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내린 여름 밤 에버랜드 숲속. 수천 마리의 반딧불이가 은은하고 몽환적인 불빛을 반짝이며 날아오른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펼쳐지는 '빛의 은하수'를 보며 관객들이 감탄사를 내뱉는다.
삼성물산 리조트부문 에버랜드가 선보인 '한여름밤의 반딧불이 축제' 현장이다. 특히 올해는 기존 유료 교육 프로그램으로 운영되던 전시를 전면 무료로 개방하면서 개막 보름 만에 누적 관람객 3만명을 돌파하는 등 N차 관람 열풍이 이어지고 있다.
이 환상적인 광경 뒤에는 365일 내내 칠흑 같은 사육실에서 땀방울을 흘리는 이들이 있다. 1998년 국내 최초로 반딧불이 인공 번식에 성공한 이래 28년간 사육 노하우를 축적해 온 에버랜드 곤충사육실 '주키퍼'들이다. 에버랜드에서 반딧불이 보전과 전시를 담당하는 김진목 주키퍼를 만나 숲속 불빛 뒤에 숨겨진 숭고한 기다림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2주간 빛을 내기 위한 1년의 기다림
반딧불이의 삶은 짧지만 화려하다. 암컷이 이끼 위에 150~200개의 알을 낳으면 약 한 달 뒤 부화한 애벌레는 물속에서 다슬기를 먹으며 9~10개월을 보낸다. 이후 번데기 과정을 거쳐 성충이 되지만, 밤하늘을 날며 빛을 내는 시간은 단 2주 남짓이다.
김진목 주키퍼는 "성충이 되면 입이 퇴화해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오직 물만 마시며 짧은 생을 보낸다"며 "반면 이 짧은 찬란함을 위해 주키퍼들은 꼬박 1년, 365일이라는 시간을 쏟아부어야 한다"고 말했다.
곤충사육실의 하루는 단 한 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수로에는 1급수 수준의 깨끗한 물을 유지하고 온도와 습도도 세심하게 조절한다. 주키퍼들은 좁쌀보다 작은 알을 관리하고 애벌레 먹이가 되는 다슬기를 직접 번식시켜 공급한다. 올해는 반도체 공정의 정밀 습도 제어에 활용되는 '미스트 시스템'까지 도입해 반딧불이가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김 주키퍼는 "반딧불이는 작은 빛이나 수질 오염에도 생사가 갈릴 만큼 미세한 환경 변화에 예민하다"며 "오차 없는 습도와 온도를 맞춰줘야 반딧불이가 더 오래도록 건강하게 반짝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주키퍼들이 지극정성으로 반딧불이를 돌보는 것은 곤충사육사의 고유한 사명감 때문이다. 김 주키퍼는 "코끼리나 호랑이처럼 눈을 맞추며 교감하고 오랜 시간을 함께 살아가는 포유류와 달리, 반딧불이는 수명이 짧고 세대교체가 매우 빠르다"며 "특정 개체에 정을 붙일 겨를도 없이 스쳐 지나가지만 사육사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변화를 끊임없이 관찰하며 종 전체의 생애 주기를 지켜낸다"고 말했다.
김 주키퍼는 반딧불이의 의외의 매력도 소개했다. 그는 "성충은 물만 마시며 살아가지만 애벌레는 다슬기를 사냥해 먹는 육식성 곤충"이라며 "귀엽게만 보이는 반딧불이에게 이런 반전 매력이 있다"고 웃었다.
15년간 곤충을 사육하면서 실패도 적지 않았다. 김 주키퍼는 "더 좋은 결과를 만들려던 시도가 오히려 실패로 이어진 적도 있었다"며 "그때마다 초심으로 돌아가 사육 환경과 관리 과정을 하나씩 다시 점검했다. 경험에 안주하지 않고 기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고 밝혔다.
반딧불이의 불빛에도 긴 시간이 담겨 있다. 그는 "원래 반딧불이의 빛은 천적에게 독성이 있음을 알리는 방어용 경고 신호였으나, 오랜 진화를 거치며 암수가 소리 없이 서로를 찾는 '사랑의 대화'로 거듭났다"며 "배 부위의 발광기에서 루시페린과 루시페라아제 효소의 반응을 통해 90% 이상의 극강 효율로 맑은 빛을 뿜어내는 모습을 보면 1년 간의 고단함이 환희로 바뀐다"고 설명했다.
눈으로 담는 자연의 빛
본격적인 체험이 시작되고 관람객들이 실내 교육장에서 반딧불이의 한살이 영상을 시청한 뒤,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 '반딧불이의 숲'으로 들어선다. 현장에서는 작은 불빛 하나도 허용되지 않는다.
운영을 맡은 오서영 캐스트는 "야생에서도 조금이라도 불빛이 있으면 반딧불이를 보기 어렵다"며 "촬영보다 먼저 눈으로 충분히 담아보셨으면 좋겠다. 그 느낌을 오래 기억해 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문을 열고 암흑 속으로 들어서는 순간 장관이 펼쳐진다. 눈앞에서 수천 마리의 반딧불이가 은은한 불빛을 반짝이고 있다. 조용하던 공간은 순식간에 탄성과 감탄으로 가득 찬다.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자연의 소리 음악과 어우러진 빛의 물결은 실제 숲속 한가운데 들어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관람객들은 숨을 죽인 채 한동안 불빛만 바라본다.
감동에 젖어 들 때쯤, 현장 캐스트가 관람객들에게 환호와 박수를 유도하는 뜻밖의 광경이 연출된다. 반딧불이가 소리 진동에 반응해 더욱 선명하고 화려하게 불빛을 반짝이기 때문이다. 관람객들의 함성과 박수 소리가 커질수록 숲 전체를 수놓은 빛의 물결도 한층 더 격정적으로 출렁인다.
그곳에서 목격되는 관람객들의 반응도 제각각이다. 아이들은 처음 보는 반딧불이를 향해 연신 환호성을 지르고, 어른들은 가만히 불빛을 응시하다 슬그머니 눈시울을 붉히기도 한다. 어릴 적 시골길에서 보았던 아련한 추억이 떠올라서이기도 하고, 삭막하고 치열한 도심의 일상속에서 지쳤던 마음이 자연의 불빛으로부터 깊은 위로를 받기 때문이기도 하다.
김 주키퍼는 "아이들이 신기해하며 환호할 때도 뿌듯하지만 차갑지만 따뜻하게 빛나는 불빛을 보며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부모님들을 볼 때 깊은 위로를 받는다"며 "우리가 정성껏 키운 반딧불이가 누군가에게는 평생 기억에 남을 추억이자 위로가 된다는 사실에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실제 각종 커뮤니티와 SNS에는 체험을 마친 방문객들의 감동 어린 후기가 끊이지 않는다. "도시에서는 절대 보여줄 수 없었던 진짜 자연의 신비를 아이에게 선물한 것 같아 가슴이 벅찼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빛나는 작은 불빛을 보는데 저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났다." 등 생생한 소회가 이어지며 N차 관람 열풍을 뒷받침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별빛 캠핑'을 테마로 공간을 연출해 감성을 한층 더했다. 베이스캠프 공간에는 모닥불 조형물과 캠핑 의자를 배치해 한여름 밤 오지 캠핑을 떠나온 듯한 낭만을 선사한다. 쾌적한 실내 환경에서 몰입감 있게 불빛을 감상할 수 있도록 동선과 좌석을 세심하게 배려했다.
한 마리 한 마리 소중하게
올해 축제 기간 전시장에 공개되는 반딧불이는 약 1만3000마리다. 주키퍼들 수많은 개체 중에서 단 한 마리도 허투루 다루지 않는다.
김 주키퍼는 "전시장으로 옮길 때는 부드러운 붓이나 젓가락을 이용해 한 마리씩 개체 수를 확인하며 이동시킨다"며 "작은 날개 하나라도 다치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한다"고 설명했다.
반딧불이는 작은 빛과 오염에도 쉽게 서식지를 잃는 대표적인 환경지표 곤충이다. 산업화 이전에는 흔해 '개똥벌레'라고 불렸지만, 수질오염과 서식지 파괴로 지금은 자연에서 만나기 어려운 생물이 됐다. 에버랜드가 28년째 인공 번식과 보전 활동을 이어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올해 축제를 무료로 전환한 것도 더 많은 사람들이 반딧불이의 가치를 직접 경험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김 주키퍼는 "반딧불이의 아름다움을 보여드리는 데 그치지 않고 자연과 환경 보전의 중요성도 함께 전하고 싶다"며 "많은 분이 반딧불이가 만들어내는 작은 불빛을 통해 자연의 소중함을 느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에버랜드가 28년간 반딧불이 보전에 헌신해 온 궁극적인 목표는 단순히 테마파크 내부의 구경거리를 만드는 데 있지 않다. 인공 번식과 저온 저장 기술을 지속적으로 정교화해 나가는 것은 사라져가는 청정 환경지표 곤충을 보전하고 대중에게 자연 보호의 소중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멸종 위기에 몰린 청정 생물을 끊임없이 지켜내고 개체군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미래 세대를 위한 소중한 자산인 셈이다.
김 주키퍼는 "반딧불이는 자연이 건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작은 생명"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이 작은 불빛을 통해 자연의 소중함을 오래 기억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무리 매년 같은 환경을 만들어줘도 곤충은 예민해서 뜻대로 크지 않을 때가 많아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면서 "우리가 켠 이 작은 불빛들이 오래도록 꺼지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속을 밝힐 수 있도록 앞으로도 건강한 반딧불이를 꾸준히 사육하고 보전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라고 다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