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에 사는 직장인 김모 씨는 며칠 전 컬리에서 배송된 상자를 열었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습니다. '배송이 완료됐다'는 문자를 받은 지 1시간도 지나지 않아 상자를 열었지만 내용물은 이미 미지근하게 녹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김 씨가 주문한 냉동 닭가슴살 상자에는 손바닥만 한 드라이아이스가 1개 들어 있었고 냉장 상품 박스에도 아이스팩 1개가 전부였습니다. 김 씨는 "녹은 닭가슴살 두 팩을 일단 냉동실에 다시 넣었더니 고기끼리 엉겨 붙어 결국 먹지 못하고 버려야 할 판"이라며 "예전 컬리의 꼼꼼했던 포장을 생각하면 상상하기 힘든 일"이라고 토로했습니다.
이는 김 씨만 겪은 일이 아닙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지역 맘카페에는 "드라이아이스가 다 증발했다", "박스 안이 결로로 축축하다", "냉동식품이 물러진 채 왔다"는 컬리 배송에 대한 불만이 하루가 멀다 하고 올라오고 있습니다. 지난주 기온이 40도에 육박하는 폭염을 기록한 시점과 겹치면서 이런 불만은 더 빠르게 퍼져 나갔죠. '신선함'의 대명사였던 컬리의 샛별배송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맘카페 타오른 보냉 불만
컬리의 새벽배송을 둘러싼 불만의 핵심은 보냉재의 양 자체가 예전과 다르다는 겁니다. 김 씨의 사례처럼 냉동 상품 여러 개가 든 상자에도, 냉장 상품 박스에도 드라이아이스와 아이스팩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후기가 여러 커뮤니티에 게시되고 있습니다. 신선식품은 미세한 온도 변화에도 품질이 저하되는 만큼, 보냉재 부실은 단순한 포장 불만을 넘어 서비스의 본질적인 신뢰도를 흔드는 문제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컬리가 비용 절감을 위해 보냉재를 줄인 것 아니냐는 의심도 제기됐습니다. 최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컬리 직원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비용 절감을 위해 보냉재 사용량을 줄이고 있다"는 글을 올려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소비자들이 느낀 이상 기류의 원인이 '비용 절감'에 있다는 점을 직원이 구체적으로 지적한 셈입니다. 이 글은 게시 직후 논란이 커지자 삭제됐습니다.
이에 대해 컬리 관계자는 "비용 절감을 위해 보냉재를 축소했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며 "기록적인 폭염에 대비해 드라이아이스와 아이스팩 투입량을 예년보다 늘렸고 냉동 상품에는 보냉 효과가 뛰어난 은박 에어캡까지 추가하는 등 포장재 기준을 대폭 강화했다"고 밝혔습니다.
보냉제 줄었다
하지만 컬리가 밝힌 '보냉재 투입량 증가'는 고객이 받는 개별 상자당 보냉재 양이 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회사 전체가 쓴 드라이아이스 총량이 평시보다 늘어났을 뿐, 고객이 받는 개별 상자당 드라이아이스 양은 오히려 줄어들었죠.
컬리가 쓰는 드라이아이스 총량이 늘어난 건 최근 배송 물량이 폭증했기 때문입니다. 컬리 이용객이 늘어난 데다 최근 네이버(NAVER)와의 협업이 본격화돼서인데요. 컬리는 지난해 9월 네이버와 손잡고 '컬리N마트'를 출시했습니다. 네이버 장보기 서비스 안에서 컬리 상품을 주문할 수 있도록 연동한 서비스인데, 올해 3월 거래액만 출시 초기 대비 9배나 급증했습니다.
문제는 공교롭게도 이 시기에 드라이아이스의 수급이 불안해졌다는 점입니다. 드라이아이스 원료인 액화탄산은 원유를 정제하는 과정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올해 초 시작된 중동전쟁 여파로 국내 원유 수급이 불안정해지면서 액화탄산 생산에도 문제가 생겼습니다. 최근 한 유명 아이스크림 프랜차이즈가 일부 매장의 포장 배송 가능 거리를 대폭 줄인 것도 드라이아이스 부족 때문이었죠.
결국 처리해야 할 상자는 급증한 반면 드라이아이스는 한정돼 있다 보니, 개별 상자당 드라이아이스를 쪼개 넣을 수밖에 없는 한계에 부딪친 겁니다. 컬리는 드라이아이스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냉동 상품용 박스에 은박 에어캡을 추가했습니다. 다만 40도에 육박하는 폭염이 이어지면서 이런 에어캡만으로 줄어든 드라이아이스의 자리를 완전히 채우기엔 역부족이었던 것으로 풀이됩니다.
'신선식품 1위'의 왕관
이런 드라이아이스 수급 난항이나 폭염은 경쟁사들도 똑같이 맞닥뜨린 악조건입니다. 그럼에도 유독 컬리를 향한 보냉 불만이 집중되는 이유는 컬리의 사업 구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컬리는 경쟁사보다 신선식품 비중이 매우 높습니다. 하루에 나가는 수백만 상자 중 다수가 엄격한 온도 관리를 요구하는 신선식품이다 보니 같은 조건의 악재라도 컬리가 상대적으로 더 크게 노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컬리는 충성고객 비중이 높고 이용자층 특성상 온라인 커뮤니티에 후기가 자주 올라오는 편이라 문제가 생겼을 때 더 빠르게 확산되는 편이죠. 이 때문에 실제 문제보다 불만이 훨씬 커 보이는 일종의 착시가 존재한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단순한 착시나 고객의 예민함으로 치부하긴 어렵습니다. 오히려 역설적으로 컬리가 다른 업체보다 보냉 관리에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컬리는 2015년 '신선함'을 무기로 국내 새벽배송 시장을 처음으로 연 회사입니다. 전날 밤 문 앞에 놓인 상품이 다음날 아침까지 신선하게 유지된다는 약속을 앞세워 지금의 자리에 올라섰습니다.
그 약속 덕분에 소비자들은 다른 배송보다 비싼 값을 치르면서도 컬리를 선택해 왔습니다. 신선식품 새벽배송을 대중화시킨 컬리에서 보냉재 부실 논란이 반복된다면, 이는 부수적인 흠집이 아니라 브랜드의 핵심 가치를 해치는 문제가 될 겁니다.
결국 이번 컬리의 보냉력 논란은 단순한 '해프닝'이나 '날씨 탓'으로만 치부하기 어렵습니다. 소비자들 사이에서 나오는 "예전 같지 않다"는 반응은 컬리가 처음 신선식품 새벽배송을 시작했을 때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에 가깝습니다. 외형이 커지는 속도만큼 그 기준을 지키려는 노력이 따라가지 못한다면 컬리는 초심을 잃었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습니다. 컬리가 '현관 앞 신선함'이라는 처음의 약속을 어떻게 지켜낼지 지켜봐야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