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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의 Pick]'한식 파인다이닝'에 대한 선입견을 깨다

  • 2026.08.03(월) 10:00

진선주 파라다이스시티 새라새 셰프 인터뷰
우보농장 토종 작물로 '미식의 서사' 완성
강민구 셰프 컨설팅 '컬리너리랩'과 협업
'입매음식'부터 디저트까지 디테일 살려

진선주 파라다이스시티 아트파라디소 새라새 셰프./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셰프의 요리는 종종 예술작품에 비유되곤 합니다. 셰프는 접시라는 캔버스 위에 자신만의 철학과 재료에 대한 경외심을 담아 수만 번의 칼질로 하나의 작품을 만듭니다. 예술가들의 그것과 견주어도 전혀 밀리지 않죠. [셰프의 Pick]은 그들의 이런 노력을 담아냅니다. 국내 호텔 셰프들의 이야기와 요리에 담긴 철학 한 조각을 음미해보려는 시도입니다. 최고의 셰프들이 전하는 화려하고 소박한 이야기를 맛 보실 준비가 되셨나요? 이제 출발합니다. [편집자]

한식이 글로벌 시장에서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지만, 정작 파인다이닝 영역에서는 깊은 고민을 안고 있다. 발효 중심의 오랜 시간성, 복합적인 반상 구조, 식재료의 다양성이 한식의 표준화와 고급화 과정에서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천 파라다이스시티 아트파라디소의 컨템포러리 한식 레스토랑 '새라새(SERASÉ)'는 이런 한계를 역발상으로 돌파한다. 한식이 지닌 구조적 특성을 독창적인 미식 언어로 풀어내면서다. 전통의 틀에서 벗어나 식재료와 조리법의 본질은 정밀하게 살리고, 여기에 부티크 호텔 특유의 감각적인 기물과 현대적 미식 기법을 입혀 '이노베이티브 코리안 퀴진'을 선보인다.

한식이 지닌 강점을 현대적인 미식으로 번역하며 한식 파인다이닝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그 중심에 진선주 셰프가 있다.

코스의 마무리는 '밥'

2019년 새라새에 합류한 진선주 셰프는 '한식계의 대모'로 불리는 조희숙 셰프(현 한식공간 대표) 아래에서 내공을 쌓았다.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밍글스의 강민구 셰프와도 같은 스승 밑에서 배움을 이어왔다. 그가 전통 한식의 구조와 원리에 깊이 뿌리를 박아두고도 현대적인 풀이가 가능한 이유다.

진 셰프의 미식 철학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단연 '식재료'와 '발효'다. 직접 메주를 띄워보고 샘표 발효학교 수업을 이수할 만큼 장(醬)과 발효에 진심인 그는 "한식의 근본이자 정체성은 발효에서 나온다. 한식 셰프라면 장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스스로 명확히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새라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메뉴로 '반상'을 꼽은 것도 같은 이유다. 서양식 코스 흐름 속에서 한식의 묵직한 정체성을 보여주는 결정적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새라새 한우수육과 냉면반상/사진=파라다이스

진 셰프는 "외국인에게는 한국 고유의 상차림 문화를 직관적으로 알려주고 내국인에게는 밥과 국, 반찬, 메인 요리가 어우러져 '비로소 든든한 식사를 마쳤다'는 정서적 만족감을 준다"고 설명했다.

반상은 계절의 변화를 섬세하게 담아낸다. 봄에는 제철 나물과 떡갈비를 활용하고 가을에는 흔히 떠올리는 능이나 송이 대신 검은빛과 오독오독한 식감이 매력적인 토종 '먹버섯'을 마른 팬에 구워 올린다. 여기에 전통 방식을 살린 장김치와 수원갈비를 메인으로 곁들이는 식이다.

그는 "코스를 구성할 때는 제철 식재료의 무게와 맛, 식감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설계한다"며 "반상으로 한식의 정체성을 단단히 잡은 뒤 마지막 디저트까지 여운이 이어지도록 흐름을 다듬는다"고 설명했다.

정교함을 더하는 법

새라새의 메뉴 개발 과정은 집단 지성과 정밀한 피드백의 집약체다. 진 셰프가 시즌 콘셉트와 핵심 식재료 방향을 설정하면, 한식·중식·이탈리안·디저트 등 다채로운 조리 배경을 가진 11명의 새라새 팀원이 각 파트에서 아이디어를 제안한다.

이를 바탕으로 구성된 1차 메뉴는 컨설턴트로 참여하고 있는 밍글스의 강민구 셰프 그리고 6명의 전문 인력으로 구성된 R&D팀 '컬리너리랩 바이 파라다이스'과의 협업을 통해 완성도를 높인다. 양식 기법과 토종 식재료의 절묘한 조합, 플레이팅 시연, 2~3차에 걸친 테이스팅과 수정 과정이 정교하게 이어진다.

이번 봄 시즌 주제였던 '찰나의 순간' 역시 모든 파트가 아뮤즈부터 다과까지 완벽한 밸런스를 맞출 때까지 수차례 테이스팅을 거쳤다. 메뉴 오픈 첫날에는 강민구 셰프와 컬리너리랩 팀이 현장에서 플레이팅과 동선을 함께 점검했다. 진 셰프는 "음식 자체의 완성도뿐만 아니라 커트러리, 서비스, 분위기까지 전체적인 흐름이 어긋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파라다이스시티 아트파라디소 새라새 봄 디너 코스 ‘라온’/사진=파라다이스

한식은 물론 양식, 중식, 일식, 디저트까지 다채로운 영역을 넘나드는 셰프들이 머리를 맞대면서, 이전에 없던 신선한 식재료 조합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기 시작했다. 지난 1년간 사계절 코스를 골고루 선보인 진 셰프 역시 "이제야 새라새 옷에 꼭 맞는 미식의 방향성을 확립했다"고 말했다.

새라새가 정체성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가장 눈에 띄게 달라진 점도 바로 이 지점이다. 과거에는 전통 한식의 색채가 다소 짙었다면, 지금은 단단한 전통 한식을 기반으로 현대적인 감각과 창의적인 표현을 기분 좋게 얹어낸다.

그는 "한식 외길만 걸어오다 보니 때로는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내는 과정에서 벽에 부딪힐 때도 있다"면서 "하지만 팀원들 저마다 지닌 자산과 시각이 다르다 보니, 함께 치열하게 고민하는 과정 속에서 언제나 기대 이상의 명답을 찾아내곤 한다"고 밝혔다.

또 진 셰프는 협업을 통해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진 셰프는 "강민구 셰프를 통해 가장 크게 배운 '디테일에 대한 집요함'과 '부티크한 리더십'이다"라며 "초단위로 시간을 쪼개 쓰며 현장에서 고기와 생선을 다루고, 서비스가 나간 뒤에도 더 나은 방식을 끊임없이 고뇌하는 강 셰프의 부지런함과 창의성에서 팀 전체가 커다란 영감을 얻는다"고 설명했다.

토종 작물로 풀어낸 식재료 철학

진 셰프가 토종 작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한식의 미래에 대한 고민때문이었다. 한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기 위해서는 단지 새로운 조리법을 발굴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요리의 뿌리가 되는 지역과 향토 음식, 그리고 식재료에 담긴 역사까지 깊이 있게 이해해야 비로소 한식의 서사가 완성된다고 봤다.

전국 방방곡곡의 오일장과 로컬 식재료 매장을 누비는 것은 진 셰프의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식재료 수업을 찾아 듣기도 하며 토종 작물에 대한 지평을 넓혀갔다. 직접 현장에서 식재료를 맛보고 재배 환경과 맛의 특성을 정밀하게 기록하며 새라새의 메뉴로 풀어낼 요소를 하나씩 수집하기 위해서다.

특히 우보농장의 이근이 농부 등 토종 작물 재배 농가와의 협업으로 식탁에 올리는 앉은뱅이 밀, 토종쌀, 예팥, 재팥 등은 새라새 요리의 서사를 완성하는 핵심 요소다. 기원전 300년부터 재배된 한국의 토종 밀 '앉은뱅이 밀'은 글루텐이 적고 고소하며, 약과 등에 활용했을 때 바삭하게 부서지는 식감을 극대화한다. 수확량이 적어 유통이 어려운 토종쌀은 견과류와 풀향, 꽃향에 가까운 복합적인 풍미와 쫀득한 입자감으로 '밥' 자체를 하나의 독립된 요리로 올려놓는다.

앉은뱅이 밀을 활용해 만든 갈비 반상/사진=파라다이스

진 셰프는 "품종마다 향과 식감이 달라 10가지 재료를 시험해보면 그중 1가지가 메뉴에 올라갈까 말까 할 정도로 철저한 테스트를 거친다"면서 "희귀한 재료를 다루는 차원을 넘어 파인다이닝의 소비가 농가의 재배로 이어지는 농업 생태계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가는 것이 요리사의 역할"이라고 밝혔다.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 역시 파인다이닝의 중요한 사명이다. 그는 "낯선 토종 식재료라도 요리라는 언어로 풀어내고 그에 담긴 서사를 전하면 고객들 역시 자연스럽게 마음을 연다"며 "음식을 경험한 손님이 식재료의 출처와 농부에 관심을 갖기 시작할 때 비로소 가치 소비의 첫 걸음이 떼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과 인재 육성

세계 시장에서 한식의 위상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반면 한식 파인다이닝을 지속해서 이끌어갈 저변과 교육 시스템은 여전히 부족하다. 진선주 셰프가 체계적인 한식 교육 인프라 구축을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는 이유다.

그는 "최근 국내 파인다이닝 레스토랑들이 한식의 미식적 가치를 훌륭히 입증하고 있지만, 이를 지속해서 이끌어갈 전문 인재나 교육 체계는 아직 미흡한 실정"이라면서 "해외 미식가나 셰프들이 전통 발효나 한식 조리법을 깊이 있게 배울 수 있는 전용 기관이 부족해 아쉬울 때가 많다"고 밝혔다.

해외처럼 전통시장 체험과 연계된 쿠킹클래스나 전문 교육 기관이 전국 단위로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장과 식초, 발효 등 한식의 근본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되어야 셰프들의 자부심과 인재 육성이라는 선순환이 완성된다는 의미다.

진선주 셰프./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진 셰프가 그리는 한식의 미래는 '선순환적 다양성'이다. 울릉도의 선비잡이 콩이나 전통 토종 소금인 자염(煮鹽)처럼 잊혀가는 향토 식재료를 끊임없이 발굴해 요리에 녹여내는 것들이다.

새라새 역시 앞으로 이런 방향성을 더욱 강화할 계획이다. 코스 요리를 넘어 바, 인룸다이닝, 티 세트, 빙수 등 호텔 F&B 전반에 새라새만의 한식 정체성을 녹여내는 것이 목표다. 토마토 파스타에 고추장을 더하거나 육포에 간장과 고추장 풍미를 살리고 멸치강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방식이다.

진 셰프는 "다양한 미식 경험과 예술적 감각을 한 번에 누릴 수 있는 복합 미식 플랫폼이 되는 것이 새라새의 지향점"이라면서 "잊혀가는 우리 식재료를 지속해서 발굴해 손님들에게 대체 불가능한 한식 미식을 선사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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