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이 '알짜 계열사' 롯데렌탈의 새 주인을 찾는 데 성공했다. 공정거래위원회 벽에 막혀 매각이 무산된 지 세 달 만에 글로벌 사모펀드(PEF) TPG를 새로운 원매자로 맞이하면서다. 롯데그룹은 1조원대의 매각 대금으로 호텔롯데의 차입금을 덜고 본업에 재투자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거듭된 계열사 지원으로 나빠진 재무구조를 온전히 되돌리기엔 과제가 적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목전으로 다가온 재매각
호텔롯데와 부산롯데호텔은 지난 11일 TPG가 설립한 투자목적회사 렉시콘코리아홀드코와 롯데렌탈 지분 61.17% 전량을 매각하는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했다. 매각 주식 수는 총 2221만2063주이며 주당 매각가격은 5만9000원이다. 이번 매각으로 호텔롯데가 약 8170억원, 부산롯데호텔이 4935억원을 각각 받게 된다.
이번 계약은 롯데그룹이 지난 5월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와의 계약을 해지한 후 세 달 만에 성사됐다. 롯데그룹은 지난해 3월 어피니티와 롯데렌탈 지분 56.2%를 1조5729억원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한 바 있으나 공정위는 올해 1월 26일 이 거래를 불허했다. 어피니티가 SK렌터카 지분 100%를 보유한 상태여서 롯데렌탈과 결합할 경우 국내 렌터카 시장 경쟁이 제한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TPG와의 거래가 공정위 심사를 통과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TPG는 국내 렌터카 시장에서 경쟁관계에 있는 회사를 보유하고 있지 않아 수평결합 우려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다만 공정위 심사를 무난히 통과하더라도 이전 계약 대비 낮아진 매각가는 아쉬운 대목으로 꼽힌다. TPG와의 주당 매각 가격은 지난 어피니티와의 계약보다 23.5% 낮은 수준이다. 롯데그룹의 협상력이 이전 계약보다 약해졌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호텔롯데와 부산롯데호텔은 낮아진 주당 가격을 보완하기 위해 당초 남겨두려 했던 지분 5%까지 이번에 함께 처분했다. 그 결과 총 매각대금은 1조5729억원에서 1조3105억원으로 16.7% 줄어드는 데 그쳤다. 가격 인하를 감수하고 잔여 지분까지 전량 매각한 것은 그만큼 호텔롯데의 유동성 확보가 절실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과도한 차입금
실제로 호텔롯데는 현금창출력에 비해 차입 부담이 과중한 상태다. 호텔롯데의 지난 6월 말 연결 기준 부채비율은 122.9%였다. 특히 사채를 포함한 총차입금(리스부채 제외) 규모는 약 7조1511억원에 달한다. 이 중 1년 내 만기가 도래하는 유동차입금과 사채는 약 4조9428억원 규모다. 이자 비용 부담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한 해 동안 호텔롯데가 지급한 이자만 3533억원에 이른다.
호텔롯데의 재무구조가 악화된 가장 큰 원인으로는 전방위적인 계열사 지원이 꼽힌다. 호텔롯데는 2022년 롯데건설 유상증자에 861억원을 출자한 것을 시작으로 그룹의 '소방수' 역할을 자처해 왔다. 현재 프로젝트샬롯 롯데건설 유동화 특수목적법인(SPC)들에 호텔롯데가 제공 중인 이자자금보충 규모만 총 1조5000억원에 달해 재무적 부담이 가중된 상태다.
롯데건설 외의 계열사와 신사업에 대한 수혈도 지속됐다. 자본잠식 상태였던 롯데자산개발과 중국 심양·청두 복합단지 개발법인에 최근 2년간 약 1600억원을 유상증자 형태로 지원했다. 그룹의 미래 먹거리인 롯데바이오로직스에는 지난해 2144억원을 투입했다. 지난 11일에도 487억원의 추가 출자를 결정하기도 했다.
해외 호텔 사업 확장을 위한 투자 역시 호텔롯데의 재무적 부담을 키웠다. 호텔롯데는 뉴욕 팰리스 호텔 토지 매입 등을 위해 미국 호텔 법인에 최근 2년간 약 3624억원을 잇달아 지원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일부 법인의 회수가능가액이 하락하며 손상차손을 인식하는 등 장부상 타격을 입기도 했다.
이런 호텔롯데의 과중한 차입 부담은 롯데그룹 지배구조 전반의 잠재적 불안 요인으로 꼽힌다. 호텔롯데가 한국 롯데그룹 지배구조의 최상단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호텔롯데는 6월 말 기준 롯데지주의 지분 11.7%를 쥔 2대 주주다. 호텔롯데 재무구조가 흔들리면 롯데지주를 포함한 한국 롯데 지배구조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뜻이다. 롯데그룹 입장에서 호텔롯데의 재무구조 개선이 보다 시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본업 투자
롯데그룹은 이번 롯데렌탈 매각대금으로 호텔롯데의 차입 부담을 덜어내는 한편 '본업' 투자도 늘릴 전망이다. 호텔 사업부가 안정적인 수익원으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호텔롯데 호텔사업부의 영업이익은 2022년 65억원으로 흑자 전환한 이후 2023년 712억원, 2024년 536억원, 2025년 1177억원으로 3년 새 18배 가까이 불어났다. 올 상반기에도 576억원의 이익을 냈다. 호텔롯데의 오랜 캐시카우였던 면세사업부가 2024년 1000억원이 넘는 손실을 내며 흔들릴 때도 꾸준한 이익을 냈다.
호텔 사업의 매출 비중도 크게 늘었다. 호텔 사업부가 호텔롯데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4년 25.9%, 2025년 31.3%으로 치솟으며 과거 10%대에 머물던 수준을 완전히 넘어섰다. 올 상반기에는 면세 사업의 회복으로 호텔 매출 비중이 소폭 하락하긴 했으나 여전히 28% 이상의 높은 수준을 유지 중이다.
관련업계에서는 이번 롯데렌탈 매각이 호텔롯데 기업공개(IPO)의 주요 걸림돌을 해소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호텔롯데 상장은 일본 롯데와의 지분 관계를 정리하고 한국 롯데의 지배구조를 완성하기 위한 오랜 과제였다. 하지만 그간 과중한 차입금과 면세 사업 부진이 발목을 잡아왔다. 이번 롯데렌탈 매각으로 재무 부담을 일부 덜어내고 호텔 사업이 실적 회복세를 보이면서 향후 상장 논의가 다시 본격화될 가능성이 있다. 다만 본격적인 상장 논의 재개까지는 시장 상황과 추가적인 재무 개선 추이를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롯데렌탈 매각은 당장 급한 불을 끄고 본업에 집중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며 "상장이란 궁극적인 목표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렌탈 매각 대금 투입 이후에도 면세 부문의 실적 반등과 지속적인 재무구조 개선이 증명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