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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광고]"감히 라면 주제에"…밤 11시에 국물 다 마시라고?

  • 2026.09.13(일) 13:00

하림산업의 더미식 장인라면 론칭 광고
배우 이정재 앞세워 '요리' 이미지 부각
이후 만두·밥에도 이정재 기용…콘셉트 유지

그래픽=비즈워치

[그때 그 광고]는 우리나라 식품유통업계의 광고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광고들을 소개하고 그 뒷 이야기들을 펼쳐보는 콘텐츠입니다. 꼴찌 브랜드를 단숨에 1위로 만든 '최고의 광고'부터 잘 나가던 브랜드의 몰락을 불러온 '최악의 광고'까지, '광고의 정석'부터 '광고계의 이단아'까지. 우리의 인상에 남았던 여러 광고 이야기를 나눠 볼 예정입니다. 여러분의 추억의 광고는 뭔가요? 혹시 이 광고 아닌가요.[편집자]

"이런 라면이 다 있습니까. 감히, 라면 주제에. 오직 맛을 위해 진짜 재료로만 승부하겠답니다. 면치기 금지에, 천천히 음미하길 바라질 않나. 국물은 남기지 말 것을 부탁하고, 감히 라면 주제에. 밤 11시에도 당당히 추천. 아이들에게도 과감히 추천. 인스턴트에서 빼 달라는 욕심까지. 대체 어떻게 만들어 낸 라면이기에. 그 이름마저 'The미식 장인라면'. 미식 생활의 시작. 라면부터 갑니다. The미식 장인라면."

앙팡 테리블

식품업계가 대체로 그런 편이지만, 라면업계는 유독 더 보수적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팔리는 라면 브랜드 10개 중 2012년 출시된 '불닭볶음면'을 제외하면 1990년에 출시된 '왕뚜껑'이 '막내'입니다. 나머지 인기 라면들은 전부 국내 라면 시장이 급성장하던 1980년대에 출시된 제품들입니다. 

그 사이 많은 기업들이 라면 시장에 출사표를 냈지만 농심과 오뚜기, 삼양식품, 팔도를 제외하면 성공은커녕 생존한 곳조차 거의 없습니다. 풀무원이 '건면'이라는 시장을 홀로 개척하며 틈새 시장을 차지한 정도입니다. 그나마 라면 시장의 역사와 흐름을 이야기할 때는 풀무원을 제외한 '라면 4사'만 다루는 경우가 태반이죠.

아토피에 걸린 딸과 라면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는 김홍국 하림 회장/사진=김아름 기자 armijjang@

그러던 2022년. 라면업계는 새로운 도전자를 맞이합니다. 바로 하림산업입니다. '닭고기 기업' 하림이 라면 시장에 진출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업계에선 다들 '닭육수 라면'을 만들 것으로 예상했죠. '팔도 꼬꼬면' 같은 흰 국물 라면으로 틈새시장을 노리는구나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림은 '정공법'을 택했습니다. 그것도 제대로요. 바로 'The 미식 장인라면'입니다. 특히 K드라마를 전세계로 퍼져나가게 한 '오징어게임'의 주인공인 배우 이정재를 앞세운 론칭 광고는 화제가 됐습니다. '우리도' 라면을 만든다는 얌전한 론칭이 아닌, '우리만' 제대로 된 라면이라는 포부가 담긴 광고였습니다.

"라면 주제에" 조미료를 넣지 않고 20가지 천연 재료로 스프를 냈다고 하고 '라면 국물은 건강에 좋지 않다, 밤에 라면을 먹으면 얼굴이 붓는다'는 이야기에 맞서듯 "국물은 남기지 말고. 밤 11시에" 먹으라고 권합니다. 당시 방송계에서 유행하던 '면치기' 트렌드를 끝낸 이정재를 기용한 데 힘입어 "면치기 금지"라고도 이야기합니다. 

도전장

라면업계에서 더미식 장인라면의 광고는 제법 화제가 됐습니다. 라면 시장은 공격적인 광고가 많지 않은 업계입니다. 이미 시장이 고착화돼 있어서입니다. 2010년대 중반 '진라면'이 일부 채널에서 신라면 판매량을 넘어섰다며 광고를 한 게 그나마 '공격적'인 마케팅에 속합니다. 

하지만 '루키' 하림산업은 그런 신사협정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동안의 라면이 '저가 포지셔닝'에 갇혀 제대로 된 재료를 쓰지 않고 있다고 질타했습니다. 김홍국 하림 회장도 직접 기자들 앞에서 아토피 때문에 라면을 먹지 못하는 딸을 위해 '제대로 된 라면'을 만들었다고 말했죠. 이후 나온 '더미식'의 다른 광고들 역시 장인라면의 대담함을 이어받았습니다. 

"분명히 아는 맛인데, 더 맛있어. 물타지 않고 10가지 과채와 육수로 매콤새콤하게. 툭툭 끊기지 않고 마지막 한가닥까지 쫄깃하게. 이 둘이 만나면 멈출 수가 없을걸. 먹어봐. 아는 맛보다 맛있으니까. 더미식 비빔면."

"만두, 기본부터. 육즙부터 갖추시길. 12시간 저온 숙성으로 한껏 응축시킨 진한 육즙이. 씹을 때 마다 마다 마다 마다 터져 줄 테니. 더 미식 육즙만두. 누가 감히 이 만두를 냉동 만두라 치부할 수 있을까."

"이것은 분명한 공기 밥. 오로지 100% 쌀과 물로만 지어 밥 본연의 풍미만 가득. 담아냈으니까. 더미식 밥. 먹기 전에 풍미부터."

각각 더미식 비빔면, 더미식 육즙만두, 더미식 밥의 광고 멘트입니다. 비빔면의 경우 '아는 맛보다 맛있다'는 문구로 비빔면 업계 부동의 1위인 '팔도비빔면'을 겨냥했고요. '더미식 육즙만두'는 "기본부터, 육즙부터 갖추시길"이라는 문구로 다른 냉동만두는 기본을 갖추지 못했다고 표현했습니다. '더미식 밥'의 경우 '오로지 100% 쌀과 물로만 지었다'는 표현을 통해 업계에 '미강추출물' 논란을 불러일으켰죠. 여러모로 업계를 뒤흔든 '슈퍼 루키'였습니다.

그 날은 올까

출시 초 호불호가 갈렸던 국물라면을 제외하면 만두나 밥, 비빔면 등은 실구매자들의 평가가 매우 좋은 편이었는데요. 확실히 재료에 신경을 쓴 모습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특히 만두와 밥은 가격보다는 맛을 따지는 소비자들 사이에서 제법 입소문이 나면서 하림산업의 초기 매출을 견인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더미식의 '진짜' 마케팅은 소비자들에게 완벽하게 먹혀들지는 못했습니다. 현재 하림산업의 라면 부문 매출은 올해 상반기 244억원으로, 연 500억원 안팎입니다. 현재 더미식 라면은 '장인라면 얼큰한 맛'·'장인라면 담백한 맛'·'장인라면 맵싸한 맛'·'더미식 오징어라면'·'더미식 비빔면'·'더미식 메밀비빔면' 등 6종을 운영 중인데요. 라면 시장에 진출한 지 4년여 밖에 되지 않은 신생 브랜드치고는 나쁘지 않은 성과지만 기대치에 비하면 또 약간 아쉬운 성적표입니다. 

하림산업 연간 실적/그래픽=비즈워치

'진짜 재료'를 쓴 만큼 높아진 원가가 고스란히 가격으로 반영됐기 때문입니다. '비싸게 팔아서 남겨먹었다'는 비판도 어려운 것이 하림산업의 매출원가율은 150%를 웃돕니다. 여기엔 이정재 기용에 따른 광고비나 판촉비 등이 제외돼 있습니다. 그만큼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김 회장은 더미식 론칭 당시 목표 매출로 1조5000억원을 이야기했습니다. 라면과 냉동식품, 간편식 등을 망라한 '더미식 세계관'이 언젠가는 통할 거라고 본 거겠죠. 아직 이 브랜드는 4살에 불과합니다. 사람이라면 이제 어린이집에 갈 나이입니다. 

이 아이가 성인이 됐을 때는 어떤 모습일까요. 20년 후엔 우리가 라면을 밤 11시에, 국물까지 비우며, 아이들에게도 추천하며, 천천히 음미하게 될까요. 일단, 하나는 이뤄졌습니다. 이제 면치기는 안 하게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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