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사가 운영하는 '29CM'가 일본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로프트(LOFT)'와 손잡고 문구 시장 공략에 나섰다. 2030 사이에서 아날로그 감성을 찾는 '텍스트힙' 트렌드가 확산하면서 문구 카테고리의 성장 잠재력이 커졌다는 판단에서다.
성수동에 뜬 로프트
2일 서울 성수동에서 개막한 문구 팝업 '페이지 투 페이지스(Page to Pages)' 행사장 앞에는 문을 열기 전부터 입장을 기다리던 대기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29CM와 일본의 인기 문구·생활잡화 전문점 로프트가 기획한 팝업 스토어를 가장 먼저 확인하기 위해 찾아온 인파였다. 이 팝업스토어의 사전 예매 티켓은 오픈 사흘 만에 일부 시간대가 매진됐을 정도로 개막 전부터 관심이 뜨거웠다.
로프트는 1987년 도쿄 시부야에서 시작해 현재 일본을 포함한 글로벌 시장에서 160여 개 매장을 운영하는 문구·생활잡화 전문점이다. 필요한 상품을 사는 곳을 넘어 새로운 브랜드를 발견하는 '발견형 매장'을 지향해 왔다. 일본 여행길에 오르는 한국 문구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문구 투어의 성지'로 통한다. 로프트가 한국에서 자사 브랜드를 내건 팝업을 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내 플랫폼과 공동으로 행사를 기획한 것도 첫 사례다. 29CM는 해외 브랜드 소싱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로프트와 손을 잡았다.
강대묵 29CM 커머스 전략본부장은 "로프트와 함께 200개가 넘는 일본 브랜드들을 검토했다"며 "이 중 한국 정서에 맞으면서도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브랜드를 우선순위에 두고 29개 브랜드를 엄선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번 팝업스토어에서는 국내에 정식 유통망이 없던 일본 브랜드를 대거 소개한다. 일본 브랜드 29곳 중 14곳은 한국에 처음 소개된다. 도쿄의 주문 제작 노트 브랜드 '하이나인 노트', 가죽 시스템 다이어리 브랜드 '애쉬포드', 종이 전문 스테이셔너리 브랜드 '후루카와 시코' 등이 대표적이다.
국내에서도 이미 잘 알려진 브랜드들도 한국에 처음 선보이는 제품을 들고 이번 팝업스토어에 참여했다. 대표적으로 인기 다이어리 브랜드 '호보니치'는 지난 1일 새롭게 출시된 2027년 신상 다이어리와 일본에서만 판매 중인 '무민' 협업 한정판 제품을 선보인다.
일본 브랜드들도 이번 팝업스토어가 한국 시장 진출 가능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실제로 참여 브랜드 상당수는 이번 팝업스토어에 일본 본사 담당자를 직접 파견했다. 국내 판매 접점이 제한적이었던 만큼 한국 고객의 반응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다. 호보니치 관계자는 "한국 고객들의 애정과 관심은 확인하고 있었지만 제품과 브랜드를 직접 선보일 기회는 제한적이었다"며 "이번 팝업이 한국 고객에게 호보니치를 더욱 깊이 있게 알리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29CM는 팬덤을 갖춘 한국 문구 브랜드 10곳도 선보인다. 강 본부장은 "29CM에 이미 입점해 있거나 최근 문구 시장에서 가장 각광받는 브랜드들로, 소비자가 직접 만들고 경험할 수 있도록 공간을 설계하는 데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다시 쓰는 이유
이처럼 29CM가 문구 카테고리에 힘을 주는 것은 최근 문구가 2030세대의 '취향 소비'의 중심축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문구 시장은 저출생에 따른 학령인구 감소와 디지털 전환이 맞물리면서 한동안 쇠퇴 산업으로 여겨졌다. 스마트폰과 태블릿이 종이 노트와 필기구의 자리를 대신하며 동네 문구점도 하나둘 사라졌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필사와 다이어리 꾸미기 같은 아날로그 취미가 퍼지면서 시장에 다시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업무나 학습에 필요해서 샀다면, 지금 2030세대에게 문구는 자신을 드러내는 수단에 가깝다.
최근의 '텍스트힙' 트렌드도 문구 인기에 힘을 싣고 있다. 텍스트힙(Text Hip)은 글자(Text)와 멋지다(Hip)의 합성어로, 독서나 글쓰기 같은 텍스트 기반 활동을 세련되고 멋진 문화로 인식하며 즐기는 현상을 말한다.
숏폼 콘텐츠에 지친 젊은 세대가 손으로 글씨를 쓰거나 책을 읽으며 심리적 위안을 얻으려는 경향으로 풀이된다. 관련 업계에서는 문구가 디지털 피로를 씻어주는 아날로그 도구로 소비되며 인기가 상승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29CM의 문구·사무용품 누적 거래액은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전년 대비 48% 이상 늘었다. 같은 기간 다이어리·플래너 거래액도 63% 이상 증가했다. 29CM가 지난해 4월 문구 편집숍 '포인트오브뷰'와 공동 개최한 문구 페어 '인벤타리오'에는 닷새간 2만5000명이 다녀가기도 했다.
문구는 힙하다
29CM뿐만 아니라 다른 채널에서도 문구 카테고리는 인기가 높다. 네이버(NAVER)에 따르면 네이버플러스스토어의 올해 상반기 문구 카테고리의 거래액은 전년 대비 12% 증가했다. 특히 문구 중에서도 필기도구의 거래액은 같은 기간 전년 동기보다 21.6% 늘어났다. 필사, 기록 등 아날로그 취미를 가진 소비자가 늘면서 만년필, 고급 볼펜 등 프리미엄 필기구 수요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프라인 채널들도 문구 카테고리에 집중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지난해 2월 천호점을 시작으로 더현대 서울, 판교점, 목동점 등 11개 점포에서 필기·독서용품 전문 브랜드 '글입다(Wearingeul)'의 팝업스토어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7월 진행한 신촌점 팝업스토어에는 20~30대 젊은 고객들이 몰리며 매출 목표를 30% 초과 달성했다. 고객들의 팝업스토어 재방문율도 30%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파크몰 용산점도 문구를 앞세운 팝업을 꾸준히 열고 있다. 지난해 12월 홀리데이 기프트 상점을 시작으로 올해 1월 이것저것 상점, 2월 아날로그 상점까지 세 차례 문구와 리빙, 패션 연합 팝업스토어를 연 것이 대표적이다. 이 중 올해 초 코닥, 후지, 한국파이롯트 등 6개 브랜드가 참여해 열린 '아날로그 상점'에는 8일간 누적 방문객 2만1000여 명이 몰렸다.
29CM는 이번 로프트와의 협업을 온·오프라인 접점으로 더 확대할 예정이다. 오는 18일부터 다음달 30일까지 이구홈 성수 2호점과 29CM 앱에서 앙코르 기획전이 예정돼 있다. 이와 함께 해외 브랜드를 지속적으로 발굴해 국내 소비자에게 제안하고 국내 판매 접점이 부족한 브랜드에는 한국 고객과 만날 기회를 제공하는 플랫폼으로 도약한다는 목표다.
강 본부장은 "29CM는 그동안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 팝업을 시작으로 해외 브랜드까지 큐레이션 범위를 넓히려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