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이루어진다
지금으로부터 31년 전인 1995년. 외국인들에게 '한국(KOREA)'이라고 하면 북한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대다수던 시절. 이재현 CJ그룹 회장과 이미경 부회장은 미국을 찾았다. 다른 기업들이 자동차를 팔고, 선박을 팔고 건물을 지을 때 CJ는 영화사 드림웍스에 투자를 단행했다. 미래는 문화의 시대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CJ의 비전은 간단했다. 전 세계 사람들이 1년에 한두 번은 한국 영화를 보고, 한 달에 한두 번은 한국 음식을 먹고, 일주일에 한두 번은 한국 드라마를 보고, 매일 한두 곡은 한국 가요를 듣게 하는 것이었다. K컬처는 물론 '한류'라는 말조차 생기기 전의 꿈이었다. 한국 문화는 '산업'이 될 수 없다는 부정적 시각도 많았다.
30년이 지난 지금, CJ가 꾼 꿈은 현실이 되고도 넘쳤다. K무비와 K드라마는 넷플릭스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콘텐츠다. K푸드는 한 달에 한 번을 넘어 매일의 끼니를 책임지고 있다. K팝은 빌보드 차트를 휩쓸고, 한국의 아이돌은 전세계 청소년들의 우상이 됐다. 그리고 K뷰티를 통해 전세계인이 '한국의 미'를 추구한다.
이 모든 것을 CJ가 해낸 건 아니지만, CJ의 힘이 컸다는 걸 부정할 수도 없다. K무비의 중심에는 CJ가 투자·배급한 '기생충'이 있었다. K콘은 전세계 아이돌 팬들을 끌어모으는 글로벌 축제가 됐다. 비비고 만두는 중국의 덤플링, 일본의 교자에 밀리지 않는 한국 대표 음식으로 자리잡았다. 올리브영은 전세계 '코덕'의 성지다.
K라이프스타일
30년 전 꿨던 꿈을 이룬 CJ의 다음 행보는 뭘까. 한류와 K컬처를 넘어선 'K라이프스타일'의 일상화다. K컬처를 인식하고 찾아가는 게 아닌, 생활 습관에 자연스럽게 자리잡는 과정을 구축하겠다는 목표다. CJ그룹은 이를 통해 오는 2028년까지 미주 지역에서만 매출 12조원을 올리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3년간 50%의 성장률을 기록하겠다는 계산이다.
CJ그룹은 지난 15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엔젤레스 힐튼 LA 노스 글렌데일 호텔에서 '글로벌 K라이프스타일 선도 비전' 간담회를 열고 중장기 사업 성장 로드맵을 공개했다. 이 자리에는 허인회 CJ 대표와 김진식 CJ아메리카 공동대표, 페데리코 아레올라 CJ슈완스 아시안식품BU장, 박찬욱 CJ ENM 컨벤션사업부장, 이은정 CJ올리브영 브랜드크리에이티브센터장 등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허 대표는 "CJ는 30년 이상 미국 시장에 투자하며 식품, 콘텐츠, 뷰티 분야에서 독보적인 포트폴리오를 갖춘 유일한 기업으로 성장했다"며 한류의 인기를 K라이프스타일 경험으로 잇는 생태계를 구축해 북미 시장 공략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비전 발표는 지난 5월 이재현 회장이 미국 사업장을 찾아 제시한 북미 성장 방향을 구체화한 것이다. 당시 이 회장은 북미 시장에서 초격차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북미 모든 사업을 K라이프스타일로 연결해 미국 소비자의 일상 속으로 확산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 회장은 지난 14일에도 다시 미국을 방문해 K콘과 올리브영 페스타, 중소기업의 글로벌 진출을 돕는 콜렉션 부스를 찾았다.
이 회장은 이 자리에서 "30년 전 문화가 미래라는 믿음에서 CJ의 문화 사업이 출발했다"며 "이제 콘텐츠, 푸드, 뷰티 등으로 세계인의 일상을 채우는 '글로벌 K라이프스타일 리더'로 나아가자"고 말했다.
K 전도사
CJ는 K컬처가 미국에서 이미 '화제가 되는 문화'를 넘어 일상으로 전환되는 과정에 있다고 봤다. 'K퀴진'은 외식업계 트렌드 1위에 선정됐고 대표 K푸드인 김치는 전년 대비 80%의 고성장을 이어갔다. K뷰티는 2024년부터 프랑스를 제치고 미국 수입 화장품 1위에 올랐다. 미국 내에서 공개되는 외국 드라마의 3분의 1은 K콘텐츠다.
특히 최근 1년 사이에 K컬처를 접한 소비자가 많다는 데 주목했다. 예를 들어 K푸드의 경우 총 누적 경험률 82.5% 중 1년 내 경험자가 67.4%에 달했다. 음악이나 영화 역시 전체 경험자의 80% 이상이 최근 1년 내에 경험했다고 밝혔다.
김진식 CJ아메리카 공동대표는 "한국 문화를 경험해 본 소비자의 비중이 70~80%까지 높아졌다"며 "한 번 한국 문화를 경험한 이들이 반복적으로 소비하며 본인의 일상으로 녹아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성장이 하루아침에 이뤄진 건 아니다. CJ는 20년 넘게 미국에서 사업을 영위하며 10조원 가까이 투자를 이어 왔다. 2010년대 들어선 미국 내에서 인수합병(M&A)를 이어가며 덩치를 키웠다. 슈완스 인수, 조지아 베이커리 공장 투자, 사우스아시아 생산기지 투자 등이 대표적이다.
그 결과 지금은 미국 내 8만개 채널에서 비비고 만두를 만나볼 수 있다. 뚜레쥬르는 32개 주, 205개 점포를 열었다. 2030년까지 1000개점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K콘은 매년 10만명 이상의 관객을 모으고 있다. 식품 생산 시설만 20개, 물류 창고는 55개다. 미국에서 일하는 임직원만 1만2000명에 달한다.
샘 리처드 펜실베니아 주립대 사회학과 교수는 "CJ는 엔터, 푸드, 뷰티 등 문화의 다양한 영역에 걸쳐 사업을 펼치고 있다"며 "전 세계에서 이런 회사는 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