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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려 쓰던 이름 사들였다…'K패션' 된 디스커버리

  • 2026.08.15(토) 13:00

[주간유통]F&F, 1132억원에 글로벌 IP 인수
로열티 내던 라이선시에서 '글로벌 본사'로
한국 기획력 입힌 브랜드, 세계 시장 공략

그래픽=비즈워치

[주간유통]은 한주간 유통·식음료 업계에서 있었던 주요 이슈들을 쉽고 재미있게 정리해 드리는 콘텐츠입니다. 뉴스 뒤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사건들과 미처 기사로 풀어내지 못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여러분께 들려드릴 예정입니다.[편집자]

'디스커버리'라는 이름을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케이블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던 세대라면 다큐멘터리 채널을 먼저 떠올릴 겁니다. 야생동물이 나오고 정글을 탐험하는 그 유명한 방송 채널 말입니다. 하지만 요즘 세대에게 물어보면 얘기가 다릅니다. 방송보다 '패션' 브랜드로 기억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고 하는데요. 다큐멘터리 채널 이름에 완전히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은 주인공은 바로 국내 패션 기업 F&F입니다.

정작 디스커버리의 이름을 옷에 붙여 판 지 10년이 넘도록 F&F는 이름표를 빌려 쓰던 처지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디스커버리라는 패션 브랜드의 진짜 주인 자리를 꿰찼는데요. 미국 워너브러더스디스커버리로부터 '디스커버리 익스페디션'의 글로벌 상표권과 지식재산권을 인수하면서입니다. 인수 금액은 8000만달러, 우리 돈으로 약 1132억원 규모입니다. 그동안 해외 본사에 로열티를 내며 이름을 빌려 쓰던 한국의 라이선시가 패션 브랜드 자체를 통째로 손에 넣은 겁니다.

빌린 간판

F&F는 2012년 미국 디스커버리 채널과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국내에 패션 브랜드 '디스커버리 익스페디션'을 선보였습니다. 라이선스 계약이란 브랜드 이름과 로고를 쓸 권리를 빌려와 상품을을 기획하는 방식입니다. 옷은 F&F가 직접 만들어 팔았지만 '디스커버리'라는 이름 자체는 여전히 미국 워너브러더스디스커버리 소유였다는 뜻입니다.

사진=F&F

디스커버리는 원래 야생과 자연을 다루는 순수 방송 채널입니다. 이 채널을 아웃도어 패션 사업으로 만들겠다는 발상 자체가 당시로선 생소했을 텐데요. 김창수 F&F 회장이 직접 미국 디스커버리 채널 본사를 찾아가 이 제안을 했다는 일화가 업계에 전해지기도 합니다.

F&F가 이 라이선스 방식을 자신 있게 시도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검증된 전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1997년 선보인 MLB가 그 주인공인데요. F&F는 미국 메이저리그라는 스포츠 리그를 패션 브랜드로 만들어내 성공시킨 경험이 있었습니다. 로고만 옷에 찍어 파는 하청에 머물지 않고 상품 기획부터 유통까지 직접 맡아 스포츠 정체성을 캐주얼과 스트리트웨어로 확장했죠.

기획력의 증명

디스커버리 론칭 당시 국내 아웃도어 시장은 K2, 블랙야크 같은 브랜드가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이 브랜드들은 등산 수요와 함께 성장했다 보니 산과 등반, 극한의 도전을 강조해왔습니다. 광고도 유명한 산악인이 에베레스트를 등반하며 제품의 기능성을 드러내는 식이었습니다.

반면 F&F는 아웃도어를 도전이 아니라 즐거움의 대상으로 바꿔놓았습니다. 디스커버리 채널이 가진 '탐험'과 '호기심'이라는 정체성을 그대로 옮겨 담아 '즐거움'을 앞세운 게 특징이었는데요. 배우 공유를 모델로 세우고 산 정상 대신 눈밭에서 친구들과 눈싸움하는 모습을 광고에 담았습니다. 등반 대신 일상에서 자연을 즐기는 모습으로 아웃도어의 이미지 자체를 바꾼 셈입니다. 지금은 흔한 라이프스타일 아웃도어라는 개념도 이때 F&F가 사실상 처음 선보인 발상입니다.

사진=F&F

소비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당시 아웃도어 시장은 포화 상태에 이르면서 침체기에 접어들었는데요. 디스커버리는 론칭 1년만에 매장 80개를 열었고 2년 차에는 매출 1500억원을 내다보는 브랜드로 성장했습니다. 5년 만인 2017년에는 매출액 3000억원을 달성했죠. 롱패딩과 어글리 슈즈 등의 대란까지 일으키며 디스커버리는 아웃도어 브랜드가 아니라 세련된 패션 브랜드로 각인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처럼 F&F는 국내 비패션 라이선스 사업의 선구자로 꼽힙니다. 비패션 라이선스란 패션과 무관한 분야의 브랜드를 가져와 패션으로 만드는 사업을 말하는데요. MLB와 디스커버리의 성공을 목격한 많은 패션 회사들이 이 비패션 라이선스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BBC, 코닥, 폴라로이드 등이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적지 않은 브랜드가 단순히 브랜드의 로고만 옮겨오는 데 그치면서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데요. 이름만 빌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브랜드의 정체성을 패션으로 재창조해낸 F&F의 기획력이 차이를 만든 셈입니다.

이름의 주인으로

디스커버리의 성공은 국내에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F&F는 지난 2024년 7월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 등 아시아 주요국의 독점 판권을 확보하며 본격적인 해외 진출의 물꼬를 텄습니다. 그리고 이번엔 글로벌 상표권과 IP 전반까지 통째로 손에 넣었습니다. 이름을 빌려 쓰던 라이선시에서, 브랜드의 진짜 주인이자 글로벌 본사로 자리를 바꾼 겁니다.

브랜드를 직접 소유하면서 F&F도 많은 실익을 얻게 될 전망입니다. 우선 매년 지불하던 로열티 부담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더 중요한 건 원저작권자의 승인 절차 없이 국가별 시장 상황에 맞춘 상품 기획과 마케팅 전략을 독립적으로 펼칠 수 있게 됐다는 점입니다.

사진=F&F

F&F는 앞서 MLB를 통해 해외 시장에서의 가능성을 이미 입증한 바 있습니다. MLB는 중국을 비롯해 동남아시아, 중동, 인도 등 아시아 전역으로 영역을 확장하며 2022년 해외 매출만 1조2000억원에 달했을 정도입니다. 이번에 디스커버리의 글로벌 IP까지 품에 안으면서 F&F는 MLB에서 검증한 해외 확장 노하우를 디스커버리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남의 이름을 빌려 브랜드를 키운 뒤 그 이름 자체를 사들여 글로벌 시장으로 나가는 그림은 K패션 역사에서 매우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과거 재정난에 빠진 해외 본사를 역으로 사들인 케이스들이 있긴 하지만, 이번 F&F의 사례는 기획력으로 키워낸 브랜드의 글로벌 IP를 직접 확보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미국 방송사의 이름으로 시작한 디스커버리가 이제 한국 기업의 손에서 다음 이야기를 써나가게 됐습니다. 남의 이름을 빌려 쓰던 디스커버리가 진짜 내 이름을 달고 세계 시장으로 나아가는, K패션의 또 다른 도전이 시작된 셈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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