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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내 피부가 탄 색?"…PC논쟁 엮인 K뷰티

  • 2026.08.26(수) 08:00

글로벌 무대 오른 K뷰티…뜻밖의 '색상명' 논란
국내에선 익숙한 단어, 해외에선 불편한 말로
제품력 넘어 이제 '문화적 감수성'까지 챙겨야

펜티뷰티 파운데이션 색상표/사진=펜티뷰티

어느덧 처서가 지나고 가을의 문턱에 들어섰습니다. 유난히 뜨거웠던 올여름, 휴가지에서 다녀와 "피부가 까맣게 탔다"며 웃어넘긴 경험 다들 있으실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피부가 탔다"는 말이 해외에선 불쾌함을 부르는 단어가 될 수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최근 글로벌 무대에서 활약 중인 한 K뷰티 브랜드가 파운데이션 색상에 'BURNT(타버린, 탄)'라는 이름을 붙였다가 해외 SNS에서 거센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한국에선 무심코 넘겼을 표현이 글로벌 시장에선 선을 넘은 인종차별적 표기로 받아들여진 겁니다. 제품력을 앞세워 인지도를 높이고 있는 K뷰티 브랜드들이 뜻밖의 'PC(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 논쟁' 암초를 만났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탄 피부, 생 피부

사건의 발단은 티핏클래스의 글로벌 뷰티 브랜드 '티핏(TFIT)'이 선보인 파운데이션 제품이었습니다. 업력 8년 차인 티핏클래스는 일본과 중동, 미국, 유럽 등 전 세계 시장을 누비는 해외 타깃 K뷰티 브랜드인데요.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80% 넘게 성장한 354억원을 기록했습니다. 규모가 큰 기업은 아니지만, 하지만 하루에도 수많은 인디 뷰티 브랜드가 생겨나고 사라지는 시장에서 해외 소비자를 기반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특히 티핏은 브랜드 콘셉트부터 글로벌을 겨냥했습니다. '티핏은 모든 피부의 다채로움을 인정하고 인종, 성별, 지역을 불문한 고유의 아름다움을 존중한다'는 포용적 마케팅을 내세웠는데요. 콘셉트에 걸맞게 파운데이션 역시 30종에 달하는 다양한 셰이드(색상)를 갖추기도 했죠. 

그런데 최근 티핏이 뜻밖의 이유로 이슈가 됐습니다. 티핏 파운데이션에 붙은 이름 때문인데요. 티핏 파운데이션의 가장 어두운 색상의 이름은 'BURNT(타버린·탄)'입니다. 해외 커뮤니티 레딧에 이를 지적하는 글이 올라오면서 거센 반발이 일었습니다. 한 해외 이용자는 "어두운 피부가 '타버린(Burnt)' 상태라면 밝은 피부색은 '익지 않은 날 것(Raw)'이라고 불러야 하느냐"며 불쾌감을 토로했죠.

레딧에 올라온 티핏 관련 글/사진=레딧 캡쳐

한국에서 야외 활동 후 피부가 어두워진 상태를 흔히 '탄 피부'라고 부르는 언어적 습관이나 태닝한 피부를 '건강미'와 연결하는 문화에서 비롯된 표현이라는 점은 이해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지만 비판의 목소리가 더 큽니다. 특히 현지 소비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부분은 따로 있었는데요. 악의가 없다고 해서 인종적 무감각이나 문화적 무지까지 정당화될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한 해외 소비자는 "동아시아의 차별이 서구의 인종차별과 역사적 배경은 다를지 몰라도 어두운 피부를 가진 소비자가 받는 상처와 불쾌함의 결과는 똑같다"고 꼬집었습니다. 브랜드가 어떤 의도로 이름을 붙였는지와 관계없이 글로벌 시장에 제품을 판매하겠다고 나선 이상 해당 언어가 현지 문화권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지까지 고려했어야 한다는 지적이었죠.

선 넘었네

사실 국내에서는 자연스럽게 쓰이지만 해외 소비자에게는 불편하게 받아들여진 K뷰티의 제품명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국내 화장품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란제리(Lingerie)'라는 표현도 해외에서는 거부감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단어로 꼽힙니다.

클리오나 헤라 등 몇몇 K뷰티 브랜드들은 밝은 베이스 컬러나 립글로스 색상명으로 이 단어를 사용해 왔는데요. 국내에서는 '란제리'가 투명하고 우아한 분위기, 혹은 맑은 톤을 떠올리게 하는 표현으로 통합니다. 하지만 서구권 소비자에게는 본래 여성 속옷을 의미하는 단어인 만큼 뷰티 제품명으로 사용될 경우 지나치게 성적인 이미지를 부여해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헬시(Healthy)'라는 단어도 국가와 문화권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건강하게 그을린 피부를 표현하는 말로 쓰이지만, 해외에선 특정 어두운 톤에만 이 단어를 사용하는 데 불편함을 느끼기곤 하는데요. "그럼 밝은 피부는 안 건강(Unhealthy)하냐"는 오해를 부를 수 있기 때문이죠. 피부색에 '건강'이라는 가치 판단을 연결하는 것 자체가 문화적 감수성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입니다.

티핏 파운데이션 제품군/사진=아마존 티핏 판매 페이지 캡쳐

이에 해외 유색인종 소비자들은 "미국이나 글로벌 시장을 타깃으로 마케팅하려면 제발 숫자와 언더톤 시스템을 사용해 달라"고 입을 모읍니다. 이를테면 글로벌 브랜드들이 흔히 쓰는 '1N'이나 '2W', 혹은 '15 Cool' 같은 표기법을 사용하라는 건데요. 어설픈 형용사나 주관적인 단어로 피부를 정의하기보다 다양한 피부색을 포괄하면서도 특정 피부색에 가치 판단을 담지 않는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글로벌 포용성의 기준을 세운 팝스타 리한나의 '펜티 뷰티'를 예로 들 수 있는데요. 펜티뷰티는 파운데이션 셰이드를 100번대(Light), 200번대(Medium), 300번대(Tan), 400번대(Deep)처럼 명도별로 세분화한 뒤, 숫자 뒤에 쿨(Cool), 웜(Warm), 뉴트럴(Neutral) 등 언더톤을 조합한 3자리 숫자로 표기합니다. 예컨대 '420'이나 '490'처럼 깊은 피부톤 역시 감정적 단어 대신 숫자로만 구분해 주관적 가치 개입을 완전히 배제했습니다. 에스티로더의 '더블웨어 파운데이션' 역시 피부 밝기와 피부 톤, 피부 톤의 정도에 따라 '1N1', '2W1', '4N1'과 같은 인덱스 시스템을 사용합니다.

물론 이 브랜드들 역시 이해를 돕기 위해 숫자 옆에 '바닐라(Vanilla)'나 '샌드(Sand)'와 같은 서브 네임을 병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들이 쓰는 단어는 사물이나 식품의 색감에서 따온 '시각적 비유'일 뿐 피부의 상태를 정의하거나 가치를 판단하지 않는다 점에서 K뷰티 사례와 차이가 있습니다. 수십 년간 글로벌 인종을 상대해 온 빅브랜드일수록 피부톤 표기에서 형용사를 지우고 직관적인 기호와 숫자를 활용해 인종적·문화적 마찰을 사전에 차단하는 셈입니다.

글로벌 스탠다드로 가는 길

이번 티핏의 파운데이션 논란은 K팝과 K드라마, K뷰티로 이어지는 K컬처가 글로벌 영토를 넓히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마주해야 하는 '문화적 충돌'의 단면으로 볼 수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우리 사회 역시 피부색에 대한 감수성을 뒤늦게 깨달은 경험이 있습니다. 과거 한국에서는 특정 연주황색을 당연하게 '살색'이라고 불렀는데요. 2000년대 들어 인종적 차별과 편견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을 수용해 '살구색'으로 공식 개칭했습니다. 이처럼 국내에서도 오랜 진통 끝에 언어적 정화를 거쳤듯 전 세계 소비자를 상대로 물건을 파는 글로벌 무대에서는 현지 문화권의 역사와 상처를 보살피는 감수성이 더욱 엄격하게 요구됩니다.

그래픽=비즈워치

그동안 K뷰티는 뛰어난 제품력과 빠른 트렌드 반영 능력을 앞세워 글로벌 시장을 사로잡았습니다. 하지만 브랜드의 영향력이 커진 만큼 글로벌 소비자들이 K뷰티에 요구하는 수준도 높아지고 있는데요. 단순히 셰이드의 가짓수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현지 소비자의 문화적 맥락을 이해하는 내면적 포용성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글로벌 메인스트림에 깊이 뿌리내리기 어렵기 때문이죠.

단일민족 문화권이라는 배경은 그간 부주의함에 대한 변명이 되어주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K뷰티가 세계 시장의 중심에 선 지금, '몰랐다'는 식의 문화적 무지는 개별 브랜드의 가치를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K뷰티 산업 전체의 이미지를 의심받게 만드는 치명적인 리스크가 됩니다. 의도와 무관하게 무심코 던진 단어 하나가 수년간 공들여 쌓아 올린 K뷰티의 공든 탑을 한순간에 흔들 수 있기 때문이죠. 이제는 "글로벌 시장에서 돈을 벌고 싶다면 그들의 문화와 역사부터 공부하라"는 해외 소비자들의 뼈아픈 충고를 깊이 새겨야 할 때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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