 중 하나가 될 만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